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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Mar 31. 2024

가장 좋은 것을 눈앞에 두고도 알지 못한 나의 고정관념

#2024. 03.31 #worship ##wooridle

문제로 울며 힘들어하는 중,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의외의 천사를 만난 막달라 마리아~...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정작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마리아 이지만, 예수님은 그 이름을 불러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게 하셨고, 마라아는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 나의 기대들로 이미 세워놓은 계획과 고정관념 때문에, 가장 좋은 것이 바로 내 눈앞에 있음에도 보지 못했다. 가치관, 관점과 시야가 흐려져서 그것을 보고 있음에도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그것을 내려놓을 때에야 비로소 중요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의 유한함과 한계들로 숙연해지게 만드는 말씀이었다.


내가 놓쳐왔던 많은 소중한 것들이 생각나고, 이제는 그 소중한 것을 제대로 바라보고, 알아채고 싶다.

고정관념을 버리고 존중하자~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생각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살자~


제목 : 내가 주를 보았다

말씀 : 요 20:1~18 (김양재 목사님)


큰 기대를 가지고 높은 빌딩 전망대나 정상에 올라갔을 때 구름과 미세먼지로 그 풍경을 못 보면 아쉽습니다. 그런데 날씨나 먼지를 우리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으니, 팔복산 기도회에서 여한복음 보며 기도했습니다. 팔복산 정상에서는 바로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를 보았다. 내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말하면 좋겠습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주님을 보았다고 했나요?


1. 문제 때문에 울 때 의외의 천사를 만납니다.

1~9절 두 제자는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수제자와 사랑하는 제자들 입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는데 돌문이 열려 있는 것은 보았고, 이것을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렸습니다. 어떤 힘든 일이 있으면 교회 지체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들은 무덤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고, 세마포와 수건만 남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럼 시신을 찾으러 나서야 하는데, 이 제자들이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시신이 없어진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고, 혹여나 생각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회피하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문제의 그 자리에서 지키고 서있습니다. 그 힘든 자리에 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리아는 땅을 치며 통곡하며 울고 있습니다. 그녀는 일곱 귀신이 들렸었고, 인생의 바닥을 산 사람입니다. 구경거리, 수군거림, 놀림거리였고 모두에게 버림받았었고, 육적으로 영적으로 무너진 인생이었습니다. 우리 인생이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밑동 잘린 나무와 같습니다. 각자의 밑동 잘림이 있으나 수군거림이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런 삶에서 피할 수 있는 곳도 없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돌아갈 집이 있던 것입니다. 그녀는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었고,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있어서 이렇게라도 무덤에라도 찾아오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싶었는데, 시신이 도둑맞았으니 거기서 우는 것입니다. 문제가 힘든데도 직면하기보다 울면서 보고, 보면서 울고 있는 모습이 우리 인생과 같습니다.

울다가 흰옷 입은 두 천사를 보게 됩니다. 의외의 장속에서 의외의 존재를 만났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한편으로 놀라고, 한편으로는 희망입니다. 천사가 왜 우냐 물으니, 마리아는 예수님 시신이 없는 문제만 집중하고 있으니 질문의 의도를 모릅니다. 내 생각대로 듣고, 이해하고, 내 슬픈 것만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픈 것처럼 예수님의 시신 없어진 것만 보고 대답합니다.

주님은 우리처럼 연약하고 아픈 사람을 기다리셨습니다. 멀쩡한 의인은 주님이 필요가 없습니다. 아픈 사람이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적용질문) 어떤 문제 때문에 울고 또 울고 있습니까? 의외의 천가 같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누군가에게 천가샅은 사람이 되고 있습니까?


2.  의외의 환경에서 양육하시고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내 상황이 급박해서 예수님이 안보였습니다. 그렇게 슬퍼할 정도로 사모하던 주님인데 예수님을 못 알아보았습니다. 당연히 내 자녀는 잘나야 하고, 내 사업은 잘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 같지만, 사건 때문에 결국 나 자신의 유익 때문에 우는 것이 많습니다.

누가 예수님처럼 자신을 사람 대접 해주고 존중해 주는 상황과 사람이 없는 게 슬픈 것입니다. 자기만의 계획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좋은 일인데 그걸 보고도 슬퍼하고 있던 것입니다. 이 사건에서 주님을 만나야 하는데, 시체가 없다고 울고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니,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 알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찾는 사람이 나라고 말하고 있는 듯 질문을 하였습니다. 고난은 피하라고 온 것이 아니라, 낭떠러지로 가고 있는 우리의 인생을 멈추게 해 주고, 지켜주는 것입니다. 고난은 생각하라고 오는 것입니다. 나만 바라보는 삶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는 사인입니다.

여러분이 찾던 것이 무엇이든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해석을 잘해야 방황이 끝납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만 보면 해석이 안됩니다. 구속사적인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알려도 마리아는 알지 못한 것처럼 말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앞에 두고도 고정관념 때문에 시신을 찾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힘으로 만날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생각지 않은 장소와 사람을 통해서 오십니다. 의외의 사건을 통해 남편 바람, 부도, 아이 고난을 통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시체만을 찾으려고 합니다.

착해서 사업하고, 결혼하니 분별이 안 되는 것이라 QT 해야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며 분별을 해야 합니다. 외모로 보지 말고 본질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꼭 만나야 할 장소를 결정해놓고 있으나, 주님은 의외의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만 찾아야 하는 곳에 없다고, 주님을 보는 일에도 울고 있구나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예수님이 마리아야 이름을 부르십니다. 비로소 그때 마리아는 알아보고 랍오니 라고 화답합니다. 14절에는 내 힘으로 하니 예수님이 안 보이지만, 16절에서 예수님이 하시니 마리아가 돌이켜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부활 후 첫 번째 기록된 이름으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름을 불러주시니 게임이 끝난 것입니다. 주님은 형편없는 나를 찾아오시고 내 이름을 불러 주십니다. 우리 모습 그대로 불러 주십니다. 우리가 문제 투성인 것 문제 되지 않습니다. 일어날 힘이 없어도 걱정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 불러주십니다. 여러분은 그럼 그냥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고난이라는 사건으로, 이 말씀으로 불러 주십니다.

(적용 질문) 하나님이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신 고난과 말씀은 무엇인가요?


3.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사명 감당하게 하십니다.

부활의 주님 만난 것 같은데, 육신의 주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만났으나 다시 예수님을 붙들고 예전처럼만 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처럼, 마리아도 육적으로 예수님을 붙들고만 있으려고 합니다. 이제 부활의 주님으로 가야 합니다.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마리아는 무덤에서 울다가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가서 간증한 곳은 바로 제자들 앞이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세상의 성공에 목이 마릅니다. 성경이 응하게 하는 삶이 최고의 전도, 양육인데 부활하신 주님의 증인 되어 내가 주를 보았다고 외쳐야 합니다.

(적용질문) 놓치고 또 놓쳐도 또 붙들려고 하는 육신의 즐거움은? 내가 듣고 싶은 가장 기쁜 소식은? 부활의 주님을 보았나요? 내게 가장 기쁜 소식은 여전히 남편, 자녀, 돈 등이 기쁜 소식입니까?

예수님의 증언이 인정받기 못 받는 시대에 마리아의 증언이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이 되었습니다. 내 사건에서 살아난 것은 위안받는 증거가 아니라 외치고 전도를 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인생의 굴곡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응하지 않으면 삶을 살수 어렵습니다. 매일 묻고 또 물으면서 공동체에 붙어 가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제자들에게부터 시작해서 외치고 가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해석이 잘되야 해결이 되어서 사명의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체를 찾다가 결론이 무언가요? 그러다가 얼마나 많은 낭비가 있나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시체가 없다고 통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남편 사건으로 하나님은 인생 최고의 선물인 회개를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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