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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터파머 DataFarmer Apr 14. 2024

분별과 지혜

#2024. 04.14  #worship ##wooridle

진정한 나 자신을 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왜 중요한지 아는것은 더 중요하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나 자신의 솔직한 모습으로 살아갈때 편안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되는 것은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포장하는 것이다. 더 많이 얻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다. 오늘의 예배를 통해 내 안의 이세벨을 분별하여 회개하며, 말씀 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우리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이 때를 놓치지 않고 회개할 때, 비로소 말씀이 들리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된다.


제목 : 이세벨을 내려 던지라

말씀 : 왕 9:30~37 (김양재 목사님)


 인간은 무언가를 새롭게 얻게 된 기쁨보다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고통에 더 민감하다고 합니다. 손실회피 성향입니다. 며느리를 얻는 것보다 아들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느낌과 비슷합니다. 여러분이 피하고 싶은 손실은 무엇인가요? 아하시야는 가족 우상 버리기 힘들어하다 갚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손실회피 성향을 넘어서야 합니다. 거룩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게 있는데, 바로 우리의 죄악입니다. 악의 진원지, 아합의 집 길의 끝판왕 이세벨에 대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내려 던지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가득한 죄악들을 모두 던져야 합니다.


1. 화려하게 꾸민 포장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후는 이스르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드디어 이세벨을 손 보실 때가 왔습니다. 미치듯이 강한 이세벨입니다. 제사장이기도 하고, 왕비이고, 아들 둘도 왕으로 만들었고, 여왕도 되었고, 사위도 외손자도 모두 왕입니다. 이세벨은 모든 왕에게 둘러 쌓였고, 그 왕들보다 더욱 높았던 왕 중의 왕입니다. 

이세벨은 남편과 아들이 죽은 소식을 듣고 이제 자기 차례인 것을 알았습니다. 엘리사, 엘리야가 계속 말씀을 전해주어도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립니다. 하나님은 이세벨에게 많은 회개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갈멜산 대결에서도 보았으나 회개가 안됩니다. 남편은 전사하고, 큰아들, 작은아들, 외손자 모두 죽어도 회개가 안됩니다. 고난이 왔다고 회개가 되는 것은 또 아닙니다.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한 것이 화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를 퍼뜨리고 여호와를 섬기는 것을 없애려고 한 이세벨입니다. 예후가 자기를 죽이러 오는 것을 창을 통해 도도하게 내려다봅니다. 그리고 오히려 예후를 향해, '주인을 죽인 시므리여, 너 평안하냐?'라고 먼저 묻습니다. 이세벨이 시므리라고 부른 것은 7일 만에 끝날 것이라는 것을 비꼬는 것입니다. 도망가고 숨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앞두고도 꾸밈과 포장을 하는 이세벨의 모습입니다. 엘리야, 엘리사도 아무리 말씀을 전해도 믿지 않던 이세벨을 포함한 악한 왕들을 처단하지는 않았습니다.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 그런 악한 일은 하면 안 됩니다. 

죽음의 대한 견해가 정해지지 않아서 인생이 불안합니다. 기본적인 것은 물론 내 자신을 포장하는 화려한 것들로 꾸미는 것이 이 세상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내 본모습을 감추는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화려한 치장이 될 때가 많습니다. 자존심이 자신의 생명보다 높이 있어서, 자존심이 내려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세벨의 마지막 회개의 기회는 '지금'이었습니다. 이세벨은 남편과 아들의 죽은 소식을 들었음에도 이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따라서 화려하게 꾸민 것들이 다 벗겨져서 내 수치가 드러난 사건은 저주가 아닙니다. 내 본모습을 직면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고, 스스로 속고 속이는 기회를 드러내어 회개할 기회를 주시도록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입니다.

(적용 질문) 무엇을 제일 열심히 꾸미나요? 왜? 감추고 싶은 약점은? 들었으나 내 모습을 보지 못해 녀려놓기 어려운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2. 말씀 편이 되어야 합니다.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망하게 되려면 사람들은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됩니다. 이세벨이 끝까지 왕후 행세를 하며 도발하지만, 예후는 꿈적하지 않았습니다. 예후는 내 편이 될 자 누구냐 외치며 이세벨을 내어 던지라 하니,  내시 두 명이 예후의 말을 듣고 이세벨을  내려 던집니다. 평생 섬기던 왕후를 바로 내어 던졌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이세벨의 시체의 피가 담과 말에 튀었고, 예후는 그의 시체를 밟았습니다.

이세벨은 북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는 것을 국교로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고, 여로보암이 교주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엘리야도 도망을 갈 수밖에 없던 매우 강력한 이세벨입니다. 

믿음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세벨을 추종했습니다. 우리 안에 온갖 이세벨이 가득합니다. 내 욕심을 채워줄 것 같으면 따라갑니다. 우리 안에는 고집의 이세벨, 불신의 이세벨, 탐욕의 이세벨, 충동질의 이세벨, 자기애의 이세벨, 쾌락의 이세벨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힘과 영향력이 있는 이세벨을 부러워하는 이세벨이 있고, 비교의 이세벨이 있습니다. 한국의 최저 수준 출산율이 사교육비 지출 시 남과의 비교가 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비교해서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비교 이세벨입니다. 내 안의 이세벨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후는 청년 선지자를 통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것이고, '내 편이 될 자 누구냐?'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편에 설 자를 찾는 것입니다. 말씀 편이 되는 것은 큐티하며 내 안의 이세벨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정체를 밝히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이세벨을 내려 던지는 첫걸음입니다. 

(적용 질문) 말씀 편입니까? 세상 편입니까? 말씀 편이 될 자 누구냐 누구냐 외쳐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내려 던져야 할 내 안의 이세벨을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다시는 찾지 못하게 해 주십니다.

예후는 저주받은 이세벨을 찾아 장사하라고 합니다. 아합의 집 길아 악하도록 이세벨이 충동을 하였고, 두 아들도 악한 길을 걷도록 모두 충동하였습니다. 3대에 이르도록 그녀의 통치와 영향력은 계속되었고 백성들도 이세벨을 좋아했습니다. 이세벨의 마지막은 우상숭배자의 전형적인 말로 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악으로 물들인 죄악의 끝판왕 이세벨입니다. 

예후는 이세벨을 '이 저주를 받은 여자'라고 합니다. 이세벨의 인생 전체가 죄악의 저주임을 알고 있었고, 그의 의도는 이세벨의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왕의 딸이라는 것에 대해 대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스르엘 토지에서 이세벨의 시체는 이미 들짐승에 의해서 다 훼손되었습니다. 이세벨의 시체는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정확한 심판입니다. 그리고 예후가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벨의 시체를 거름이라 표현하지만 '똥'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실상은 똥인 것입니다. 우리가 더 많이 움켜쥐려고 하는 것은 똥입니다. (배설물인 것입니다) 우리가 울며 불며 가지려는 가치는 다 똥과 같은 것입니다. 

모든 수고가 주님보다 위에 있다면 똥이 될 수 있습니다. 아합 집이 식구들이 똘똘 뭉쳐서 얼마나 화복합니까? 학벌, 지위 등의 교만, 작은 습관 하나 내려 던지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이것을 내려 던질 수 있습니까? 사소한 것을 내려 던질 수 있을 때 큰 것도 내려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려 던지는 습관을 가지고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세벨이 악녀라고 해서 그의 모습이 악한 모습은 않았을 것입니다. 최고의 지성과 외모와 설득력을 갖추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고 싶어 했을 때, 나봇은 내 조상의 유업이라 말씀에 따라 팔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봇의 포도원은 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왕이기 때문에 갖고 싶다고, 그냥 빼앗을 수도 없었습니다. 큐티하면서 말씀 들으면서도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유리와 똑같습니다 

이때 이세벨이 해결자로 나섰고, 백성들이 이세벨의 이야기를 듣고 나봇을 돌로 던져서 죽입니다. 아합은 모두 이세벨이 한 일이라고 합니다. 아합은 이세벨과 혼인 함으로 가고 오는 세대 가장 악한 시대를 열은 결혼이 된 것입니다. 학교, 직장, 배우자 선택할 때 심사 숙고 해야 합니다. 이세벨은 믿는 내가 택한 것이고, 계속 끌려가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이세벨을 숭배합니다. 돈, 권력, 화려함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불의 사자 예후를 보낸 것입니다.

내 안의 이세벨을 큐티하고 적용해서 던져버리니 후회가 안되고, 미련이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하나라도 이세벨을 발견하여 던지는 것을 주님이 보며, 그 이세벨을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던져버리리라는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반드시 도울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회개해야 할 때입니다. 

(적용 질문) 내어버렸다가도 금방 다시 찾고 싶은 습관, 중독, 죄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똥을 다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인정 됩니까? 이번주 다시 내려버리는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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