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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발협력 직업인 Mar 12. 2024

가족들에게, 장들레

사랑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장들레의 가족들에게, 라는 노래가 있다. 

아주 나중에 이 노래를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었을 때, 그래 23년 말~24년 초에 우리 가족들에게 이런 어려움이 닥쳤었지, 하면서 웃어 넘기는 날이 올까. 그러길 바래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MDX8_8-kKO4



파견생활을 오며 이루고 싶은게 많았다. 

수년간 품어왔던 궁금증(도대체 개발협력 현장이란게 뭘까하는), 직장 내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단계를 빠르게 밟기, 남편과 단둘이 오랜 시간을 보내보며 가족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지기, 어느정도의 목돈을 모으기, 새로운 언어도 배우고.. 뭐 그런 꿈들. 


그런 꿈을 이루려 온 해외 파견 생활 3개월만에 힘든 일들이 연이어 세번, 터졌다. 


단 나를 가장 아껴주셨던 조부모님이 돌아가셨다.

친척 중에 내가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고모와 사촌도 그 장례식장에 있었는데, 생전 조부모님이 가장 아껴주셨던 나는 장례식장에 없었다. 물론 긴 와병 생활을 하셨고 의식이 없었지만 그것과 별개로 평생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더불어 언니에게 개인적인 불행이 닥쳤다.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곁에 있을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언니를 잠시 한국에서 빼와서 다른 국가를 같이 일주일 정도 여행하는 것 정도였다. 언니는 잘 이겨내왔고, 앞으로도 잘 이겨내겠지만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같이 이것저것 정리하고, 할 수 있었을텐데.


그리고 아빠가 40대부터 꿈이라고 얘기했던,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일이 어그러졌다.

아빠는 너무나 긍정적인 사람이지만, 요새는 상심에 빠져 집 옆 산에서 이것저것 에너지를 쓰려고 노력한다. 아빠의 눈물같은 것들은 너무나 낯설다. 일부러 밝은 척 전화로 애교도 떨어보고 심심한 위로의 말도 전해보지만 그 깊은 상심을 어떻게 바라봐야할지도 정하지 못하겠다. 


아, 불행은 어떻게 참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연이어 찾아오나.

나도 주재원 생활 중 가장 힘들다는 1년까지의 시간 중 이제 반, 헥헥대며 달려가보고 있는데, 많이 벅차다.


요새는 집에서 창문이 닫혀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숨을 잘 못쉬겠다. 

남편 말로는 한국에서는 내가 오히려 방문을 닫고, 창문을 닫는 사람이었다는데 나도 아주 괜찮지는 않나보다. 한 2주 정도 퇴근 후 주말에는 움직일 에너지가 없었다. 누워만 있었는데, 이것도 참 나같지 않은 시간들이라는 생각을 하며, 침대가 지면 아래로 계속해서 내려앉는 기분이라는게 이런거구나, 싶었다. 


그래도 땅으로 꺼지지 않게 중력을 잡아주는 내 옆의 그를 보면서,

가족은 결국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이라는 그 의미를 처절하게 느껴본다.  


꿈도, 돈도 다 좋지만

장들레 노래처럼 가족들과 사랑하는 일보다 중요한 건 없다.

그래. 그런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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