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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gunmedia Mar 26. 2020

무엇을 해야 합니까.

MBC 방송경영인 협회보 기고문

 별다른 소감이나 사직의 변을 남기진 않았지만, 작년 7월 MBC 를 사직했습니다. MBC미디어렙TF가 시작된 2011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8년 가까운 시간을 MBC 에서 근무했습니다. 사실 MBC가 아직 상암으로 터을 옮기기전인 2013년 가을즈음에 SMR TF - 설립 - 현재까지 6년 이상을 SMR 에서만 일했으니, MBC 근무 8 년이란 말이 사실 무색하기도 합니다. 상암MBC엔 앉아본적이 없는 거의 유일한 MBC직원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여러가지 소회는 생략하고,,

 아랫글은 퇴사 후 MBC경영인협회에서 요청받았던, 협회보를 위한 짧은 기고문입니다.  <디지털광고시장에서 바라본 MBC> 라는 어려운 주제인데, 부탁받은 분량은 작은 편이라 꽤나 고심했습니다. 편집과정에서 경어체가 평어체로 수정되면서, 더 단호하고 비판적인 논조가 되기도 해서 불편했다는 피드백도 꽤 받았습니다. MBC에만 국한된 얘기는 아닐 것 같아 원문에 약간의 수정을 거쳐 업로드합니다. 

(광고와 관련된 미래 전략에만 국한된 내용입니다. )



유튜브 “오분순삭”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고, “놀면뭐하니”의 과감한 시도들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여전히 MBC의 미래를 밝게 그리는 사람은 MBC 안에서도 찾기 드문 것 같습니다. 

좋은 콘텐츠가 수익을 보장한다는 말은 이제 거짓말입니다. 좋은 콘텐츠는 언제나 필수 조건일 뿐입니다.  수익을 보장하는 건 판매-구매-데이터검증의 루프로 이루어진 광고시스템입니다. 적자가 발생하는 것은 오래동안 수익을 보장해오던 이 시스템의 무언가가 예전처럼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손쉽게 콘텐츠 탓을 합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탓하는 것은 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나 가능한 것인데, 누구도 콘텐츠를 둘러싸고 있는 방송광고시스템이 정상적이라고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시스템의 문제는 항상 존재했습니다. 


모든 광고 시장은 사실 콘텐츠가 아니라 데이터를 교환합니다. 몇 명이 광고를 봤고, 몇 명이 클릭했고, 몇 명이 구매를 했는지와 같은 추상적인 또는 구체적인 데이터를 교환합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성장하는 것은 이런 데이터 교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시청률로 대변되는 방송 광고의 그것보다 정확하고 투명합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시청률이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방송 광고의 데이터 가치가 과거와 달리 나란히 두고 비교할 대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MBC는 전파라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을 가졌지만 이를 스스로 검증하지 못합니다. MBC는 유통, 광고, 미래 전략과 관련된 그 어떤 부서에서도, 광고주를 설득할 만한 유의미한 데이터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밖에서 바라보는 MBC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강력함을 검증하지 못해서 약한 것처럼 보입니다. MBC는 “놀면뭐하니”의 주인이지만 그와 관련한 어떤 데이터를 제공합니까.  PCM 이든 PPL 이든, 협찬이든, MBC를 통한 모든 광고집행의 결과에 대해 MBC 스스로 데이터를 제공할 수 있어야합니다. 

"닐슨한테 가서 물어봐.” 

이게 MBC가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의 한계이자 현실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MBC에 광고하면 효과를 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광고 구매자는 또 다른 비용과 검증 프로세스를 스스로 감수해야합니다. 

 MBC 의 우수한 콘텐츠가 제공해 줄 수 있는 모든 데이터는 다른 이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실시간과 FULL VOD는 통신사의 망과 셋탑박스를 통해서, 짧은 CLIP영상은 유튜브,네이버,카카오의 플레이어를 통해서 제공됩니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MBC를 대신해서 “놀면 뭐하니” 의 주인은 아니지만, 데이터의 주인임을 자처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에서 주인임을 자처한 데이터들이 시장에 유통되면서, 과거에는 미처 몰랐던 방송 광고의 데이터 부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을 뿐입니다. 

 혹시 MBC의 디지털 전략을 단순히 유튜브 조회수를 늘리고, WAVVE에 투자하고, SMR을 만들고, 웹오리지널을 잘 만드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MBC 의 모든 광고 자산을 디지털 시장에 준하는 데이터 가치로 환원하는 것만이 유일한 미래 전략입니다.

끝.


 단락마다 문장마다 수 페이지의 부연을 할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인 장벽과 시장의 문제들을 넘쳐나지요. 각각의 문제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서 어디부터 손대야할 지 모를 지경입니다. 
 무엇을 해야합니까? 2년 전 사장,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내부 보고 자리에서 급작스런 질문을 받았고, 와 이거 어디부터 설명해야지 싶어서 대신 아래와 같은 비유를 든 적이 있습니다. 윗글 역시 그 비유를 풀어 쓴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작비 투자해서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시청자는 돌아올 지 몰라도,
광고 수익 구조는 쉽게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우리의 문제는 설국열차와 같아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앞 칸으로 진격하는 것일 뿐입니다.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열차에서 내려서 선로를 뜯어 고쳐야합니다.
선로가 시야 밖에 있다고 해서
보지도 않고, 내리지도 않으면 적자의 늪으로 빠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진짜 문제는 시야 밖에 있습니다.
눈 앞의 문제만 두고 편하게 해결하려고 하지 마십쇼.








지나고 보니 MBC 는 평사원이 감히 사장에게 요 따위 건방진 말을 할 수 있는 회사였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열렬하게, 옛 동료들을 응원합니다. 마봉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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