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 l o a n Dec 19. 2017

그렇게 지고

18 DEC 2017


나는 감정의 기복이 있긴 하지만

잘 잊는 편이라

불같이 화가 나거나

바닥으로 꺼질 것 같이 무력할 때도

잠깐 돌아서면 다시 호호하는 장점이 있는 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더 깊고 깊게

자신만의 우물안으로 계속해서 들어간다.


어느 날인가,

너무 안 좋은 느낌이 갑자기 들어서

혼자 있던 걔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라고 메세지를 보내고,

보통때보다 더 기다려도 답이 없길래

전화를 걸었는 데도 묵묵무답.

심각하게 걱정이 되어

찾아가고 싶었으나 찾을 수도 없는 상황에

발을 동동 굴렸는 데,


한참있다 답이 오기를

'정말 어젯밤부터 죽고 싶은 생각에 맘이 안 좋았어.

근데 지금은 괜찮네. 고마워'

란 답을 듣고 철렁했던 적이 있었는 데,

오늘 버스정류장에서 뉴스를 열어보고는

그 때 그 철렁거림이 두 다리에 전해졌다.


혼자, 우물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꾸 옆에서 귀찮게하고

발랄하게 같이 웃어주고, 같이 먹자고 조르고

우물안에 더 깊게 못 가도록 도와주고 싶지만

때로는 그 도움이 더 악이 될까봐 조심스럽고,


결국 본인이 그 최악의 순간을 질끈 눈을 감고 버티면

어떻게든 생을 이어갈 순 있는 데,

그 겨우겨우 이끌어가는 생조차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면 그 때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울고 웃고 다시 울고 또 울고 웃고..


멤버 중엔

가장 강건하다고 느꼈다.

다른 친구들보다 인상이 강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고집, 욕심, 목표가 확고해보여서

어릴 때부터도 어른스럽다고 느꼈는 데,


결국 그 강건함 때문에

더 삶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라는 생각이 드니

자꾸 나를 투영하게 된다.


선을 너무 굵고 우직하게 세우면 오히려 길게 버티기가 힘들고,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오래 가긴 하지만 이게 맞는 건지 굳이 이렇게 까지 풀어져서 끌고 가야 하는 게 맞는 지 혼란을 주는 인간의 삶이란..


언젠가부터

이 우주만물 전체를 두고 봤을 땐

쇠똥구리나 '나'라는 개체사이에 큰 차이가 없을 거라고 가끔 생각이 드는 데,

쇠똥구리나 쇠똥구리로 태어나 쇠똥을 굴리며 살듯이

사람도 그저 사람으로 태어나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생을 꾸역꾸역 사는 것이

만물이 돌아가는 그 원리가 아닐 까 하는 생각이.

그저 도리를 지키며 수명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자 운명이라고 하면

누구보다 더 뛰어나야 하고 누구보다 더 잘 살아야 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가져야한다,

이런 건 정말 부질없는 허구란 생각 뿐.




너 고생하고 있어. 알어 알고 있어. 란 말이

듣고 싶었다는 게 가장 슬프다.

가장 어른스러워서

가장 씩씩하게 잘 해내서

너에게 꼭 필요한 위로를 많이 못 받았었구나.

그곳에선 편히 쉴 수 있기를.








작가의 이전글 2018 결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