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유치장 안이었습니다.
저말고도 두어명 정도가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왜 제가 거기에 있는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쇠창살 밖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 타이핑을 치고 있는 경찰에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가 왜 여기에 있죠? 꺼내주세요” 돌아온 답은, 아침에 담당 경찰관이 오면 그때 꺼내줄거라는 거였습니다.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얼굴도 부어있고 좀 욱씬거리는 것도 같았습니다. 간밤에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탓이었습니다. 전날은 직원들 회식하는 날이었습니다, 2차 장소로 이동하는 중이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습니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제가 유치장안에 들어와 있는지는…
(아래는 전날 같이 있었던 직원들과, 아침에 출근해서 저를 취조한 경찰관의 말들을 종합한 ‘사건의 재구성’입니다.)
서울 청담동의 옛 하드락카페 근처였습니다. 2차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 어떤 단란주점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 주점앞 인도에 검정색 그랜저 몇대가 주차되어 있더군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도 어렵게 인도를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왜 사람들 불편하게 여기에 차를 대논거야?” 하며 그 중 한대의 타이어를 발로 툭툭 찼더랬습니다. 근데, 마침 그때 단란주점에서 나오고 있는 차주들 일행을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모두가 다 검정색 정장을 갖춰입고 있었습니다. 머리도 다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아 몸집에 비해 얼굴이 작아 보이더군요. 조폭 깍두기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연말을 맞아 회식을 했던 모양입니다.
“너, 뭐하는 놈이여? 왜 남의 차를 차!”
저보다 1.5배는 덩치가 큰 깍두기 한명이 한손을 치켜들며 제게 위협을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했을까요…?
“차를 인도에 주차하면 돼? 안돼? 이것들이… 야, 다 붙어!”
자켓을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는 싸울 태세를 갖추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주먹이 날아와 제 얼굴을 강타했고, 저는 길바닥에 널부러졌습니다. 저를 친 주먹은 제 배위에 올라타서 그 뒤로도 뺨을 몇 대 더 때렸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깍두기들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얘가 술이 너무 취해서!”
저를 쓰러뜨리고 저를 때린 사람은 다름아닌 저희 국장님이었습니다.
국장님께 깔린 채 속수무책으로 몇대 맞고 얼얼한 제 귓가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더군요. 단란주점 종업원이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던 것입니다.
저는 그 길로 유치장에 잡범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한달쯤 후, 저는 폭행 및 재물손괴혐의로 즉결심판에 넘어가서, 당시 저한테는 거금이었던 3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했습니다.
제가 대리때이니 30대 초반이었을 겁니다. 당시 저는 술을 마시면, 광고기획자라는 소시민에서 낭만주먹시대의 ‘시라소니’로 변했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주먹을 만나도 이기거나, 적어도 맞지 않을 자신감에 충만했으니까요.
…네, 자신감만요. 마음으로만요…사실 그날만해도 시라소니 흉내냈다가 큰일나뻔 한거죠. 재치있는 국장님 덕분에 저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겁니다.ㅎ (새삼, 사회초년생일 때 나이트클럽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어 1:17로 싸울뻔 했다가 일행덕분에 싸움을 피했던 기억도 나네요 ㅎ)
거의 30년 전 사건을 소환하게 된 것은 어제 본 이 영화 때문입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를 유지한다면, 적당히 창의적이고 활기차게 인생을 살 수 있다.” 동의하시나요? 술을 마셔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나선 덴마크의 아재 4명이 벌이는 포복절도 & 감동의 영화입니다. 원제는 ‘DRUK’으로 덴마크어 사전을 찾아보니 음주라는 뜻이네요. 음주를 소재로 삼은 정말 유쾌하고 재밌고, 공감가고! 감동이 있는 영화 ‘어나더 라운드’ 입니다. 간만에 실컷 웃게 해주고, 가슴을 따스하게 해주고, 열정을 되찾게 해준 영화입니다.
술을 즐기시나요? 이 영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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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1
인생후반전이 시작되면서 전반전에서 주전중 하나였던 ‘술’을 벤치에 주저 앉힌 놀자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