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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작가 Mar 23. 2021

모자이크의 저편

일드, <모자이크 재팬>

드라마를 꽤나 좋아한다. 드라마를 좋아한다기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들 제각각이겠지만, 나는 내 인생에 드라마가 없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씹고, 맛보는 것을 즐긴다.


가장 최근 본 일본 드라마는 <모자이크 재팬>이다. 주로 가는 커뮤니티에서 누군가의 추천으로 보게 됐다. 짧은 드라마였지만 후회가 되지 않을 만큼 강렬한 주제와 불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드라마란 본래 맥주  캔과 트레이닝 반바지, 그리고 헤진 러닝셔츠를 편하게 즐기는 것이지만,  드라마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안절부절못하며 마주했다.                    


<모자이크 재팬>은 총 5부작으로 15세 이상 시청이 가능하고, 편당 러닝 타임도 25분 안팎이어서 짧은 시간 안에 완결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간략적인 줄거리를 소개해 보자면, 도쿄의 증권회사에서 5년간 고생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리이치는 가족의 권유로 갤럭시즈라는 회사에 입사한다. 갤럭시즈는  볼일 없는 동네에 경제적 활력을 불어넣고 있고,  동네 대부분의 사람들 회사에 일하고 있다.


문제는 이 회사가 AV(Adult Video)를 제작하는 회사란 것이다. 리이치는 그때부터 자신의 도덕관념, 그리고 사회 통념과 부딪히면서 리이치와 주변의 갈등이 주로 다루고 있다. 평범한 듯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이 <모자이크 재팬>이 흥미로운 이유는 모자이크를 한 꺼풀 벗긴 채 일본 AV 산업의 나체로 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AV 산업과 모자이크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물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일본에서 AV는 역사는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현재는 1조 엔 (한화로 약 11조 원) 이상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1980년대를 기점으로 일본 AV 산업의 제작과 배포는 크게 늘어났고, 2017년 현재는 한 달 평균 약 2000편 정도가 제작될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거기에 1만여 개에 달하는 대여점과 판매점을 통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AV는 재패니메이션의 이면으로 일본을 전 세계에 알리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모자이크 재팬>은 이런 일본 AV 산업의 허와 실에 주목한다. 자본이라는 이름 하에 도덕관념과 성관념이 무너진 소도시 경제 체제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리이치는 이방인이다. 한때 기억하던 고향의 변해 버린 풍경은 리이치에게 너무나 낯설다. 자신이 본래 알던 선명했던 모든 것이 모자이크가 된 듯 불투명해진 광경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런 세계에서 리이치는 마지막 남은 자신의 사회 통념을 지키려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한때 안다고 믿었던 지인들의 냉소와 조롱이다.  


<모자이크 재팬>은 자본 앞에서 모자이크란 이름으로 변해버린 그들과의 타협점을 찾으려는 리이치가 현실 앞에서, 사랑 앞에서 철저하게 짓밟히고 무너지고 다시 변모하는 과정을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그려낸다.


리이치와 그 주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모자이크’란 이름하에 애써 외면한다. 그 외면에 대한 변명은 하나다.


"모자이크가 있으니까 괜찮아. 문제없어."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모자이크     


본래 여러 가지 작은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의 모양을 이루는 예술을 일컫는 용어, '모자이크(Mozaic)’, 현재는 그 의미가 변질돼 개인 정보나 특정 표시 혹은 상표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모자이크 재팬>은 일본이 모자이크하고 싶어 하는 일본의 AV 산업의 단면을 나체로 우리 앞에 선보인다. 돈과 이익이 된다면 자신의 제자와도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돈을 벌고 싶어서 그 잘난 돈이라는 걸 벌기 위해 뛰어든 세계에서 모자이크는 AV 배우가, AV 산업 종사자들이 그리고 국가란 것을 운영하는 행정가들이 빌붙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


<모자이크 재팬>은 일본에서 AV 산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것이 계속해서 존재해야만 한다면 과연 무엇을 모자이크하고 무엇을 모자이크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일본 AV를 조금이라도 접한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배우, 아사쿠라 란이 AV에 대해 '이 잘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로 하여금 최소한의 중산층의 생활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좋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생계의 수단이었던 AV는 모자이크를 통해 우리와 마주한다.     

<모자이크 재팬>는 ‘AV 산업이 옳다, 그르다’라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매춘부'는 인간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이며, '매춘'의 역사가 인류와 함께 했기에 그 누구도 '매춘'의 본질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 이 드라마의 기본 스탠스다.


자발적 매춘이나, 비자발적 매춘이란 것에 대해 자신의 식대로 재단하고 있지만 그 산업에 깊숙이 간여하고 경험한 인간이 아닌 이상 그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도되고 호도된, 아주 오만하고 기만적인 가치 판단이 되는 것이다.

     

<모자이크 재팬>이 보여주고 했던 것은 모자이크라는 하나의 층위를 살짝 거두어 내고 본질에 접근하려 노력해 보는 것이다.

가치 판단은 거두어 내고 모자이크를 최소화한 채 각자 처한 상황에서 너는 어떻게 이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모자이크 해 볼 요량인 관객들에게 조소를 날리는 것이다. 그래서 <모자이크 재팬>에서 가장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은 주인공인 리이치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면한다.


우리는 무엇을 모자이크 할 것인가?

리이치의 모순은 <모자이크 코리아>에 반면교사로 다가온다.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AV 산업의 문제를 떠안고 있다. 흔히 '별창'이라고 불리는 BJ들은 더 큰 자본에 의해 음지로 숨어들어 활동하고 있다. 각종 성인 커뮤니티를 통해 불법 동영상들이 유포되고 있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AV를 실제로 향유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AV 산업이 가진 큰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모자이크’ 코리아를 만든다. 이 ‘모자이크’ 안에서 여성 인권이라는 구호는 통곡의 벽에 부딪혀 버린 낡은 구호일 뿐이다. 왜곡되고 변형된 자본주의가 가질 수밖에 없는 숙명이자, 직면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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