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을 여행하며 만난 바다와 나 그리고 당신
세계 여행 중 잠시 동행했던 친구가 말했다. 세계일주나 어느 여행이든 우리가 밟고 있는 땅 길을 보기 위한 떠난 여행이 아니냐고. 그리고 내게 물었다. 평생 다 보지 못할 만큼 무진한 세계의 문화와 유적지, 자연유산을 골라 보며 세계를 보았다고 할지라도 ‘물길’은 모르지 않냐고. 그랬다. 나는 물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물길이 무엇인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물론 내 여행 계획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태양계의 유일한 물의 행성으로 바다가 지구 표면의 70%에 면적을 차지한다지만 이곳을 모르고 지나치기엔 세계 여행자라는 이름이 무색했다. 물길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하게 된 다이빙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길 만큼이나 무궁무진한 해양 생물과 원시적 자연이 그대로 숨 쉬는 물길을 볼 수 있게 해줬다.
처음 스쿠버다이빙을 접하고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깊고 고요한 바닷속에서 내 숨소리를 듣는 순간이 좋았다. 무중력의 상태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듯 유영하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마주하는 순간이. 세계를 보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지만 물길을 안 순간, 나는 쉽게 바다를 떠나지 못했다. 그런 바다는 지금까지 알 수 없었던 느낌과 새로운 세상을 선물했다. 바다를 알지 못했다면 평생 보지 못 했을 풍경들과 행복이다.
바다와 가까워지자 조금 더 자유롭게 푸른 바닷속에서 오래, 깊게 머물고 싶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된 프리다이빙은 스쿠버다이빙과는 또 다른 세계였다. 어느 장비의 도움 없이 내 힘으로 바닷속으로 더 깊게 내려가기 위한 극한의 스포츠로 보였다. 매 순간마다 생사의 기로에서 한 걸음씩 발을 내딛는 외줄 타기처럼. 스쿠버다이빙과는 다르게 프리다이빙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보는 기록 종목이기도 했다.
하지만 깊이를 떠나 자유롭게 돌고래나 고래와 함께 맨몸으로 유영하는 프리다이버들의 모습은 인간의 한계가 아닌 인간의 숨은 능력처럼 보였다. 우리도 그들처럼 자신의 힘으로 물속에서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으로 해양 생물들과 교감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그런 확신과 함께 프리다이빙에 더욱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필리핀 보홀로 프리다이빙을 배우기 위해 찾았다. 레벨1 과정으로 프리다이빙의 생리와 장비, 기술을 배우며 처음으로 바다에 나갔을 때에 순간은 아직도 또렷하다. 바다 한가운데 내려진 로프를 따라 한 손씩 잡으며 물속으로 내려가자 산봉우리를 오르는 암벽등반처럼 조금씩 목적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생각과 느낌도 없이 너무나 편안하게 바다에 머물고 있었다. 바다가 머금은 빛과 고요함 속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프리다이빙 횟수가 많아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내면으로 잠수하기 시작했다. 깊이 갈수록 내가 모르던 나에게로. 나와 마주하는 순간이 길어질수록 이 순간에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수심이 깊어질수록 나를 알아가기 위해 내 생각과 몸에 작은 울림에도 귀 기울였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바다에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
처음 필리핀 보홀에서 프리다이빙을 배운 지 반년 만에 다시 이곳에서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단지 내가 느꼈던 바다의 고요한 평화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 프리다이브 팡라오에서 김동하 트레이너와 함께 FITC(Freediving Instructor Training Course)를 위한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프리다이빙 강사가 되기 위해서는 강사로서 프리다이빙 이론에 대한 이해와 전문적인 강의 능력 평가 외에 프리다이빙 기술과 스태미나 평가가 중점이었다. 특히 프리다이빙 기술과 스태미나 부분에서는 정확한 수심과 시간, 횟수로 최소 요구 조건을 명시하고 있었다. SSI 프리다이빙 강사의 최소 요구 조건은 컨스턴트 웨이트(CWT, 고정 웨이트) 40M 이상, 스태틱(STA, 숨 참기) 4분 이상, 다이나믹(DYN, 수영장 잠영) 85M 이상, 다이나믹 노핀(DNF, 수영장 핀 미착용 잠영) 50M 이상으로 그 외 수심 25M에서 블랙아웃 다이버 레스큐, CWT 20M 1분 간격 5회 연속 다이빙 등 기본적으로 강사로서 필수적인 자질을 검증하는 평가다. 해양과 수영장에서의 종목 모두 프리다이빙 레벨3 다이버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준비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프리다이빙 강사의 준비과정은 최소 3개월의 기간을 기본으로 한다. 레벨 1에서부터 해양과 수영장 모두 점차적으로 수심을 늘려가며 개인적인 체력단련까지 병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생활 습관도 프리다이버에 맞는 식단 조절과 명상, 요가로 자신을 돌봐야 한다. 그 밖에도 기존 교육이 있을 때는 보조 강사의 역할을 하며 자연스럽게 과정 별 교육 진행 방법과 교육 기술을 터득할 수 있다. 특히 3개월의 준비 과정 동안 많은 학생들을 만나 함께 트레이닝하며 프리다이빙에서 가장 중요한 이퀄라이징 문제와 체력, 심리적인 다양한 문제에 따른 해결 방법의 노하우를 함께 공유하는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프리다이빙 강사가 된 후 4개월 동안 여러 학생들을 만났다. 물길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처럼 단순히 프리다이빙에 대한 호기심이나 스쿠버다이빙 경험은 많지만 장비에 도움 없이 바다와 만나고자 하는 이들이었다. FITC에서 배운 그대로 학생과 강사의 관계에서 교재와 경험에 의지해 교육을 시작했다. 학생들이 내가 생각하는 수준만큼 따라오지 못할 때는 학생의 능력 차였지만 그 이상으로 해냈을 때는 내 역량으로 생각해 자만했다. 한동안 누구보다 더 깊이 내려가거나 숨을 오래 참는 수심과 시간의 명확한 수치에 따라 교육의 성과를 판단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학생들과 바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정작 프리다이빙 강사의 가장 필요한 능력은 따로 있다는 걸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사 신분이 아닌 처음 프리다이빙을 배우던 교육생이었던 나를 생각하면 됐다. 그때의 나의 강사는 어떻게 내가 바닷속에서 나를 만날 수 있게 했는지, 깊이와 시간을 떠나 자신에게 잠수하며 더 깊게 빠져들게 됐는지를.
프리다이빙을 처음 접한 누구나 바다에 더 깊이,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내가 처음 프리다이빙으로 바다를 만났을 때처럼 수심 10m를 편안하게 내려갔다면 다음에는 20m로, 그다음에는 30m를 지나 끝없이 늘어나는 물길의 거리는 나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확인하는 징표와 같다. 그만큼 내려갈수록 수면과 멀어지지만 깊은 바다에 대한 동경은 끝이 없다.
오랜 시간 세계의 다양한 물길을 여행하며 누구보다 바다를 사랑한 다이버들도 프리다이빙의 물길은 전혀 다른 길이라고 말한다. 장비의 도움 없이 나 스스로의 힘으로 바다와 하나가 되어 나를 만나는 길이라고. 그 물길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 마주하는 또 다른 물길 여행.
그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한계까지 잠수하기 위해 자신을 이해하고 바다와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프리다이빙 강사의 몫이다. 더 깊게 들어가는 법, 숨을 오래 참는 법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바닷속 자신에게 집중하고 스스로 다가갈 수 있게 그 물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바닷속으로 자기가 모르던 자신을 만나는 길에 동행같이. 내가 처음으로 푸른 바다에서 나와 마주했을 때 내 옆에도 강사가 함께 했던 것처럼. 자신을 만나기 위해 전혀 물길을 몰라도 그 푸르름 속에서 평화를 찾고 자신을 만나기 위해 찾아온 이들의 물길 동행이 된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나를 만나러 가는 길, 프리다이빙. 그 행복한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하고 싶다.
* 스쿠버다이빙 웹진 <스쿠버넷 매거진> 2014년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