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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담 Sep 13. 2023

폭력의 유약함

가족 잔혹사를 돌아보며

북클럽에서 설화 베이스의 이야기를 분석하다 보면 부모의 폭력적인 양육태도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난 어릴 때부터 편지 쓰기를 좋아했고 사람을 그리워했다. 내 상자에는 답장으로 받은 편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느 날 늘 그랬듯 아빠는 사소한 일을 꼬투리 잡아 분노 표출의 명분을 만들었고 정의롭지 않은 이유로 휘두르는 폭력에 익숙했던 (아빠를 재외 한) 우리 가족은 익숙해지기 힘든 공포에 절여져 광기가 사그라들길 간절히 기다렸다. 누군가가 공부를 안 한다는 이유로 또는 누군가가 책상에서 졸았다는 이유로 소지품 검사가 시작되면 우리의 사생활은 하나하나 까발려졌다. 4남매 중 가장 들춰낼 것이 많았던 나의 상자는 하나하나 들춰지고 판단당했다. 죄를 발견해 내야만 하는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어떤 - 문제가 된다고 우기고 싶은 평범한 - 문구를 발견하면 희열에 번득이며 편지를 찢었고 편지가 찢길 때마다 매가 떨어졌다.


인 남성의 풀스윙 매질은 매우 아프다. 바깥세상의 다른 성인 남성과 절대 싸우지 않을 폭력성이 오직 아이와 여자에게만 폭발하는 건 역사 이래 어디에나 일어났던 일. 폭행의 주체가 하는 행동은 절대 사랑도 아니고 정당하지도 않다는 것을 빨리 인정하지 않으면 폭행의 대상은 영혼까지 파괴된다. 아빠는 비정상이었다. 상자 가득한 편지가 다 조각조각 찢길 때까지 처벌은 계속됐다. 양육자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자녀가 그걸 괴로워하는 걸 알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명분으로 괴롭히는 것이다. 난 잔인한 사람이 어떤지 안다. 분노와 광기가 뭔지도 안다. 반복되고 강도는 높아진다. 피할 수 없다. 폭행의 목적은 폭행 그 자체이기 때문에.

난 참 얌전하고 밝은 똑똑한 아이였다. 아무도 내게서 그늘을 읽지 못했고 덕분에 난 행복한 아이에게 주어지는 의무까지 짊어지고 살았다. 나에게 찡찡대는 응석받이 아이들의 당당함은 언제나 나를 기죽였다. 저렇게 많이 누리는데도 불만이 있다니. 저렇게 당당히 뭔가를 요구하며 살다니.  지금도 궁금하다. 나에겐 그늘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밝은 것을 상상할 수 없어서 덜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섬세한 감성을 갖고 태어나서 고통 극심했다. 커갈수록 독서실로 도망쳤고 높은 성적으로 방어했고 분노 속에서 나를 지지할 탄탄한 논리로 내 감성을 보호했다. 나에 대한 일은 참았지만 엄마를 위해서는 살기를 띠고 저항했다. 이건 다행이면서 슬픈 일이다. 난 살기나 미움에 익숙해지기 힘든 성정을 타고났지만 살아남기 위해 폭력성을 학습했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은 옛날 일. 이제 미움은 없지만 현재의 나를 결정해 버린, 결정적 시기의 나쁜 기억.  아무렇지 않게(진짜 아무렇지 않음) 편지가 다 없어져 버린 날의 얘기를 했더니 누군가가 물었다. 아빠가 나쁘다는 것은 언제 처음 알았냐고.


'그냥 어릴 때 알았어요.'

'지금은요?'

지금은 난 품 안의 자식이 아니고 따로 산 지 오래 돼서 독립한 자녀로서 존중받는다. 4남매 중 물리적, 정신적으로 전혀 의존성이 없는 건 나뿐이다. 자랄 때 아빠에게 반항한 것도 나뿐이었다. 지금 아빠는 내가 김을 먹으면 김그릇을 내 앞에 밀어주고 나물을 먹으면 나물 그릇을 내 앞에 밀어준다. 나에게만 그런다. 누군가가 나쁜 걸 명확히 아는 것과 미워하는 건 다른 것이다. 난 그걸 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피곤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아버지도 나쁜 의도로 그러신 건 아닐 거예요.'

난 바로 대답했다.

'그건 당연한 거죠. 부모는 당연히 나쁜 의도가 없어야죠. 나쁜 의도로 그러지 않았다가 무슨 면죄부인가요.'

상대방은 바로 사과했다. 나쁜 건 나쁜 걸로 인정해야 용서도 극복도 가능하다. 내 상처를 미화하는 건 억압이다.


여기엔 어떤 교훈도 없다. 사실은 사실이고 어떤 고통은 증발하고 어떤 고통은 흔적을 남긴다. 어떤 사람은 고통의 반복을 멈추지 않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멈춘다. 내가 내 가족을 통해서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야 하는 일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 잔인한 사람들은 다 약한 사람이었다. 난 약한 사람들이 더 무섭다. 그 시절 강한 건 나였고 약한 건 아빠였다. 시간이 흘러 아빠는 옛날보다는 강해졌다.


그리고 지금도 내 인생엔 이 일이 반복된다. 약한 사람이 다가와 나에게 잔인하게 군다. 난 약한 사람이 싫다. 난 누군가에게 잔인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더 강해질 생각이다.


북클럽이라는 '안전한 심리적 공간'을 만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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