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Aug 17. 2022

고집 쎈 놈

여덟살의 나는 고집이었을까, 아집이었을까



'고집이 세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내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직장동료, 그리고 엄마에게서 적지 않게 듣고는 했다. 





대전에 내려가면 종종 엄마는 엄마의 기억 속 책장에서 어렸을 적의 나를 혼냈던 책을 한권 뽑아들고는 한다. 


'어우, 지독한 놈이었당게... 여덟살때인겨? 언제인겨? 그렇게 가지말라던 오락실에서 50원짜리 동전 몇개 들고 죽치고 있는 걸 잡아왔거든. 집에서 잘못했다고 빌으라고 파리채로 때려도 울지도 않고 꽂꽂히 버티며 잘못했단 말 한마디도 안하능겨. 너무 승질이 나서 옷을 홀딱 배껴서 밖으로 내쫓았는데도 가만히 서서 잘못했단 말 안하고 서 있더랑게..아우 고집...'


(엄마는 모를꺼다. 내가 오락실에서 알파벳과 발음기호를 마스터했다는 것을...인서트코인...코만도...)




대학시절,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한국형 자기부상열차를 개발하는 곳이었는데 담당박사가 부상제어 수식을 주면 내가 소프트웨어 코드로 바꿔주는 그런 일이었다. 수학이 진저리나게 싫었는데, '생애처음 수학이 이런데 쓰이는 거구나' 라고 조금 알게 해준 곳이었다.




내가 일했던 공간은 커다란 격납고였다. 자기부상열차가 들어와야하니 엄청 높고 엄청 넓을 수 밖에 없었다. 격납고의 연구원은 총 네 명 나와같은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있었다. 이 커다란 공간에서 점심시간이면 요 여섯명이서 혈투가 벌어지고는 했다. 





바로 탁구였다. 




난 이곳에서 면접을 볼때, 예상했던 질문은 바로 이거였다.





'회로는 다룰 줄 아나?'


'마이컴은?'


'다룰수 있는 컴퓨터언어는?'





하지만, 머리가 훌러덩 벗겨진 나의 사수 성박사는 이 질문을 먼저 건넸다.





'자네, 탁구는 좀 치나?'





성박사는 외모만 보면 탁구 참 못치게 생겼지만 생각외로 꽤 치는 분이었다. 나도 탁구라면 좀 치는 축에 속했기에 '네!' 라고 크게 대답하며 이들의 탁구대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아니 11시 55분 정도 되면(우리는 탁구에 진심이었다. 어떤날은 밥도 안먹었다.), 


커다란 격납고에 조용히 움직이는 자기부상열차보다 훨씬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진다. 


탁구대를 펴는 소리가 텅빈 격납고에 쩌렁쩌렁 울린다. 





점심시간의 탁구혈전은 패가 갈린다. 성박사와 나, 그리고 나머지 네 명.


패가 갈리는 기준은 이렇다. 가르치려는 사람들과 가만히 있는 사람들.





성박사와 나는 폼이 좀 우스꽝스럽다. 폼생폼사라던데 반짝대머리 성박사가 서브를 넣을때면 웃음을 참기 힘들다. 나는 서브 폼은 나쁘지 않지만 드라이브를 걸 때, 폼이 좀 과하다. 투포환 던지듯이 허리를 180도 이상 돌려 풀 드라이브를 걸어버린다. 이런 자세는 체력적으로 소모량이 꽤 크기에 지양해야 한다. 나의 풀드라이브 성공률은 거의 80프로에 육박했고 걸렸다 하면 받을 확률은 10프로 정도였다. 상대방의 맞드라이브를 받아치는 성공률도 꽤 높았다.





나머지 네 사람은 배운 사람들이다. 한 사람은 수십만원짜리 탁구클럽에 가입해서 수십만원짜리 탁구채와 러버를 사용한다. 탁구치기 전, 후후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러버를 닦는다. 너무 열심히 닦는다. 나머지 세사람도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지, 탁구 게임을 시작할 때면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리고 팔을 허우적 허우적 거리며 몸을 풀고는 했다. 막상 치면 전혀 다른 자세가 되어버리는 것을 본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본 게임 시작전, 연습게임으로 똑딱이를 치면 배운사람들은 성박사와 나에게 끊임없이 가르침을 늘어놓았다. 


'팔을 조금만 덜 젖혀지도록 해야지' '아니 아니 스텝이 꼬였잖아' '러버를 바꿔야겠는데?' '드라이브 걸때 탁구채를 좀더 눕혀야지' 


성박사와 나는 고개를 까딱인다.






본 게임은 토너먼트로 진행했다. 이긴 사람이 진 사람을 떨궈내며 계속 치는 방식이다. 나는 매일 매일 쓰러질정도로 탁구를 쳐야했다. 승자는 끊임없이 쳐야 하는 룰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풀드라이브를 맞받아치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힘들때면 아슬아슬하게 져주며 쉬고는 했다.





나에게 계속 지는대도, 한번도 이긴적이 없는대도, 네 사람은 나를 가르쳤다. 내가 태릉선수촌에 입촌을 목표로 하는 선수도 아닌데 무척이나 진지하게 나를 가르쳤다. 가르침을 너무 심하게 받은 날이면 21대 3 혹은 21대 4로 아주 묵사발을 내고는 했다. 





유일하게 나를 종종 이기는 사람은 바로 대머리 성박사였다. 유일하게 가르치려 하지 않는 사람. 가르치는 네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탁구실력을 가진 사람. 그 사람만이 나를 종종 이겼다.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는 나는 고집일까, 아집일까.


원하지 않는 가르침을 주려는 네 사람은 고집일까, 아집일까.


어렸을 적, 50원짜리 동전으로 오락실에서 뽀글뽀글게임했다고 파리채로 맞으면서 잘못했다 빌지않아 엄마의 속을 뒤집었던 


여덟살의 나는 고집이었을까, 아집이었을까. 



한없이 비가 내리는 오늘, 문득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남을 적당히 시샘하며 사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