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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10. 2023

남녀가 50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는다면

2022년 10월에 연극 <러브레터>를 봤다.


<러브레터>는 멜라니와 앤디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50년 간 주고받은 편지를 두 배우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읽어주는 형식의 100분짜리 연극이다.


머리가 하얀 두 배우가 천진한 어린이 시절부터 새침한 청소년기, 방황과 정열의 청년기, 정착과 방황의 갈림길인 중년과 장년에 이르기까지의 캐릭터 연기를 완벽하게 보여준다.

편지 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부모와 환경에 대한 반항이나 우정과 사랑의 불안을 해소하고 편지를 받는 대상인 - 어쩌면 환상일 뿐인 - 서로에게 꿈과 원망과 욕망을 투영하는 과정을 보며 '편지 쓰던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멜라니는 매력 넘치고 솔직하고 사랑이 많은 부잣집 소녀이고 앤디는 교과서적이고 다정하며 멜라니보다 가난한 모범생이다. 두 캐릭터는 근대의 남성과 여성이라는 시대성을 대표하며 몰락과 안정의 전형이 되어 간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약 스물여덟 살까지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다. 언제나 편지지가 있었고 매일매일 하루종일 틈틈이 그날의 감정과 생각 궁금한 점 듣고 싶은 의견을 적어서 몇 장이 모이면 봉투에 담아 부치곤 했다. 멜라니와 앤디는 서로가 없으면 살지 못했고 편지를 받아 줄 대상이 필요했기에 자기의 일상에 서로를 들이지 않는다. 특히 모범생 앤디는 자기가 외롭고 정염에 휩싸여 있을 땐 끊임없이 구애하고 멜라니를 흔들지만 멜라니가 원하는 현실의 남자로서는 부족한 모습을 보이거나 사랑을 고백받았을 땐 침묵을 지킨다.  


앤디와 멜라니가 엇갈리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우정과 특별함으로 서로를 대하듯 나도 내 편지를 받는 수신자들을 진심으로 아끼면서 특별히 대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 속의 내 친구는 아니었거나 연인도 아니었다. 내가 절친이 있을 때도 내가 연인이 있을 때도 나에겐 언제나 어딘가에 있는 수신자가 있었고 그 긴장감이 항상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함몰되지 않는 균형을 잡아주면서 동시에 방해꾼이 되기도 했다. 극 중 멜라니가 말했듯 편지를 주고받는 세계는 너무나 소중해서 사람을 취함으로써 포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어차피 세월은 편지도 사람도 앗아간다. 사라질까 봐 아끼는 것이 어리석다는 걸 젊을 때 모른다는 것이 비극일 뿐.


앤디와 멜라니도 서로를 그렇게 대한다. 50년 동안 주고받은 그들의 편지는 서로의 삶을 어떻게 만든 걸까. 현대를 배경으로 다시 쓰인다면 몰락하고 사라지는 사람이 다른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연극을 보면서 나는 둘 중 어느 쪽이었는지를 가늠하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인스타와 페북의 담벼락에 쓰고 있는 내 일상의 감정들은 유리병에 담긴 편지처럼 불특정 다수에게 보내는 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 편지의 시절과 차이가 있다면 이제 나에게 답장을 써주는 사람은 없다는 것. 오랫동안 내 편지를 받았고 오랫동안 나에게 편지를 쓰며 자기의 생각에 빠지는 시간을 사랑했던 친구들이 한 명씩 떠오른다. 그때 쓴 내 글들은 잘 간직되고 있거나 벌써 10여 년 전에 버려져 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누군가에게 대상이 되어주는 건 그 삶을 지탱해 주는 멋진 일이란 생각이 든다. 편지는 불행했던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 직전까지 나를 살아남게 해 준 마지막 동아줄이었다.


다들 행복하면 좋겠다. 그들도 감성과 의문이 가득한 내 편지를 받으며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내 문화생활의 친구가 되어준 하제님께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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