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화와 영국 문화 그 모호한 경계에서..
갓난아기 때부터 독일서 3년 정도 살고, 한국서 고1까지 14년 정도 살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15년 정도를 산 나에게 영국으로의 파견/이주는 그리 큰 변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 기간 동안 미국 생활을 했지만, 그다지 정을 붙이게 되지 않던 나였고,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갈망하던 차에 마침 영국행 기회가 다가왔다.
너무 어려서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의 유럽 생활에 대한 아쉬움인 건지, 평소에도 유럽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자주 여행을 다녀서 '유럽 성애자'라는 소리까지 들은 나로선 실로 퍼펙트한 기회였던 거다. 유럽에서 보내는 신혼 생활은 당연 보너스.
반년 정도 미국과 영국을 출장으로 오가다가 정착한 지 이제 어언 3달, 흔히들 말하는 러브 액츄얼리나 해리포터에서나 듣던 스타일리시한 영국 엑센트들이 이제 어느 정도 귀에 익었고 나도 재미 삼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같은 영어를 쓰는 나라이기에 생활에 딱히 불편한 점들은 없지만, 그래도 분명한 차이점들을 간간이 접하게 되는데, 이게 참 흥미롭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미국은 영국의 이민자들에 의해 개척되고 시작된 나라인데, 독립 후 인류 역사로 보기엔 짧다고 할 수 있는 2-300년의 세월 사이에 그러한 차이점들이 생겨난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영국의 과거 식민지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다른 식으로 발음을 하고 생활하려 했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것과는 취지가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일본어 잔재 청산 운동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아무튼 아래 리스트는 지난 일 년 안 되는 시간 동안 영국에서 지내면서 보고 겪고 느낀 미국과의 다른 점들을 그때 그때 담아놓았다가 주관적인 시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앞으로 또 새로운 걸 발견하면 또 업데이트할 예정)
*영국은 파란색, 미국은 빨간색으로 표시.
1.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들은 왼쪽으로 다닌다 - 이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세 기사들이 칼을 오른손으로 들고 반대편에서 말을 타고 오는 사람과 싸운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게 난 제일 맘에 든다.
2. 전기는 230V이고 거리는 마일 Mile, 온도는 섭씨 Celcius이다 - 미국선 110v, 마일, 화씨를 쓰고 한국서는 220v, 미터, 섭씨를 썼으니 이젠 거리나 온도 얘기할 때는 정신이 없다.
3. 감자튀김은 French Fries 가 아니라 Chips, 감자칩 과자는 Potatoe chips 가 아니라 Crisp- 감자튀김은 케첩이 아니라 마요네즈나 식초를 찍어먹는데, 몇 번 그렇게 먹어보니 그게 더 맛난 것 같다.
4. 아파트는 Apartment 가 아니라 Flat, Elevator는 Lift, 건물은 보통 1층에서 시작하지 않고 0층에서 시작한다.
5. 지하철은 Subway 가 아니라 Tube 나 Underground라고 한다. Subway는 여기선 미국 샌드위치 음식점이다
6. 2016년 4월 23일을 4/23/16로 적지 않고 23/4/16 적는다. - 대부분의 경우는 괜찮지만 07/04/16 같은 건 내가 적고도 나중에 7월인지 4월인지 헷갈려서 7 April, 2016으로 적는다.. 하아..
7. 총각/처녀파티 Bachelor/Bachelorett party는 Stag/Hen night이라고 한다.
8. 아이스커피가 드물다!! - 동네 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달라고 했을 때 어떻게 커피에 얼음을 넣어 먹냐는 식으로 쳐다본 바리스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9. 축구는 soccer 가 아니라 football이고 미식축구 football 은 american football이라고 한다 - 그러고 보면 미식축구는 발을 잘 쓰지도 않으면서 왜 풋볼이라고 한 건지...
10. 야구는 전혀 유명하지 않다. 대신 비스무리한 크리켓을 좋아한다. - 야구와 축구가 둘 다 인기 많은 한국은 참 신기하다.
11. 회사 이메일을 쓰다 보면 스펠링 틀렸다고 빨간 줄이 생긴다 ㅠㅠ color vs. colour, analyze vs. analyse, behavior vs. behaviour
12. 화장실은 restroom 이 아니라 toilet 혹은 loo라고 하고 쓰레기는 trash 가 아니라 rubbish라고 한다
13. 식당에서 먹고 나서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 이건 정말 맘에 든다. 미국선 서비스가 딱히 안 좋아도 10-20%씩 의무로 주는 팁이 참 못마땅했다.
14. 집들에 대부분 에어컨이 없다 - 에어컨이 필요할 만큼 그리 더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15. 뭐만 했다 하면 cheers 랜다 - 건배할 때만 그러는 게 아니라 문 열어줘도 cheers, 부탁한 자료 보내줘도 cheers, thanks 와는 분명히 다른 느낌이다.
16. hey dude, wanna get some drink? vs. hey mate, fancy a drink? - 맨 처음에 무슨 화려한 (fancy) 술을 마시자는 건지 의아해했었다.
17. 달걀이랑 버터를 냉장고에 안 넣는다. 장 보러 갔다가 상온에 있는 달걀들을 살까 말까 한참 고민했다.
18. 경찰들이 참 친근하다. 미국선 경찰차에 불만 들어와도 식겁했다.
19. 한국과 같게 물건에 붙어있는 가격대로 돈을 내면 된다. 미국은 세전 가격이 붙어있어서 계산할 때 약간 더 내야 했다.
20. 오후 2시는 2PM 이 아니라 14시다 - 24시간제는 한국서 이미 익숙해져 있었던 지라 다행이다.
epilogue.
작년에 한 미국인 아저씨가 영국에서 좀 지내다가 미국과 영국의 차이점들을 적어 올린 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분도 이런 차이점을 흥미롭게 생각한 것 같다. 평생을 미국에서 지낸 사람일 테니 나보다 더 느낀 게 많았던 듯하다.
몇 가지 재밌는 포인트들을 보자면:
-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당히 예의 바르고 미국인들보다 더 똑똑하다.
- 많은 영국집의 문고리가 미국의 역사보다 길다
- 총이 없다
- 미국인 14%가 여권이 있는 반면, 영국인 대부분 여권이 있다
- 축구는 곧 종교이고, 종교는 곧 축구이다
- 오바마는 영웅이고, 부시는 멍청이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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