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노 Sep 11. 2023

뭣이 중한지 아는 존재

아이들은 원래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장치를 갖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잠이 줄어든다고 엄마가 말했었다.


'으이구, 너도 나이먹어바'

성여사로부터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나이를 먹어본다는 건, 어느 나이의 정도를 나타내는걸까. 분명한 건 올해 마흔여섯이(만나이 아님, 아직 익숙치않음) 된 나는 성여사의 그 조건에는 아직 부합하지 않는다는 거다. 여전히 아침 8시가 되어도 9시가 되어도 잠이 가득하다. 결군의 아침을 챙겨줘야 하기에 어기적 어기적 8시에 일어난다. 물론 그 옆의 아내는 한밤중이다.


 아침 9시가 다 되어 일어났던 토요일, 우리는 강원도 양양의 '동호해변'을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주말의 강원도 가는 길, 분명히 도로는 막힐 것이고 늦게 출발하는 만큼 더 심해질 것이기에 좀 더 일찍일어나는 것에 전날 밤 이야기했었다.



"그래도 7시에 일어나서 8시에는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그럴 수 있을까? 바람쐬러 가는데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우리에게 고통스러운 일 아닐까?"

"많이 피곤하겠지? 그래, 그냥 일어나는데로 출발하자"


 해외여행 계획도 대충대충, 당일치기여행도 대충대충이었다. 여행의 본질에 있어서 '대충대충'은 생각만큼 단점이 크지 않으며 장점이 많다. 상황을 좋게 해석하는 능력을 가진 게으른 사람이라면 말이다.



 주말의 동해안으로 아침 10시가 넘어서야 출발했다. 나는 집에서 입는 반바지와 5천원짜리 반팔티를 입고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 양평에서 양양의 동호해변은 차만 막히지 않는다면 약1시간 40분정도면 갈 수 있다. 점심에 도착해 밥 먹고 2-3시간 해변가에서 책보고 모래치기하고 글쓰며 시간을 보낸 후 돌아오기로 했다. 운이 좋았는지 우리는 2시간만에 동호해변에 도착했다.


 이곳을 알게된건 결군의 친구 '지현이네 가족'을 통해서였다. 지현이의 할머니가 이곳 근처에 살고계셔서 지현이네 가족은 방학때면 주말이면 쉬러오는 곳이다. 해변의 모래사장이 너무 넓지도 않고 해변가의 깊이가 적당하고 파도도 적당한, 동호해변은 적당히 잘 살아보려는 우리가족과 닮은 곳이다. 해변도로의 상가들은 너무 높지도 않으며 빽빽히 들어서 있지도 않다. 해변가에 가면 빽빽한 식당들이 트인 해변과는 정반대로 꽉막힌 감정을 들게 하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아내는 괌 신혼여행 때 샀던 16년된 커다란 스카프를 모래위에 깔고 앉았다. 결군과 나는 적당한 크기로 밀려오는 파도에 발을 담그며 모래치기를 했다. 10분정도 지났을까. 뒷목이 강렬한 햇살에 뜨거워진다. 대충대충도 레벨이 있는거 아닌가 싶다.


"와, 우리 대단하지 않냐? 여름에 해변가 오는 데, 원터치텐트는 둘째치고 양산하나 안 챙겨왔네"

"심지어 나하고 결군은 모자도 없어, 돗자리도 없고"


 1시간 쯤 놀았을까. 결군 친구 지현이네 가족이 왔다. 주말이라고 할머니네 쉬러왔단다. 차로 5분거리라서 크게 부담없이 이곳을 들락날락 할 수 있다. 옷이 젓을까 바지를 걷고 놀던 결군은 지현이와 함께 폭주하기 시작했다. 좋은 시간들이다. 이전의 시간들도, 이후의 시간들도, 그들은 관심이 없다. 오롯이 지금의 시간들에게 최선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다.


 어린이들은 기본적으로 내 안에서 찾는 행복을 추구하는 어떤 장치를 달고 있는 것 같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추구하는 내안의 행복말이다. 옷이 젓는건 빨면되는 것이고, 차 안에 젖은 채로 앉아야하는 건 잠시동안 아빠의 눈초리를 받으면 그만인것이다. 그 딴것들은 지금 당장 옷을 적시며 물장구치고 노는 이 순간보다 지극히 하찮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뭣이 중한지 아는 존재들이다.


얼마 전 성여사네 집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엄마, 예전에 엄마가 이런 얘기 했었잖아, 도대체 저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저렇게 쓰는거지?

"비슷한 나이인것 같은데 어떻게 돈을 벌었길래 저렇게 쓰는거지?"

"그랬었잖아, 이제 나도 그런걸 느끼고 있다"


 양평읍에서 코딩클래스를 운영 중인데 보통 4시타임의 수업에서는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이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빠는 회사에 있으니 엄마 차를 타고 주차장에서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차들이 거의 다 고급 수입차들이다. 부모들이 거의 우리와 비슷한 세대들인데 말이다. 이제는 타인의 부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의 시샘은 내지 않지만(시샘은 있다는 얘기다) 단지 궁금했다. 우리 세대의 저 부모들은 돈을 어떻게 버는 것일까.


 성여사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정말 빵터졌다. 엄마가 했던 이야기들을 나도 똑같이 하고 있다니. 물론 그들의 속사정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이 너무 보여지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반지르르한 겉사정과는 달리 속사정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타인과의 비교에 대한 시선은 깊이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안의 것들과 비교하는 시선에 집중한다.


 저 바닷물 속에서 주머니에 모래가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신경쓰지도 않고 그저 그 순간의 즐거움에 최선을 다하는 저 아이가 가급적이면 타인과의 비교에 우위를 두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타인과의 비교우위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도록 내 안에서 행복을 찾는 장치가 손상되지 않도록 지켜봐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뭣이 중한지 아는 존재로 성장해가도록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내가 행복한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20점에 대한 정신승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