같은 식구, 다른 입맛
육류 없이는 살아도 해물 없이는 무척 섭섭한 나는 어머니가 해물 요리를 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홍합을 미리 사놓으신 건지 아침부터 뜨끈한 국물이 일품이다.
홍합살은 작고 여리지만, 홍합이 우려난 국물은 깊고 진하다. 그릇을 들고 마시니 다가오려는 감기 기운이 저만치 달아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해산물, 특히 조개류를 못 먹는 사람이 있다. 다름 아닌 첫째 조카이다. 어머니 추측으로는 어릴 적 조개류를 먹다 체했거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궁금한 것은 직접 물어보면 된다.
"조개가 왜 싫어? 싫어진 계기가 있어?"
사연은 이랬다. 조카가 어린이집 다닐 때 재첩국이 나왔는데 먹기 싫어서 코 푸는 척하고 휴지에 입에 있던 걸 다 뱉었다고. 그걸 안 어린이집 선생님이 경찰에 가자고 했단다. 기가 찼다. 그런 일로 경찰에 가자고 한 자신을 부끄러워해야지. 싫다고 말한 아이에게 굳이! 끝까지! 먹인 당신 잘못은 아시는지 몰라. 기분 나빠서 한 마디 했다. "놀고 있네."
그러자 듣고 있던 막내 조카는 "나는 도깨비앱이 싫었어."라고 한다. 그게 뭔지 물어보니 잠 안 자는 아이에게 그 앱을 보여주면 화면 속 도깨비가 잡아간다는, 일종의 협박 도구였다. 또 그랬다. "놀고 있네."
"그건 학대야. 아무리 선생이라도 아이들이 싫다는 것은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보고 의사를 존중해 줘야지. 자신들이 귀찮다고 그런 알량한 방법으로 아이들에게 겁을 주다니..." 씁쓸했다.
막내 조카는 채소를 잘 안 먹을 뿐 다른 것은 크게 가리지 않는다. 위의 이야기는 늦은 저녁, 거의 야식 삼아 국물 떡볶이와 김밥과 튀김을 시킨 후 밥상머리에서 나눈 대화이다. 할머니가 정성껏 끓인 국과 밥이 있어도 조카들은 배달 음식을 좋아한다. 평소에는 서로 얼굴 보고 대화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모가 사주면 대화의 장이 열리게 된다.
음식 얘기뿐만 아니라 김수미 배우의 죽음, 로제의 아파트, 지디의 신곡, Y의 폭로와 M의 성매매업소 관련 녹취록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사실 아이돌 노래를 잘 모른다. 어릴 적부터 발라드나 모던팝, 록 종류를 좋아했지 아이돌은 왠지 유치한 감이 들고 멋쩍어서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 더 그럴 수도 있지만, 십 대 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에도 나는 아이돌에 열광한 적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청소년 조카들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연예계 소식에 무관심하면 곤란하다.
할미가 해놓은 천연 건강식품을 두고 밤늦게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이모와 조카들. 어머니 알면 큰일 난다. 그래도 우리는 좋다고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까지 꺼내어 만찬을 즐겼다.
세대가 다르니 입맛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다. 물론 몸에는 무조건, 당연히 할미표 음식이 최고다. 그러나 몸에 좋은 음식이 입에 달지 않으니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자기 입맛에 맞춰 먹는다. 늘 그렇지는 않고 불금을 즐기는, 이모가 조카들에게 베풀 수 있는 작은 이벤트 같은 거라서 나 몰라라 하고 시켜준다.
늦은 저녁 겸 야식을 먹고 설거지하고 바닥을 정리하니 피곤하다. 오늘은 저녁 세안을 생략한다. 파우더 팩트를 안 했으니 하루쯤 괜찮을 거다. 경험상 이틀 세수를 안 하고 자면 다음날 피부가 뒤집어진다. 치석 방지를 위해 양치질은 꼼꼼히 했다. 그리고 이 글을 마무리 중이다. 오늘을 넘기면 쓸 기운이 없을 것 같아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고 자기 전 키보드를 두드린다.
아이들은 배부른지 기분 좋아 노래를 부르며 거울 보고 춤도 추고, "잘게!"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아직 아기처럼 보이는 조카들. 건강하게 잘 자라길! 행복한 밤, 벌써 자정을 넘겼다. 이제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