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표를 사고 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구글맵을 켜서 도착 예정지인 도시에 간 뒤 ‘vegan restaurant’을 치는 것이다. 지도 여기저기에 아이콘이 떠오르지만 그중 정말 비건 식당인 곳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 나는 의도치 않은 심각한 얼굴로 작은 포크와 칼이 그려진 빨간 풍선들을 누르고 후기와 사진들을 확인한다. 식당이 너무 많을 때엔 노트북을 켜서 ‘best vegan restaurants in …’을 구글링 하고 제일 평이 좋은 곳들을 고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모든 풍선 아이콘을 확인하고 나면 내 구글 지도 위에 ‘가보고 싶은 곳’ 초록 바탕에 하얀 깃발 아이콘이 여기저기 펄럭인다.
곳곳에 깃발 물결
뮌헨에서도 이미 스웨터를 꺼내 입는 시월 초, 이 곳 보다 훨씬 더 추울 바르샤바를 가기로 한 건 크게 두 이유였다. 첫째로 바르샤바는 남편이 유럽식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에라스무스를 한 곳이기 때문이다. 몇 백원하는 보드카 샷과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넘치는 무모함으로 사방을 누비며 다녔던 바르샤바에서의 남편은 사진으로만 봤었다. 붉은 두 뺨이 한껏 올라간 웃는 얼굴에 두툼한 재킷을 입고 떨어지는 눈 사이로 수줍게 웃는 그 모습 - 그곳에 나도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서 바르샤바에 가자는 나의 제안에 남편은 당연히 손뼉 치며 기뻐했다. 신이 난 얼굴의 그를 보며 나도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하지만 내가 바르샤바에 가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석사 공부를 하며 짬이 날 때마다 읽었던 미카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가리타’나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백치’의 배경인 러시아의 문화를 직접 보고 느끼고 싶어서였다.
러시아에 갈 수 없는 이유로 그나마 가장 가깝고, 그 영향을 받았던, 그리고 가장 만만한 곳을 찾은 게 바르샤바였다. 그리고 비행기 표를 예매하자마자 역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르샤바의 비건 식당을 검색하는 일이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서유럽, 그곳에서 대도시 - 런던이나 암스테르담, 베를린 등 - 을 제외하면 매 끼니를 새로운 곳에서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비건 식당이 많지 않다. 내가 일하는 뮌헨도 이제 막 비건 식당들이 생겨나고 있고 정말 맛있고 자주 가는 곳은 손에 꼽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구글 지도에 바르샤바를 쳤을 때 물결치는 빨간 아이콘들에 ‘와, 진짜?’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이 놀라움 가득한 도시에 대해 아는 게 없었으니 기대도 없었거니와 전에 일하던 회사에서 만났던 폴란드 동료들이 얼마나 고기를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그 많은 비건 식당 수가 놀라울 뿐이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며 음식 사진을 보는데 내가 사랑하는 중동식부터, 일본식, 폴란드 요리 전문점까지 종류도 너무나 다양했다. 덕분에 바르샤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던 그 날까지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은 마음에 몸이 들썩이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바르샤바로 향하는 아침 비행기
문화 과학 궁전
아침에 도착한 바르샤바는 아주 적절히 추웠다. 가져온 재킷도 알맞게 낮아진 온도를 막기에 충분했고 우리는 바르샤바 중심지부터 걷기 시작했다. 원래 삶이 주는 것들에 대해 기대가 거의 없는 편이어서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 도시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 힙함이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오고 공산주의적 신식 건물과 구시가지의 또렷한 차이가 도시에 진한 명암을 드리웠다. 처음 보는 형태의 문자들, 색다른 스타일의 옷을 입은 사람들에 호텔까지 걸어가며 구경하는 재미에 30분이 아까울 정도였다.
호텔을 나와서
빠르게 짐을 두고 나와 호텔과 가장 가깝고 가고 싶었던 식당 Nancy Lee로 향했다. 독일도 그렇지만 내가 가 본 비건 식당 대부분은 인테리어가 다르더라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슷한 분위기와 주인의 감성이 흐르는데, 비건 식당은 아니었지만 이 곳도 같은 느낌을 주었다. 투박하면서 상업적이지 않은, 여기저기에 애정이 묻어나지만 관리는 안 한 듯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참 좋았다.
정겨운 Nancy Lee
빼꼼한 고양이
이 곳에서 두터운 하얀 식빵 사이에 부드럽게 구워진 노란 고구마와 아보카도를 잘라 만든 샌드위치를 먹었다. 따뜻한 오트 라테와 함께 먹으니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 비행기를 타느라 배가 많이 고팠던 우리의 춥고 짧았던 대화도 길어졌다. 고소하고 든든한 바르샤바에서의 첫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음 장소를 어디로 갈지 정했다. 남편이 공부하던 바르샤바 대학교에 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