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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10. 2023

과거에서 온 편지

다시 읽은 기억에 대해

내일 만날 친구에게 쓸 엽서를 찾다가 어린 시절 친구가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같은 학교를 나와 첫 절친으로 3년 동안 내내 등하교를 같이하고 (아침저녁 내가 전날 읽은 책 얘기를 해 줬었다. )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6년 내내 일주일에 한 통씩 꼭 편지를 주고받았던 친구. 아빠 때문에 지옥 같던 청소년기를 버티게 해 준 창구 같았던 존재.


우리 아빠와 달리 이 친구의 아빠는 참 다정하고 딸에게 져주는 아빠였고 의식은 못 했지만 내심 그게 나에겐 열등감이었던 것 같다. 그 애는 사리가 밝고 똑똑했다. 어리숙한 나와는 좀 달랐는데 우린 같은 동네여서 언제 친구가 됐는지 기억이 안 나게 친해졌다. 아마 내가 이끌린 쪽이었을 거다. 친하면서도 조금 어려워한 기억이 있다.


대학 졸업하고 우즈베크에 가 있는 동안 나에게 계속 편지를 보내준, 교회 사람이 아닌 친구. 임용 준비하느라 돈이 없을 때 밥도 화장품도 사주고 부담 없이 미안해하지 않으며 만나도 됐던 친구. 내 생일에 전화를 세 번이나 했는 내가 없어서 통화를 못했고 내가 이메일을 잘 안 해서 썼다는 편지. 같이 어릴 적 살던 동네에 같이 가보자고 보고 싶다고 힘내서 잘 살자고 요즘 살이 쪘고(하나도 안 쪘는데)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많다고 쓰여 있다. 아픈 내 동생 안부와 부모님 안부를 묻는, 내 가족과 연애를 다 아는 친구. 두 장의 편지에서 20대 중반인데도 성숙하고 배려심 많은 친구의 깊이가 읽힌다. 난 그 시절 이걸 알았었나?


나는 어쩌다 이 친구를 잃었을까. 친구의 결혼과 육아의 물결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는 동안 나는 서울에 정착하기 바빴고 좀 더 손을 내밀던 친구를 내가 점점 잊었다. 노력하지도 않았다. 나이 든 지금에야 편지에 밴 친구의 외로움과 나에 대한 사랑이 절절이 느껴진다. 너무 고맙고 미안하다. 난 참 무심한 사람이었다. 슬프다. 이런 사람이 나에게 있었구나. 나에게 사랑을 쏟아준 사람이 많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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