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태원 Taewon Suh Feb 13. 2022

국뽕? 욕망?

Know thyself and die laughing

젊었을 때 인생의 의미와 그 끝에 대해 숙고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겠습니다. 젊음은 에너지가 풍부하여 그 에너지가 사그러들거나 제로가 되는 상태를 쉽사리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심한 경우, 늙기 전에 죽어야겠다고 정말이지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지요.) 그 에너지를 즐기거나 탐닉하고 있는 사람일수록 그런 생각을 갖기 쉽겠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비판적 시각을 갖고 이후 어느 정도 경험을 갖게 되면, 멀리서 보는 사람의 인생은 오십보 백보로 보이게 됩니다. 그 놈이 그 놈이요, 잘났다는 놈도 그다지 별볼일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요절하지 않고 평균적인 나이를 살게 되는 경우, 말년의 사람의 인생은, 특히 죽기 전의 사람의 인생에 대한 태도는 하늘과 땅 만큼의 큰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조그만 차이를 갖고 평생을 살 때, 그 작은 차이는 큰 결과를 가져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인생에는 세상에서 배운 상식대로 되어가지 않는 묘한 반전과 패러독스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의 세상 상식이 대개는 허위(!)이기 때문입니다. 우주의 로고스 안에서 모든 기본 원리는 원칙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이른 바 세상의 상식 혹은 지식은 원리에 미처 닿지 못하고 그 원리가 신경 쓰지 않는 표면 만을 스쳐갑니다.


원리를 알게 될수록 우리는 흑백논리에서 멀어집니다. 쉽게 좋고 나쁨을 정하고, 도덕과 윤리에 집착하며, 편을 갈라치는 데 능숙하게 되는 세상의 상식에 다소 거리를 두게 됩니다. 내가 이것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이것을 알게 되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 알지 못하기에 설명하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겠습니다.


그저 간단하게, 부정적으로 해석되는 두 단어의 다른 실체를 드러냄으로써 그 부정성과 다름의 근거가 어디인가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반대로 그 보편성의 존재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같지만 다를 것입니다. 개똥 같이 얘기해도 찰떡 같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국뽕의 경우]

국뽕은 국수주의적인 의미화의 마스터베이션을 뜻합니다. 귀여운 국뽕이든 치사량의 마약 같은 중국몽스런 국뽕이든 국뽕은 자아의 확대에 관련됩니다. 이것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그 의미화의 관계가 대개 일방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관계에 기초하지 않을 때 그 의미화가 단절되는 것이 매우 쉽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누구 누구를 잘 알아"하고 말하는 것과 유시한 상황입니다. 모든이가 자기보다 큰 어떤 존재를 원합니다. 이것인 일반적인 인간의 사회적 특질일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존재와의 관계로부터 오는 만족감 혹은 안전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족감과 안전감은 자아 밖의 어떤 대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만족감과 안전감이 실제 관계가 있는 대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 관계 없는 대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에 차이가 있습니다. 당신이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그 국가와 당신과의 관계는 자동적인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면서도 그 국가와 실제적으로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혹은 유리한 상황에서만 관계를 설정하는, 임의적인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욕망의 경우]

전제주의적이거나 계몽주의적인 사회에서는 욕망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에 죄의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욕망은 그저 중립적인 개념입니다. 무엇을 원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특질입니다. 다만 무엇을 욕망하는가가 차이를 가져옵니다. 육체의 욕망이 있고 정신적인 욕망도 있습니다. 가치의 위계에서 낮은 단계의, 그러나 강렬한 욕망이 있고 높은 단계의, 그러나 모호한 욕망도 있습니다. 긴 시간에 걸쳐 우리는 다양한 것을 욕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긴 시간에 걸쳐 당신이 무엇을 욕망하는가가 당신을 정의합니다. 어떤 지속되는 욕망은 그 전 인생을 결정할 것입니다.   


칼 융에 의하면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제한된 자아를 부인하고 더 큰 자기를 찾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이 개성화의 과정이 인생을 결정합니다. 인생을 통해 욕망할 수 있는 가치를 찾고 그것을 추구하며 그것에 탐닉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空手來空手去]가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가치를 동일시하지 못하면 그것을 욕망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을 욕망하지 않으면 그것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욕망하는 사람에게 문은 열릴 것입니다. 다만, 가치를 따르지 않은 사람이 빈수레로 인생을 마감하겠습니다. 그 마지막 인생의 수레에 돈을 싣을수는 없답니다.




Shut up! Now it is Se So Neon!

A long dream (2017)


Title Image: The album cover of [긴 꿈] by Se So Neon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리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