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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20. 2022

기념일

글쓰기 모임에서의 첫  글

  우리 가족은 다른 집들과 달리 서로의 생일을 성대하게 챙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족끼리 친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빠 엄마는 서로에게 늘 다정했고, 나랑 내 동생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럼에도 생일은 그냥 아침에 미역국 먹고, 시간이 되면 저녁 후식 시간에 케이크 먹는 정도로 끝이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엔 ‘생일 선물 뭐 받았어?’라는 친구들의 질문에 그냥 얼버무리며 넘어 간 적이 태반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은 우리 집의 잔칫날이었다. 우리는 엄마 아빠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고, 엄마 아빠는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아빠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화분을 사 왔고,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식탁을 가득 채웠다. 동생이 스무 살이 되고 나서부터는 꼭 둘이 여행을 가기 시작했다. 제주도든 외국이든, 아빠가 휴가를 낼 수 있는 만큼 잔뜩 몰아 써서 일주일씩 어디론가 떠나셨다. 


  그러다 내가 결혼을 했다. 나에게도 결혼기념일이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 총 세 번의 결혼기념일이 지났다. 우리는 무엇을 했었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생각을 해보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어디 살고 있었나 싶어서 방금 아이폰 앨범을 열어보니 결혼하고 양양으로 이사 와서 계속 양양에 있었던 것 같다. 뭘 해야 하는 날도 아니고, 심지어 이벤트 같은 건 좋아하지도 않는 나인데, 뭐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기억도 안나는 거 보니 약간 서글퍼졌다. 


  그 와중에 작년 결혼기념일은 똑똑히 기억난다. 아버님을 보내드렸던 날이다. 장례식에 와 있던 모든 분들이 나를 안쓰러워했다. 결혼기념일에 발인이라니 너무 한 것 아니냐며, 다들  한 마디씩 하셨다.  나는 오히려 결혼기념일이 무슨 대수냐며 그분들을 위로했다. 나는 지금도 아버님 기일과 우리의 결혼기념일이 붙어 있는 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서로의 생일도 안 챙기면서 뭐한다고 그렇게 결혼기념일을 기념한 걸까. 엄마 아빠는 우리 앞에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 그런 부부인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연인의 태어난 날이 더 중요한 거 아닐까. 결혼하고 네 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지만, 나는 여전히 완벽하게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어디에 살았는지 기억도 안나는 나의 결혼기념일도 좀 별로다. 오늘 밤에는 엄마에게 물어봐야겠다. 어렴풋이 알겠으면서도 모르겠는 엄마 아빠가 결혼기념일을 성대하게 챙기는 이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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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2022.02.15. @속초 앤커피하우스 

글쓰기 모임에서 쓴 첫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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