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TRAVEL Dec 27. 2018

WELCOME TO HIGHWAY

ARTRAVEL VOL.35



WELCOME TO HIGHWAY


 아트래블 편집부  






가장 먼 시간을 타고 달려 

AUTOSTRADA │ITALY DISTANCE 75km LIMITED SPEED 130km  


도로 위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슈퍼카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람보르기니와 페라리가 가장 먼저 생각났다. 두 자동차 브랜드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슈퍼카 제작 회사. 이렇게 멋진 자동차를 만드는 나라라면, 그에 걸맞은 도로를 갖추고 있을 거라 확신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성능을 가진 차라도 잘 닦인 도로가 없다면 아무짝에 쓸모 없으니 이탈리아엔 분명 특별한 하이웨이가 있을 것. 첫 번째로 우리가 여행할 이탈리아의 도로는 아우토스트라다(Autostrada)다. 


아우토스트라다는 '자동차의 길'이란 뜻을 가진 도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동차 전용도로. 세계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이기도 하다. 현재는 수많은 간선 도로가 연결되어 이탈리아와 폴란드까지 이어지는 모든 자동차 전용도로를 아우토스트라다라고 부르지만, 1923년 완공된 최초의 아우토스트라다는 이탈리아 밀라노와 북부 산악 마을을 잇는 도로가 전부였다.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아우토스트라다 노선은 A8, A9번 도로가 지나는 '아우토스트라다 데 라기' 노선이다. 


아우토스트라다 데 라기 노선은 밀라노와 북부 산악 도시인 바레세, 스위스의 키아소를 잇고 있는데, 길이를 다 합쳐봐야 고작 75km 남짓이다. 하지만 이 짧은 도로가 세계에서 가장 나이 많은 하이웨이다. 단순히 길이로 도로를 가늠하긴 어렵다. 두세 시간이면 끝이 나버리지만, 이 도로를 달리는 일은 하이웨이의 역사를 훑는 일이다. 그러니 이 여정을 길이가 아닌 시간으로 계산해 보자. 아우토스트라다는 세계에서 가장 먼 시간을 타고 달리는 길이다.    




RECOMMEND MUSIC_ LA BAMBA-RITCHIE VALENS


<La Bamba>는 1950년대 미국 최고의 로큰롤스타 인 리치 발렌스(Ritche Valens)의 곡이다. 멕시코에서 전통적으로 결혼식에 사용하던 음악을 편곡해 만든 노래. 흥겨운 멜로디와 스페인어로 구성된 가사가 흥을 돋운다. 이 곡을 불러 대중적 사랑을 받은 리치 발렌스는 고작 17세의 나이에 비행기 사고로 요절했다. 그의 생애를 영화화한 작품인 「La Bamba」가 1987년 개봉하며 전세계적인 히트곡이 됐다. 짧지만 강렬하고, 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역사가 된 가수 리치 발렌스의 노래 <La Bamba>. 길이는 짧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아우토스트라에서 들으면 조금 더 특별하게 들릴 것.  




악마를 보고 싶다면 

THE ATLANTIC ROAD│NORWAY DISTANCE 8km LIMITED SPEED NONE   


삶에서 악마를 마주할 뻔한 기억이 있는가.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혹은, 자동차를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도로 위에서 아찔한 순간을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도로 위 최악의 악마는 음주운전이다. 비틀거리며 위태롭게 주행하는 차량은 본인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위험에 빠뜨린다. 여기, '술 취한 도로'라는 별명을 가진 길이 있다. 물론, 운전자들이 모두 만취상태로 운전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아틀란틱 도로(The Atlantic Road)는 1989년 완공됐다. 노르웨이 서부 만에 있는 섬들을 이어주는 도로로, 섬과 섬 사이는 교량으로 연결돼 있다. 아틀란틱이란 도로의 이름처럼 대서양을 달리는 도로다. 약 8km의 길이로 여덟 개의 교량을 지나쳐야 한다. 바다 위를 달리는 도로의 모양도 심상치 않다. 요상한 곡선을 그리며 나있다. 이 도로를 만드는 과정마저도 순탄치 않았다. 6년의 공사기간 동안 총 12번의 허리케인을 마주했다고. 도로의 모양이 왜 이렇게까지 그로테스크한지. 논리적이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묘하게 이해가 간다. 


언젠가 영국의 유명 일간지 「가디언」은 세계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도로로 아틀란틱 로드를 소개한 적이 있다. 마치 허리케인을 정통으로 맞아 휘어져버린 가로등처럼 생긴 아틀란틱 다리는 언덕을 다 오르기 전까지는 마치 하늘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 언덕 정점에 서면 급격한 내리막길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서 사람들은 악마를 보곤 한다. 아찔한 경사로를 내려가다 보면 그대로 바다로 고꾸라질 것 같다. 게다가 이 도로엔 제한속도가 없다. 자신 있으면 달려보라는 말이다. 이 도로를 계획한 사람은 진짜 악마가 아닐까.   


 



RECOMMEND MUSIC_HIGHWAY TO HELL-AC/DC


<Highway To Hell>은 호주의 전설적인 록 밴드 AC/DC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곡이다. 이전에도 이미 성공적인 밴드였지만, 이 노래의 등장으로 세계적인 슈퍼스타 반열에 올랐다. 리드보컬이 본 스콧이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앨범에 수록된 곡이기도 하다. 놀라운 사실은 1947년생인 이 밴드가 여전히 활동 중이고, 그들의 콘서트가 여전히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다는 거다. '나는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탔어!'라는 <Highway To Hell>의 가사는 악마의 도로, 아틀란틱 도로와 특히 잘 어울린다. 아틀란틱 도로를 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꽃을 보려면 내려오세요 

THE ATLANTIC ROAD│NORWAY DISTANCE 1,200km LIMITED SPEED 50-60km(구간마다 다름)  


누구나 세상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있다. 이것이 나쁘다고 하지 않겠다. 높은 곳에 오르면 발 아래 놓인 세상은 그림처럼 보인다. 낮은 지대에서 보는 세상이 저마다의 색채를 가진 물감을 경험하는 일이라면, 높은 지대에서 보는 세상은 그 물감들이 모이고 섞여 만들어진 한 폭의 완성형 그림을 보는 일이다. 가끔 낮은 지대로 내려와 물감 하나하나의 색채를 음미할 여유만 있다면, 가장 높은 곳에서 사는 것도 좋다. 여기,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가 있다. 파키스탄과 중국을 잇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 이곳에 계속 머물지, 아니면 다시 아래로 내려올 지는 전적으로 운전자의 몫이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위치한 카류가르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까지 이어진 1,200km의 도로다. 카라코람 산악지역을 통과하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도로의 고도는 무려 4,700m에 이른다. 수많은 봉우리뿐 아니라, 장엄한 얼음계곡까지 지나는 길.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지나는 길목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빙하인 발토르 빙하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 있는 해발 8,000m 이상의 산이 5개 있는데, 이 도로는 그 모든 산을 가장 가까이서 스치며 지나간다.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유명해진 건 높이 때문만은 아니다. 봄이면 도로 아래로 만개하는 복사꽃과 여름이면 짙은 초록으로 빛나는 나무들, 붉고 노랗게 물든 가을의 단풍이 만들어내는 풍경이 가히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수 만 그루 나무에 달린 꽃과 열매는 하나의 그림이 되어 운전자를 유혹한다. 그때부터는 운전자의 선택만 남는다. 높은 도로를 계속 달릴 것인가, 아니면, 수 억 개의 꽃잎 중 몇 개를 직접 마주할 것인가.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둘러싼 풍경은 운전자의 갈등을 모른다. 여전히 유혹을 멈추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아름다운 그림, 어떤 물감으로 그렸는지 궁금하지 않니? 궁금하면 내려와 보렴."    




RECOMMEND MUSIC_WONDERFUL TONIGHT- ERIC CLAPTON


하이웨이와 어울리는 노래를 고르라고 하면, 대부분 빠르고 신나는 밴드 곡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카라코람 하이웨이와는 보다 낭만적인 노래가 더 잘 어울린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에는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남자 에릭 클랩튼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바친 노래 <Wonderful Tonight>이 제격이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결국 그곳을 내려오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꽃을 사랑하는 이가, 카라코람의 복사꽃 군락을 그냥 지나칠 수야 있겠는가. 가장 높은 곳에선 꽃들의 잔치는 볼 수 있겠지만, 그 중 오직 자신에게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 한 송이 꽃을 만날 수는 없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에선 조금 더 낭만적일 필요가 있다.   




자동차 말고 모터사이클 

AUTOSTRADA │ITALY DISTANCE 75km LIMITED SPEED 130km  


도로는 단지 자동차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세계에서 모터사이클이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몇 개 되지 않는다. 대부분 고속도로라 하더라도, 150cc이상의 모터사이클은 진입할 수 있다. 어떤 도로가 있다. 자동차로 달리는 것도 좋지만, 모터사이클로 달려야만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도로. 아르헨티나의 40번 국도인 루타40(Ruta40)이다. 


루타40은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나라인 아르헨티나 국토를 종단하는 도로다. 그 길이가 무려 5,200km에 달한다. 아르헨티나 최남단이자, 볼리비아의 국경에 인접한 주주이 지역에서 출발해, 최북단인 산타 크루즈 지역까지 이어지는 도로. 루타40이 지나치는 국립공원만 20개에 달하며, 18개의 강과 27개의 산길을 지난다. 모터사이클로 종주하기엔 엄두조차 나지 않는 거리다. 그럼에도 이 도로만큼은 모터사이클로 지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건, 쿠바의 혁명가이자 의사인 체 게바라 때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여행을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볼리비아와 칠레, 아르헨티나 등을 모터사이클로 여행한 체 게바라의 모험은 루타40을 지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당시 루타40은 볼리비아와 아르헨티나가 연결되는 가장 좋은 도로였다. 한 청년의 인생을 뒤바꿔 논 여행은 루타40에서 시작됐다. 태어나 한번쯤 세상이 만들어 놓은 바리케이트를 넘을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없이 루타40을 모토사이클로 종주하라 말하고 싶다. 물론, 길고 위험한 여정이다. 함부로 추천할 수 없는 여정이다. 그러나, 인생에 딱 한번 용기를 품었다면 기왕이면 루타40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자동차 말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말이다.    



RECOMMEND MUSIC_BITTER SWEET SYMPHONYTHE VERVE


영국의 밴드 더 버브가 1997년 발매한 <Bitter Sweet Symphony>. 영국의 전설적인 밴드 롤링스톤즈의 <The Last Time>을 샘플링해 만든 곡이다. 롤링스톤즈에게 허락을 구하고 사용했으나, 더 버브의 노래가 메가히트곡이 되자 후에 저작권 시비가 붙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와 밴드의 협연으로 시작되는 오프닝 기타 리프 부분은 더 버브를 모르는 사람들도 모두 알만큼 유명하다. 록 음악과 오케스트라라는 창의적인 조합은 세상이 장르라는 이름으로 그어놓은 선을 지워버렸다. 인생에 한번쯤 세상이 정해놓은 선을 넘어 루타40으로 향하는 여행자에게 이만한 응원가가 또 있을까.    






글│아트래블 편집부

사진│아트래블 편집부


여행의 영감을 위한 책 ARTRAVEL 

www.artravel.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