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에 1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모은 6DP의 성공은 내가 있어 충격으로 다가왔다.
6일신문(6DP·6 days paper)이라는 계정 이름으로 활동하는 6DP는 주 6일 매일 8개 일간지(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한국경제, 매일경제) 중 잘 쓴 기사를 찍어서 코멘트를 달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다. 기사를 통해 접한 그의 성공은 나의 무능으로 이어졌다.
나 또한 그런 콘텐츠를 해볼 것을 예전부터 꾸준히 생각해왔다. 문제는 생각하고 실행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력이란, 실행력을 준말이라는 데, 나는 실행하지 않았고 그는 실행했다.
미디어오늘과의 짧은 서면 인터뷰 기사 중 6DP는 말했다.
'생각이 길어지면 결과가 후지다'
그 말이 또 한 번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생각이 길었고, 내 결과가 후졌기 때문에.
사실 플랫폼은 어디든 있었다. 예전과 달리 콘텐츠를 만들고 즐기는 것은 이제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됐다. 기술이 만든 세상은 불평등과 갈등을 조장하지만, 기술 자체는 사람들을 평등하게 만든다. 기술이 만들어낸 평등함으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누린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누구나 에디터고 될 수 있고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혼자만 생각이 많았다. 할 수 있었고, 가야만 했던 길을 혼자만 머뭇되다 가지 못했고, 하지 못했다.
나 혼자만 똑똑한 척 고고한 척 살았다. 실상은 나만 바보인 세상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는데, 그 무엇을 하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으니, 되는 게 없었다.
문장도 마찬가지다. 마침표는 줄어들고, 쉼표는 늘었다. 하나의 완결된 문장은 완성된 인생의 페이지와도 같다.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다음 문을 열 수도 다음 문장을 쓸 수도 없다. 마침표를 찍는 게 늘 어려웠기에 쉼표만 찍어 됐다. 그 결과 마침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말 줄임표가 붙었다.
후져졌다. 삶도 후져졌고, 글도 후져졌다. 쓰지 않은 몸에 군살이 붙듯 생각에 군살이 붙었다. 이는 몸의 변화와 글의 변화로 곧장 나타났다.
생각은 계속 길어졌고, 문장은 후져졌다. 예전에 썼던 서랍 속의 글들을 보면서 '꽤 괜찮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에는 생각보다 몸이, 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결과가 후지지 않기를, 움직이고 있으니 무슨 일이든 일어나겠지.
다시 한 번 마침표를 찍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