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 사용법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ather Aug 24. 2023

[나 사용법 2] 왼쪽 가슴에 커다란 문신이 있다.

'부분 단측성 흑자증'이라는 이름의. 

 미용실에서 한창 머리를 하고 있는데 담당 실장님 왼쪽 팔에 붙어있는 커다란 하얀 거즈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 했던 문신인데 얼마 전부터 지우고 있어요. 그땐 좋아서 한 건데 이게 나중에 저한테 별로 안 좋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지우기 시작했는데 너무 아파요."


 요즘 문신을 하는 것만큼이나 문신을 지우는 것도 유행인지 종종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문신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럽고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내게도 문신이 있다. 왼쪽 가슴에 아주 커다란. 


 내 문신에는 이름이 있는데 굳이 명명한 이름을 소개하자면 '부분 단측성 흑자증'이라고 한다. 나를 몇 년째 봐주시는 피부과 선생님은 '굳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지만 굳이 종이에 적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덕분에 레이저를 50번 해도 지워질지 말지 알 수 없다는 내 병의 이름을 이 날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워지지 않는다)



 내 문신에는 과거가 있는데 2살인지 3살인지 정확하진 않지만 왼쪽 손목 안쪽에서부터 왼쪽 어깨까지 화상자국처럼 피부병이 번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고, 무엇보다 합병증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병원의 진단이 내려졌다. 첫 아이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엄마를 (아빠 혼자 다니시던) 교회로 이끌었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기도에 매달렸다고 한다. 두 분의 뜨겁고 간절한 기도 덕분인지 내 피부병은 거짓말처럼 작은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20대 후반부터 왼쪽 가슴 아래에 다시 스멀스멀 뭐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30대 초반에 이르러서는 왼쪽 가슴 전체가 피부 병변으로 덮여버렸다. 건강 염려증 환자답게 (진짜 큰 병일까 봐) 두려워서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마치 남일을 대하듯 몇 년을 지나 보내고 나서야 '이거 심각한데?' 하는 마음이 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이렇게 대책이 없었나 싶지만 후회한다고 무슨 소용인가. 아무튼 그제야 대학병원 2곳, 유명한 피부과 1곳을 방문했다. 


"원인도 알기 어렵고, 고치기도 힘듭니다."


 어느 병원에서든 똑같은 답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초조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두 번이나 자신을 찾아온 환자를 불쌍히 여긴 (당시) 동네 피부과 선생님께서 - 처음엔 그도 고개를 저었지만 - 한 번 해보자고 하셨다. 그때 선생님은 레이저를 50번 넘게 해도 지워지지 않을 수 있는데 괜찮냐고 물으셨고 나는 '설마 50번이나 해야 되겠어?' 하는 마음을 반쯤 품고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그렇게 치료를 시작한 지 3년이 훌쩍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과 너무 먼 곳으로 이사 왔다는 핑계로 몇 개월씩 병원에 출입하지 않은 덕분에 이제 막 30회 차를 넘어선 상태인데 - 선생님 말처럼 50번에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다 - 피부 깊숙이 레이저를 쏴서 멜라닌 색소를 지워가는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다 얼마 전, 치료를 받던 중에 문득 궁금해져서 혹시 내가 받는 치료가 문신 지우는 치료랑 같은 것인지를 여쭤봤다.


"맞아요. 문신도 이 레이저로 지우는데 문신 지우는 게 훨씬 더 아프지."


 문신 지우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아플까 했었는데 내가 이걸 그들보다 더 자주 하고 있다니! 


 다행히 이 상처는 옷을 입으면 교묘하게 가려지는 위치에 있어서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친구들은 가끔 '점 같은 거야?'라고 묻는데 굳이 설명하자면 화상 같이 생겼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시를 입으면 겨드랑이 아래쪽에 살짝씩 흔적이 보이고, 수영장 샤워실에서는 사람들이 내 몸을 힐끔힐끔 쳐다보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타인의 시선보다 더 힘든 건 나 자신이 매일 이 커다란 상처를 직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피부병을 안고 살면 매일 마음을 다스릴 일들을 마주한다. 마치 내 담대함의 바로미터인 것 같다. 요즘은 그래도 군데군데 깨끗해지는 부위들이 조금씩 보여서 선생님과 함께 더욱 으쌰으쌰 하고 있지만 가끔 컨디션이 안 좋거나 습한 무더위가 계속될 때는 더 가렵거나 붉어지는 부위가 생긴다. 몇 주 전에는 병변 주위로 없었던 자국들이 생겨서 혹시나 병변의 범위가 넓어지는 게 아닐까 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다행히 피부발진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두려움과 자주 맞닥뜨리고, 마음을 지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요즘은 일부러 더 내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물망처럼 퍼진 피부병변의 모양 하나 하나를 살피며 '깨끗해질 거야 깨끗해질 거야.' 주문을 외우면서. 


 어젯밤에 너무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방황하던 중 박나래가 <나 혼자 산다>에서 빨간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 뛰어드는 클립을 보게 됐다. 우리나라에선 날씬하고 마른 몸매만 비키니를 입을 수 있는 분위기라고 생각했고 나 역시도 비키니 입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비키니는 기세야!!!'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자신의 몸매를 드러낸 그녀가 참 멋져 보였다. 가끔 비키니를 입어보고 싶단 마음이 들어도 내 몸에 있는 이 상처로 인해 포기하고야 말았던 게 사실인데, 내년엔 도전해볼까 싶다. 


 레이저를 50번 넘게 하면 내 왼쪽 가슴은 예전처럼 돌아올까? 아직은 모르겠다. 혹시 이 피부병이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더라도 이것 때문에 포기하는 것들, 못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나만 알고 있던 내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브런치에 남기는 이유다.   



 https://youtu.be/JVEGSPpoP2I?si=WtQCOTG_cegUUPu5


 


 



매거진의 이전글 [나 사용법 1] 걷는 걸 멈출 수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