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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리하는유리 Feb 24. 2020

비건이 되기로 아예 결심한 거야? 아니, 도대체 왜?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

소란스러운 점심 식사 중 갑자기 모든 동료들의 주목이 내 도시락으로 쏠렸다.


"유리, 너 비건이 되기로 아예 결심한 거야? 아니, 도대체 왜?"


그다지 반갑지 않은 질문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싸온 밥을 맛있게 마음 편하게 먹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열두 개의 눈동자가 내 도시락과 내 입 주변을 훑고 있었다. 단박에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이유는 많았지만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다. 비건이 되겠다는 결정을 한 뒤에도 한 동안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건 바로 이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항상 무언가를 먹을 때에 채식에 관한 질문이 시작될걸 예상했지만, 아직 첫 수저를 뜨기도 전에 날아온 이 질문에 자세를 고쳐 잡고 숨을 한 번 골라야 했다.


"음... 그니까 이유가 뭐냐 하면, "


어렵게 떼어놓은 첫마디는 잠시 방향을 잃었다. 내 머릿속에는 확고한데 나에게 집중된 시선들 때문인지 혼란스러웠다. 그 사이 확실히 선명해지는 이미지 하나.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뉴스를 보는데 소를 도축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라고, 모자이크도 없이 말이야. 소 머리 위에 전기 충격을 가하고 쓰러진 후에도 몸을 부르르 떠는 소의 몸에 피를 뺀답시고 도축사가 칼로 목 언저리 어딘가를 그었어. 그게 잔인하다고 생각된 건 도축사의 행동이 아니라 죽어가는 소 눈을 보면서 느꼈어. 아, 내 입으로 소고기가 들어오려면 한 생명이 저렇게 죽어야 하는구나. 그게 머릿속에 박히고 나니까 더 이상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아 졌어."


정말 진심된 이유였기에 내놓은 답변 뒤 조금은 숙연해진 주변 분위기가 부담스럽진 않았다. 오히려 말을 해놓고 나니 마음이 더 가벼워지고 경직되었던 어깨가 풀어졌다. 하지만 동료들 중 몇몇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고 내가 너무 과감 없이 말했나? 싶어서 괜스레 농담이라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이 마주 앉은 동료가 말했다.


"으으, 오늘 점심에 고기 안 먹은 거 진짜 다행이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소가 죽는 장면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숟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비건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한 동료는 자신의 시어머니가 비건이 되신 지 6년이 되었는데 집에 초대할 때마다 비건식 요리를 하기 때문에 요리법을 많이 안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멀리 떨어져 앉았던 프랑스에서 온 동료는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버터와 치즈를 안 먹고살 수는 없다며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녀의 말은 옳다. 채식주의자가 되려면 유난을 떨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주목을 끌며 살고 싶지 않은 내가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정한 뒤, 처음엔 운명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 것처럼 정해진 경로를 이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샌가 나도 몰랐지만 뚜렷이 원하던 올바른 삶의 궤도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채식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내 안의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천천히 소고기 섭취를 줄였었다. 예전엔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사랑했던 소고기의 질감과 향, 맛 모든 것이 점점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 후엔 돼지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삼겹살에 싸 먹던 쌈이 먹고 싶어서 장을 보고 열심히 고기를 구워 한 상 차렸는데 이상하게 한두 점 쌈을 싸 먹고 나니 돼지의 냄새가 역겨웠다. 분명 무항생제에 개방 사육했다는 유기농 고기를 일반 값에 배는 더 주고 사 왔는데, 입에 감돌던 기름과 살 냄새가 싫어서 결국 밥과 김치, 상추로만 쌈을 다 싸 먹고 고기는 버려야 했다. 접시를 긁어 고기를 쓰레기통으로 떨어뜨리는 나 자신이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 저녁이 내 안의 변화를 알리는 첫 시작이었다.


그 후로는 닭고기를 한 달에 한두 번쯤 먹는 것으로 육식을 이어나갔다. 약속이 있어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다닐 때 닭은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유용한 선택지였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닭에 의존하면서 살았다. 한데 그마저도 어느 날 저녁으로 먹고 남았던 차갑게 식은 닭다리에 붙은, 익어서 검게 변한 핏덩이를 보고 난 뒤 끝이 났다. 그렇게 나는 차츰 (아직은 유난스럽지 않은) 채식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다.


치즈와 계란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건 아주 최근에 들어서이다. 나는 원래 유동성 있게 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완전한 비건의 길로 들어서는 게 겁이 났다. 하지만 작년 동안 완전 비건식을 꾸준히 하면서 내 몸도 달라지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뛰자고 마음을 굳게 먹어도 달리기에 습관을 붙일 수 없었는데, 채식을 시작하고 나선 영하 5도의 겨울 새벽 아침에 뛰는 게 즐거웠다. 체질상 저녁만 되면 붓던 몸이 가벼워지고 피부가 맑아졌다. 마치 내 몸을 깨끗이 세탁한 것처럼 말끔해진 기분이 들었다. 삶의 만족도가 괜스레 먹었던 겁보다 커지자 자연스럽게 완전한 비건이 되었다.


내가 유난을 떤다고 생각하게 된 건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내 변화와 결심을 공개하고 난 후부터이다. 내 소신을 당당하게 말하는 게 남들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는 걸 여러 번 느끼고 나서, 내가 비건이 된 이유나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나뿐만 아니라 그런 나의 소신을 부담스러워하는 듣는 이 역시도 어리석어지는 일이었다. 당연히 고기를 먹으려면 동물을 죽여야 하는데, 어떻게 제육볶음은 먹고 싶으면서 돼지는 죽이고 싶지 않은 걸까? 치킨을, 그것도 싼 값에 먹으려면 수컷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이고 암컷은 신발 상자보다도 작은 닭장에서 얼마 살지도 못하는 시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죽어야 하는데, 왜 그런 사실을 이야기하면 내가 유난스럽다고만 하고 치킨이 아닌 나를 멀리할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그런 질문이 많아질수록 내가 선택한 길에 당당해지고 더 유난스러워지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나는 맛있는 채식 / 비건 요리법을 만들어 나누기로 했다. 채식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사람은 도대체 채식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알아볼 수 있고, 채식을 원하는 사람은 만들어 맛볼 수 있도록 다양한 채식 요리를 더 많이 만들어 소개하고 싶은 게 내 꿈이다.


요리법을 만들어 나누는 것 이외에 나의 유난스러움을 대변해줄 연재 글을 채식주의자가 되고 난 후 들어온 질문들을 주제로 삼아 쓰기로 했다. 내 채식 여정을 차분히 나눌 이 '유난스러운 채식주의자' 매거진에서 앞으로 격할 있는 이야기를 격하지 않게, 벅찰 수 있는 순간들을 벅차지 않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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