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을 나와야 보게 되는 실지
이미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는 글을 읽게 된 어린 시절 이후로 온 평생 조선일보 만을 구독하셨습니다. 시사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를 해당 미디어를 통해 얻게 된 것이지요. 그 세계관은 조선일보의 세계관과 거의 일치했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대학가에는 [의식화 교육]이란 용어가 있었습니다. 보수적 제도권의 교육을 받은 신입생들에게 사회주의 혁명이론을 주입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상당히 성공적인 의식화 과정이 되었습니다.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며 순종적인 시민으로 교육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현실에 대해 배우게 되었지요. 몇몇에게는 상당히 큰 임팩트를 주게 됩니다. 동세대의 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평생의 중심 의식으로 삼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21세기에 존재하는 20세기적인 고착된 의식이 발견됩니다.
내가 경험한 20세기 한국의 대학원 사회의 문화는 상당히 폐쇄적이었습니다. 카리스마가 있는 은사를 중심으로 닫힌 소사회를 형성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더 성장하여 국제 학회의 직접적인 경험이 쌓인 후에 되돌아본 당시 어떤 대학원 사회는 어느 면에서 폐쇄적인 섬에 가깝게 기억됩니다.
유심히 살펴본다면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의 대부분은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패턴, 자신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패턴의 반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하면서도 많은 일들이 일종의 ‘자동 반응 기계’의 작동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을 의식화하지 않으면, 무의식이 우리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데, 우리는 바로 이런 것을 두고 운명이라고 부른다.
자연스러운 개성화 과정은 인간 공동체의 의식성을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인간을 결합하는, 모든 인간에 공통되는 무의식을 의식성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개성화는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인류와 하나가 되는 일이다.
칼 융(Carl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