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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 Jan 14. 2024

분노의 대상을 찾고 나면

감정을 다스리고 효율적으로 일하기

 24년이 온다 온다 하더니 23년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했다. 보내는 건 급히 했지만 맞이하는 건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내고 감사히 하고 있다. 새 해에도 즐거운 일은 있고 화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나의 마음이 분노와 비난, 후회에 오래 머물지 않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든, 친구관계든, 가족이든 누군가가 밉거나 분노할 때에는 적절한 대상에게 그에 맞는 감정이 나가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주 잠잠하던 사무실에서 슬픔과 의아, 복잡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이 감정이 맞는지, 무엇 때문인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감정을 키우지 않았고 해결방안을 찾아 결국 예상치 못한 칭찬도 듣는 일이 생겼다.      


매주 일요일 2시 30분에 시작하는 30분짜리 프로그램이 있다.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정기적이지 않은 주말근무를 하는데, 당분간은 해당 고객이 1시에 올 수도 있으니 미리 와서 준비하라는 대리의 명령(?)이 있었다. 조만간 나의 차례가 있었기에 명확한 시간을 알고자 했다. 30분 때문에 1-2시간 일찍 나와 대기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았으며, 나의 경우는 기존대로 2시 반에 프로그램을 해야지만 주일 예배를 드리고 점심은 생략한 채로 부랴부랴 와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 즈음은 남들이 상관할 바 아니겠지만, 신앙 생활한다고 남에게 피해 준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기에 최대한 맡고자 했다. 

정확한 시간을 물으며, 내게 할당된 부분은 맡아서 하고 싶음을 이야기했고 부득이하게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한다면 구하는 건 내 몫인 거였다. 그러나 그에 대한 답이 “‘확실히’가 없다” 하는 무책임하고 모호한 말이었다. 그러니 일찍 오라는 말. 덧붙여 ‘고객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일찍 와, 그날 한번 일찍 오는 게 안 돼? 1시까지 오는 게 안 되면 어쨌든 근무 안 하겠다는 거 아니야?’라며 삿대질에, ‘너’라는 지칭을 들으며 비난이 가득 찬 표정이 돌아왔다. 그때에 불쾌한 감정이 나 또한 상대를 향해갈 뻔했다.

 

한 박자 쉬면서 불편한 이유를 꺼내보았다. 명확히 언어화하는 거다. 그냥 기분이 그렇고 느낌이 그런 것 말고. 객관적으로 보니 미운 대리의 미묘한 언행 뒤 구조적인 문제가 보였다. 30분 프로그램을 위해 주말근무를 해야 하고 주말근무를 하면 평일에 휴무가 발생해서 정작 필요할 때 인력난이 생긴다. 소수인원 30분을 위해 근무하는 것까지는 서비스차원에서 이해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고객을 한두 시간 더 기다리는 것은 정말 효율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입대비 산출이 적절하지 않은 데다가 유동적이기까지 한 사업을 붙드는 이유가 있는 거라면 적어도 '아니다' 생각하는 부분은 고쳐야지 직원한테 맞추라고 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뜩였다. ‘원래’라는 것은 없다. 아무 때나 와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바꾸거나 조율해야지, 기본적으로 휴일인 시간에 개인의 신앙을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 일찍 오고 말고 할 게 아닌 거다.     

 

틀을 바꾸기보다 그 안에 사람이 바뀌어주기를, 맞춰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많다. 그게 쉬우니까. 그러나 애꿎은 감정 낭비를 막으려면, 효율적으로 일하고자 한다면 가끔은 너무 익숙한 틀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다. 잠깐은 일이 늘어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익숙함에 빠져 당연시 여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기를 바라본다.      


그래서 매주 일요일 30분만 운영하는 아주 유동적인 그 사업 담당처인 시청에 연락을 취했다. 우리 측의 나몰라라 하는 사업 담당자도 아니고, 필요 이상으로 을이 되어 일찍 나와 대기하라는 대리도 아니지만, 그냥 문제를 발견한 이상 그대로 두어 그들처럼 일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은 내가. 그전에 팀장님에게 전화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팀장님은 내 생각이 맞다며 지금까지 안일하게 생각한 거라며 내 의견을 지지했다. 그 뒤 시청에 연락하여 문제상황을 간략히 설명하고 명료하게 이야기했다. 정해진 시간을 지켜줄 것을. 해당 담당자는 정해진 시간에 프로그램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며 동의했고 어렵지 않게 약속받았다. 이렇게 전화 한 번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을 많은 직원들이 불편하다고 생각만 하고 매주 해왔다는 게 황당하고도 이제야 내가 주일 근무를 함으로써 발견한 게 민망하기도 했다. 




개인의 신앙이 존중받지 못한다는 슬픔과 함께 일하려 애쓰는 마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속상함, 왜 이렇게 하고 있지? 하는 답답, 분노... 복잡한 감정이 올라왔지만 결국엔 다른 직원들로부터 ‘감사하다’, ‘덕분이다’라는 말을 듣게 된 사건이었다. 여전히 30분이라도 근무하러 주말에 출근해야 하지만 그래도 불필요한 시간을 쓰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후로도 삶을 살아왔고 살아갈 우리들은 익숙한 대로 그 상황에 자신을 끼워 맞춰가며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꿎은 대상에게 화가 나고 비난이 향하고 있다면 멈춰서 생각해 볼 때 일 것이다. ‘이 감정이 이 대상에게 향하는 게 적절한가?’, '내가 견디면 해결되는 일인가?'를 말이다. 그러다 보면 괜한 감정적인 반응도 줄어들고 일이든 관계든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은 나를 만들어 갈 거다. 


요즘따라 귀여운 동생이 새해 맞이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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