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년의 시간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때로는 성인들까지를 대상으로 코딩클래스를 운영중이다. 초기에는 초등학생 저학년을 대상으로 블록코딩수업을 진행하였으나, 내 능력으로는 저학년의 산만함을 넘어서며까지 문제를 해결하는데에 대한 집중도를 끌어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와 더불어 날이 갈수록 코딩을 가르친다기보다는 거의 돌봄에 가깝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 쌓여가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나는 20년이상 하드웨어를 다루었고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로우엔드 임베디드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왔으며, 운영체제 및 여러 시스템을 다루어왔다. 물론 안드로이드 앱 등등 하이엔드 소프트웨어 개발경험도 있다. 한달, 두달, 시간이 흐르면서 수강생들의 코딩이라는 도구를 이용한 문제해결능력이 성장해 가는것을 보는 것은 큰 보람이었다. 그렇기에 저학년을 포기하고 초등학생의 경우, 고학년을 가르치되, 상담을 통해 부모님의 반강요가 아닌 스스로가 흥미가 있고 원하는 친구들을 선별해서 가르치고 있다.
중, 고등학생의 경우, 국영수 학원과는 달리 스스로의 판단으로 코딩클래스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처음 문을 두드릴때까지만 해도 코딩이라는 것을 하나의 '목표'처럼 생각했다가 시간이 흘러 단지 '도구'일 뿐이며 중요한 목표는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다양한 문제들의 해결에 있다는 것을 체득해나간다.
인공지능의 기술이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는 작금의 시대에 코딩의 역할 및 기능은 점점 혼란스러워지고 있다. "앞으로 개발자는 먹고 살기 힘들것이다" "인공지능의 코딩실력은 개발자들의 코딩실력을 무참히 짓밟아버릴것이다." 등등의 말들이 들불처럼 퍼져나간다. 백퍼센트 맞는 말도 그렇다고 틀린말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코딩실력 자체가 두각되는 시대는 끝났다. 코딩이라는 도구를 다룰수 있는 능력의 가치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능력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다. 문제해결능력이 좋다는 의미는 문제해결방법을 고안하고 이를 위한 시스템을 설계하고 그것을 인공지능에게 명령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시스템을 이해하는 능력 또한 요구되는데, 이 능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코드를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에 코딩은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현 인공지능의 기술적위치가 청소년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사용하고 있는 '특이점' 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의 성장기교육에 있어서 말이다. 인공지능은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풀어내야 할 최소한의 것들조차 막아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x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 경험한 세대이다. 아날로그의 내적감성과 디지털의 외적논리를 적절히 소화시켜가며 시대를 살아내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이러한 과도기없이 뛰어난 인공지능의 기술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쇼츠와 릴스 같은 짧은 컨텐츠들이 범람하는 가운데, 깊은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인공지능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짧은 시간에 뱉어내고 있다. 그들의 깊은 생각은 오롯이 학교에서의 입시공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인공지능의 발달로 지금의 청소년들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외적성장을 이루어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내적성장은 다른문제이다.
이러한 특이점의 시대에서 부모의 역할은 어떠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통제, 자녀의 SNS, 인공지능 활용의 범위, 부모의 권위, 학교의 역할 축소, 교육의 방향... 부모세대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특이점의 시대에서 부모는 어쩌란 말인가.
얼마전 시청한 넷플릭스 '소년의 시간'은 충격이었다. 원제는 'ADOLESCENCE', 사춘기이다. 특이점의 시대에서 부모의 역할에 고민하는 나에게 이 드라마는 충격이었다. 너무나 그럴듯한 상황이었고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 그리고 원테이크로 모든 영상을 촬영해서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녀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집이 있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자녀에게 방을 제공하고,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컴퓨터를 제공하고, 스마트폰을 제공하고, 부모는 그 시절 갖지 못했던 것을 자녀에게 모두 제공했다. 그렇기에 내 아이는 잘 성장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초등생인 아이가 언젠가부터 방문을 걸어잠그기 시작했어도, 새벽1시에 방문틈으로 빛이 새어나와도, 아이의 얼굴에서 문제가 되는 점이 보이지 않았기에, 부모는 방문을 열어보지 않았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들은 꼭두각시처럼 학생들에게 끌려다니고 선생님들 또한 학생들의 방문을 열어보지 않으려 했다. 학생은 역사가 좋다고 했지만 역사선생님은 그 학생이 역사를 좋아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다. 그들의 스마트폰 속 SNS 세상을 학교도 부모도 알려하지 않았다.
어떤 준비도 없이 만들어진 그들만의 SNS세상은 통제도 최소한의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 우리가 현재 맞닥뜨린 인공지능세상처럼 특이점의 세상이었다. 만약 부모들, 학교선생님들, 사회정책이 이들의 세상에 개입한다 한들, SNS 세상은 꿈쩍이나 할까.
현실세계와 SNS세계의 벽은 백짓장처럼 얇지만 아이들은 SNS세계를 뚫고 현실로 나오지 못하고, 부모는 벽이 얇으니 알아서 뚫고 나오리라 어설프게 에둘러말한다. 부모도 아이들도 백짓장처럼 얇은 벽을 거대한 만리장성을 대하듯 허물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당신 소년의 시간은 어느 방향으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 방향이 어느 방향인지는 특정할 수 없지만 잘못된 방향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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