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rt of Travel
요즘 (이 글 쓴지는 5년 전인 2010년 어느 봄날 즈음에)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취미라기보다는 퇴근 후 적적한 호텔방에서의 끄적거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참 좋아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씨가 <여행의 기술: The Art of Travel>에서 그는, 여행을 좀 더 즐기기 위해선 '그림을 그려라'라고 했다. 이유인즉,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 더 오랫동안 우리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더 자세히, 더 열심히 감상하게 된다는 거였다.
너무 동감이 되면서도 그동안 다녔던 많은 여행에서 그러지 못했음이 참 아쉬워서 뒷북이라도 쳐보자는 심정으로 - 그리고 다음 여행을 위해서 - 사진첩에서 맘에 드는 (난이도는 염두에도 안 두고 무작정) 사진들을 골라서는 어머니께 빌린 작은 스케치북에 2B 연필로 슥삭슥삭 거리기 시작했다.
김중만의 사진 기행에서 그러기를, 과거의 영화나 노래를 듣고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3초이지만, 과거의 사진을 보고 그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0.3초에 불과하다고 했었는데, 과연, 정말로, 이 작업을 하다 보면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보게 되서인지 그때 여행지들을 찾아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참 황홀한 기분이 든다.
여기에 그 당시 여행 중에 들었던 노래들까지 틀어놓으면 내 작은 호텔방은 어느새 스페인 한 마을의 골목길이 되고, 프랑스 남부의 한 부둣가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온다던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가슴속에서 요동을 친다.
사진 한 장과 스케치북, 그리고 연필 한 자루로 이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니 행복이란 건 참 주관적인 것이다.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오래도록 보노라면, 사진 속 풍경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면서 한 골목길의 창문 하나가, 벽돌 하나가 의미 있게 다가오고 어느새 나는 그 풍경에 길들여진다.
어린 왕자에서의 여우가 그냥 낯선 여우에서 길들여진 여우가 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대함에도 그림을 그리듯 해야겠다.
한 번이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며, 나 자신을 그 안에 길들여가며.
슥삭슥삭.
Title: Toulouse, Southern France
Medium: Ink Pen and Conte
2010.04.14
epil.
이 글을 쓰고 몇 점을 더 그리다가 그 취미마저도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놓았다고 하지만 결국엔 끈기의 문제 이리라.
모처럼 유럽에서의 생활을 하게 된 요즘, 다시 한번 이 끈기에 불을 지펴서 차곡차곡 기억들을 그려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