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낮은마음 Dec 13. 2021

가장 위대한 초(超)능력

행복의 기준에 매달리느라 불행해진 당신께

불행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은 그 원인을 외부 환경이나 상황에 돌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처해있는 상황과 환경이 달랐다면 이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모가 아름다웠다면, 우리 집 형편이 좀 넉넉했다면, 내가 머리가 좋았다면, 그래서 공부를 잘 했다면, 이 조건이, 이 환경이, 이 상황이 이렇지 않았다면 난 행복했을 텐데...!


이런 생각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불만족의 원인이 상황과 환경에 있다는 생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또 그렇게 힘써 일해 얻어낸 성취로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경향의 본질은 결국 내면이 아닌 외적인 조건을 달성하여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온전한 행복을 얻기는 어려운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뜻대로 자기가 처한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그런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일으키는 것이 바로 '초능력'이다. 창작물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초능력을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능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런 능력이 있으면 지금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초능력이 있으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초능력자가 되면 행복해 거라는 생각은 '초능력'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만약 초능력을 내가 원하는대로 '상황과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한다면 그런 초능력은 결코 온전한 만족을 가져다줄 수 없다. 외부의 상황과 환경에 의해 자신의 행복이 결정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사람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온전히 만족할 수가 없다. 흔히 이야기하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어렸을 적에 강한 무력이나 순간이동,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이런 능력들은 모두 자기 뜻대로 상황을 바꿀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런 능력들은 이미 기술의 발달로 전부 구현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술의 도움으로 무거운 것을 들거나 빠르게 이동하거나 원거리에서 통신할 수 있다. 기술은 계속해서 발달하고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쉽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 마음대로 상황과 환경을 바꾸는 능력은 겉으로 보기엔 대단해보여도 잡술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돈이 생기면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고, 자기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빈곤하다고 생각해서 또 불행해진다. 명예가 행복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으면 잃을까봐 염려하고, 자기보다 더 큰 명예를 가진 사람이 질투나서 불행해진다.


외부 환경에 의해 나의 행복이 결정되기 때문에 외부 환경을 바꾸려고 애쓰게 된다. 그런 사람은 돈과 명예와 권력과 색욕의 노예가 된다. 세계는 가변성으로 가득 차 있어서 언제 상황이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가진 것을 잃을까봐 항상 노심초사하게 된다. 또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늘 있기 때문에 계속 열등감을 느낀다. 없으면 없어서 불행하고, 있으면 없어질까봐 불행하고, 충분히 있어도 더 가진 사람들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불행하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초능력'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단 말인가?


진정으로 위대한 초능력은 내 '마음'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다. 약간 말장난 같아보일 수 있으니 다르게 표현하자면 내가 '원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좀더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데, 지금은 놀고 싶어도 참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힘들다고 피하지만 말고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이런 나쁜 마음을 품으면 안 되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미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지만 마음이 실제로 그렇게  않는다. 원하기는 해도 그렇게 마음 먹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매우 힘들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화가 난다. 화가 난 다음에 참는 것과 화가 처음부터 안 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화가 난 후에 참으면 겉으로는 괜찮아보여도 이미 내상을 입은 것이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정직하다.


속해서 속마음을 숨기고 내색하지 않으면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표리부동한 상태를 오래 유지하는 사람은 내적으로 엄청난 손상을 는다. 마음은 웃고 있지 않은데 얼굴은 웃어야 하고, 마음에는 사랑이 없는데 사랑하는 척 해야 하면 마음도 힘들겠지만 몸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내가 바라는 것을 바랄 수 있는 능력, 내가 원하는대로 원할 수 있는 능력, 내가 옳다고 느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  내가 옳게 여기는 바를 행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초(超)능력이다.


'초(超)'란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외부에서 형성된 행복의 기준에 목이 매어서 그 기준을 달성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불행해진다.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어 자신의 원함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온전한 행복을 가능케하는 위대한 초능력은 바라는대로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초능력, 온전한 만족을 가져다줄 수 있는 초능력은 바라는대로 바랄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마음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 있더라도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염력이나 순간이동, 텔레파시 같은 초능력과 달리 이런 '초능력'은 간절히 바라며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얻을 수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