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목표로 매주 하나의 글을 써보겠다는 다짐이 성글어지고 나니 점점 글쓰기 알림을 가볍게 무시하는 지경이 됐다. 그동안 나는 반복적이나 똑같지는 않은 일상적인 날들을 보냈다. 가깝던 사람과 불편한 감정들을 겪어냈고, 발령 이후 꾸준히 괴롭히던 관사도 최종적으로 떠나게 됐다. 이전의 나라면, 너무 분통해서 글에 나마 휘몰아치는 감정을 털어놨을 텐데, 최근의 나는 부정적인 감정도 ‘그럴 만하다’며 스스로 인정했고 그 와중에 좋은 점들을 바라봤다. 그러다 보니 적당히 화났고 적절히 화내고 가뿐히 다스릴 수 있었다. 이전만큼 분하고 억울해서 쓰린 마음이 오래 가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반복적인 날들을 보냈지만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 살만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의 하루에 집중하다 보니 유난히 최근에 선택의 순간이 많음을 발견했다. 매 순간에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본 것이다. 그건 곧 내가 원하는 것 대신 남에게 의존해 왔다는 것이다. 내 생각이 없는 게 아닌데 선뜻 택하지 못하는... 최선을 택하려는 모습 이면에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시시콜콜 의견을 묻고 결정에 도움을 주던 사람이 부재하니 더 이상 물어볼 남도 없었고, 그럴 수만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고 그 선택을 스스로 지지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선택은 이렇다. 내 마음에 크게 자리한 옷 색상과 폴웨어 디자인 고르기, 패키지와 자유여행 중 여행방법 택하기, 출장과 출퇴근 시 이동방법 결정하기 등등. 너무나 사소하지만 여러 선택지 중에 기준 없는 최선을 고르기 위해 애썼던 내가 조금은 짠하고, 하나씩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게 대견하다.
서른. 방향을 잡아가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비전과 열정이 분명했던 시기를 지나 시도 때도 없이 부어지는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어느새 방향을 잃은 나를 본다. 다시 나의 정체성과 방향을 점검할 시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은 어려운 상황과 감정을 겪는다 하더라도 나는 미세하게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를 드러내던 20대 초반과 화려했던 중반, 혼란의 시기를 보냈던 후반을 지나 가장 약한 나를 만나는 지금. 그래 나는 서른이었다. 연약한 나를 스스로 안아줄 수 있는 그 시작. 끓인 누룽지처럼 뜨뜻한 겨울을 보내야지. 그리고 더 구수해져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