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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애 Dec 18. 2023

직장 후배와 만남, 요새 자주 먹네요, 또 다이어트.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

5년 전 그리고 지금의 우리들, 여전히 영웅.



매거진, 방송 마케터로 10년을 일했다.

당시 알고 지낸 후배들은 여전히 일을 열심히 하거나 육아 중이거나 신혼이거나 비혼주의자로 살거나.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건 내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육아 중인'후배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진짜 완벽한 어른이 되었다는 건 아니겠고. 그만큼 이전의 라이프는 참 철 없이도 잘 살았구나, 다행이다 같은 느낌)


마케터들은 열정, 애정, 긍정.. 이런 키워드가 없이는 버텨내기 힘든 직종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막연한 것들 (예를 들어 브랜딩, 이미지, 아이덴티티.. 같은) 구상하고 보여줘야 하는 게 일이다 보니까.


그래서 나는 당시 내 주변의 수많은 그녀들이 (패션 매거진이라 여자 기자들과 직원이 90% 이상)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화려했던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추억을 음미하면 참 기분이 좋았다.

여전히 가로수 길 근처에 우뚝 서있는 그 건물을 볼 때면 '와, 엊그제 일 같아'하는 탄성이 나온다.


-



시간은 흘렀고 그들도 나도 나이를 먹어간다.

지금은 일하면서 육아 중인 그녀들이 이 시대의 진짜 영웅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싱글 시절 워킹맘 후배들의 어려움을 겉으로만 이해하는 척했던 나를 반성하기도 하면서.



'육아'라는 상황은 인생의 최고난위도의 시험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참 안타깝게도 이 시험은 끝도 없고 정답도 없다.

답도 정해져 있지 않은 끝이 없는 시험을 풀긴 해야 하니

엄마들은 그야말로 나를 갈아 넣으며

아이를 키우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놀아준다.

거기에 집안 살림까지.  



여기에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리니.. 어떤 에너지가 남아있을 수 있을까.

우리 엄마들은 가장 포기하기 쉬운 '나 자신'을 포기하게 된다.

힘들다고 애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육아하면서 대충 자주 먹게 돼요."  


5-6년 만에 친한 후배를 만났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자연스레 연락은 끊겼고, 그나마 인스타 덕분에 서로의 생사여부 정도만 확인하며 지내왔다.


이런저런 안부를 물은 뒤에 후배가 말했다.



"선배 저 복직 전에 살을 빼고 싶은데 선배랑 가까운 사이이다 보니 이런 걸 물어보지를 못하겠더라고요."


"00야, 너 자주 먹니?"


"네, 우리 00에게는 다양한 재료로 이것저것 골고루 해주지만 정작 저를 위한 식사를 만들어서 챙겨 먹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사 먹거나 대충 먹어요. 그리고 자주 먹게 되더라고요"


그도 그럴 것이 이 후배는 요리에 관심이 많아서 유학도 다녀왔고,

전문가 자격증도 가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음식과 영양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겠는가.

자신이 전문가지만 전문 지식을 자식에게는 쓸지언정 나 자신을 위해서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엄마들의 현실이다.



-


덜 먹기가 아닌 더 먹는 환경에 노출된 엄마들.



육아하면서 내 음식을 잘 챙겨서 먹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육아 후 살이 찌는 경우는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나오기도 하지만.

모든 이유를 하나로 모아보면 딱 한 가지다.


도저히 '덜 먹기가 힘든 상황'이라는 거다.

우리의 상황은 '더 먹을 수밖에 없는'환경이다.



물론 중요한 다른 원인도 있기는 하다.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면,



첫째는 나잇살인데.

35살이 넘어가면 근육량이 10년마다 1kg씩 줄어든다.

근육량이 줄어드니 지방이 붙기 쉬운 체질이 된다.  

호르몬 분비가 줄어들면서 남자는 뱃살이

여자들은 배와 허벅지로 지방이 몰린다.

체중은 비슷해도 전에 입던 바지가 타이트한 느낌은 이런 이유.



둘째는 가사 노동의 함정.

가사 노동은 활동량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가사 노동은 말 그대로 '노동'이다.


운동을 하면 신체 단련이 되지만

노동은 많이 열심히 하면 몸이 망가진다.



-


다시 덜 먹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으로 돌아가서,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우리는 음식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

요리를 하든 반찬가게 반찬을 그릇에 담 든

배달 음식을 아이 식판에 덜어주든.


맛을 안 볼 수도 없다.

간이 맞는지, 재료가 신선한지.



한 두 번 간을 보다 보면

이상하게 음식이 자꾸 당긴다.

잠재웠던 식욕이 다시 타오르는 느낌, 여러 번 받는다.



혼자 살 때는

단백질, 탄수화물 비율 따져가며 식단처럼 챙겨 먹고

외식을 할 때는 온전히 '나를 위한 메뉴'를 시킨다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하는 외식은 '너를 위한 메뉴'가 일 순위를 고르게 된다.



남편과의 오붓한 시간에는

음식이 빠지기는 어렵고

엄마들 모임에서는 까다로워 보일까 싶어서

(엄마 이미지 = 우리 아이 평판이 될 수 있으므로)

대충 대다수의 의견에 따르거나

모두가 좋아할 만한 '내 몸을 망가뜨리는 음식'을 고르기도 한다.




-


배워본 적이 없는걸. 당연한 거 아닌가요.


물론 이렇게 덜 먹기 힘든 상황이지만

자신에게 맞게 세팅만 잘해간다면

충분히 덜 먹는 것을 유지해 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게 여전히 날씬하게 살아가는 엄마들도 있으니까.

이들이라도 쉬웠겠나. 다만 하다 보니 쉬워진 걸 테니..


우리가 언제 배워본 적이 있나?

덜 먹는 것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저기 모은 정보만 해도

'살 빼는 방법'에 대한 지식은 박사급으로 알고 있지만

핵심은 결국 덜 먹어야 하는 건데, 그걸 어떻게 유지를 하느냐는 방법.

이거에 대해 우린 배워본 적도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자연스레 음식에 평일, 주말 할거 없이 수도 없이 노출된 엄마들이 자주 먹고, 야식으로 나를 위하는 시간을 만들어보고, 대충 먹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



-


생각을 바꿔보자.


'아 난 왜 자주 먹을까? 진짜 의지박약이다'

-> '가족을 위해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음식 앞에 서있으니 자주 먹을 수밖에 없잖아?'



'산후 다이어트로 살 좀 뺐는데 다시 요요 왔다. 젠장'

-> '아니 요요 한번 없이 어찌 살을 뺀다는 거야?

요요가 왔다면 가능성이지.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말이다'



'나 왜 이렇게 많이 먹냐?'

-> '다이어트 방법은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조금 덜 먹는 방법을 우린 배워본 적이 없잖아?

아직 해본 적이 없으니까 당연히 양이 줄어들 기회도 없는 거잖아.'



-


핵심을 공략해야 하는데,

이는 나도 모르게 조금씩이라는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급하게 가 아니라 덜.

전의 끼니보다 덜. 어제보다 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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