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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애 Nov 30. 2023

[어제도 폭식했나요?] 세 번째 편지

퇴근/육퇴 후 행복

오늘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메일 마지막에 그녀의 고민이 적혀있었습니다. 

그녀의 고민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다가 이건 당신도 나도 겪고 있는 고민이라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퇴근 또는 육퇴(육아 퇴근)에 지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하루종일 퇴근 후 어떤 음식을 먹을까 생각하면서 보냈을 수도 있겠네요. 



'아 오늘 저녁은 꼭 클린하고 담백한 음식을 먹어야지' 또는 

'아 오늘 너무 스트레스받아서 매콤한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다. 퇴근아 기다려라'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저는 결혼 전에는 퇴근 후 이런 마음을 아예 차단해 버리려고 퇴근하면 바로 운동을 가고 샤워까지 마치고 집으로 와서 바로 자거나 맥주 한 잔 정도 마시고 자는 생활을 했었습니다. (참 독했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니 이게 제 의지대로 되지 않더군요. 종일 집에만 있게 되니 이 모든 스트레스는 오직 육퇴만 기다리며 배달 음식으로 풀어버리고는 했습니다. 



내일을 위해 일찍 자는 게 가장 좋겠지만 이럴 때는 잠도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런 기분으로 티브이만 멍하니 바라보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음식을 찾곤 합니다. 



분명 점심에는 건강관리를 한다며 샐러드나 클린 한 음식을 도시락으로 챙겨가 간단하게 먹었을 테죠. 가벼운 속에 기분까지 가벼워집니다. 뿌듯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녁이 돼서 집에만 들어가면 와르르 무너져버린 내 의지에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왜 내 의지는 고작 이것밖에 안되나.. 싶기도 합니다. 



육퇴. 퇴근 후 행복. 무엇으로 찾아야 하나. 


하루종일 일하고 육아하고 공부하며 느꼈던 갑갑함, 분노, 공허함, 지루함이 저녁에 식탁 위에서 마주하는 떡볶이 앞에서는 사르르 없어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위로는 몇 분 지나지 않아 위로가 아닌 좌절, 절망, 분노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음식 앞에서는 까먹어 버리기도 하지요. 



지치고 스트레스받은 몸과 마음을 음식으로 '보상'받는 것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일입니다. 내 의지대로 먹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는 뇌의 명령에 따라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뇌의 시상하부에는 식욕과 쾌락을 관장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배부르다'는 포만감과 동시에 '아 힐링된다'는 심리적 만족감도 같이 느끼게 해 줍니다. 



당신이 마음이 허전할 때, 스트레스받을 때 당신의 뇌는 음식을 먹어보라는 신호를 보내서 몸의 주인인 당신의 기분을 달래주려고 합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심리적 허기'와 같습니다. 당신이 정말 배가 고파서 허기짐을 느끼는 게 아닌데 당신의 헛헛한 마음을 배고픔으로 착각해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지요.  



그러니 퇴근. 육퇴 후 고칼로리 매콤한 음식이 당기는 당신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기를 바랍니다. 때론 이런 시간도 필요하긴 합니다. 맥주 한잔, 따뜻한 라면 한 그릇처럼 이런 보상은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저는 코칭을 하다 보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고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습니다. 개인 상담이 많은 날에는 모든 상담을 마치고 나면 가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떠올라 주저 없이 맥주를 마실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딱 한 잔과 아주 가벼운 안주. 딱 여기까지가 제가 긴장했던 마음을 달래주는데 좋은 양입니다. 이런 게 제가 일을 계속하고 육아와 살림을 하는데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해 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음식에만 '집착'할 때입니다. 딱 기분 좋은 정도 그 이상으로 음식을 계속 먹다 보면 내성이 생깁니다. 이런 날들이 잦아지다 보면 같은 양의 음식을 먹더라도 그때만큼 보상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양의 음식, 더 맵고, 더 짜고, 더 달달한 음식을 찾게 됩니다. 



잘만 활용하면 일상의 진짜 힐링푸드가 될 수 있는 음식이 점점 내 건강을 해치고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주게 되는 겁니다. 




의지력의 한계 


저는 코칭을 시작할 때 멤버분이 너무 독하고 비장한 마음을 먹는 게 느껴진다면 그러지 말라고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절제력을 살 빼는데 쓸 필요가 없으니까요. 



우리가 가진 의지력이나 절제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정작 필요한 곳에 의지와 절제를 쓰지 못하고 '안 먹고 참기'같은 것에 의지를 다 소진해 버릴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의지력 다 썼지만 결국 또 먹어버리고, 당신이 의지력을 쏟아야 하는 일이나 개인 성취를 위한 행동, 육아, 사업, 공부 등에 쓸 에너지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됩니다. 다이어트를 제외한 내 일상은 무기력하고 재미가 없게 되겠지요. 



다이어트는 독한 사람은 '빨리 성공'할 수는 있습니다.(저의 20대 시절처럼요^^) 하지만 길게 보면 다이어트는 '열심히' '독하게'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내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 독하게 무리하게 마음을 먹기 위해 했던 다짐을 (예를 들어 고구마, 닭가슴살만 먹는다든가 운동을 하루 2 시간 이상 하겠다든가) 평생 지키며 살기는 불가능합니다. 이런 철벽 같은 다짐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할 때가 찾아옵니다. 




지나친 절제도 집착도 아닌 


음식에 대한 지나친 절제나 집착 다 나에게 악영향을 줍니다. 

음식을 먹는 건 '즐거운 행위'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때론 음식을 보상으로 이용할 수 있지만 어떤 날은 가벼운 산책이나 반신욕, 때론 격한 운동이나 친구들과의 수다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음식이 아닌 다른 활동으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게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당신 스스로가 느껴봐야 압니다. 아, 음식 말고도 내 심리적 허기짐을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요. 



또 하나. 

비장하게, 독하게 안 먹겠다고 마음먹지 말고, 

'언제든 먹을 수 있다'라고 생각을 바꾸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오늘 밤에 먹을 음식, 내일 아침 또는 이번 주말로 미뤄도 됩니다. 

보고서, 숙제, 설거지, 하물며 운동도 매번 미루면서 먹는 거 하나 미루지 못할까요.^^ 



지금 당장 그 음식을 먹어치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 








[어제도 폭식했나요?]는 고도비만 이상, 폭식, 나쁜 식습관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쓰는 편지입니다. 

88kg에서 44kg 덜어 낸 저의 지난 시간 속 같은 경험과 감정으로 오늘도 괴로워할 당신에게 작은 도움이나 위로, 결국 행동할 수 있는 용기를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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