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을 Mar 03. 2020

내가 우울한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밝은 것보다 우울한 것들을 좋아합니다.


밝은 것보다 우울한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이내 살짝 물음표를 띄운다. 왜 굳이 그런 걸?이라는 표정 하지만 밝고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공간, 누가 보기에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런 것들은 실상 속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어쩌면 나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것 에 대한 병적인 경계를 하는 셈이다. 


이런 생각은 어릴 적부터 계속되었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지만, 단지 남들이 좋다고 말하는 주류에 한 번씩 물음표를 던졌을 뿐이었다. 유행하는 옷, 유행하는 가수, 유행하는 음악, 심지어 유행하는 말투까지 매번 너는 그걸 왜 좋아해? 라고 물으면 내가 물어보는 질문들에 언제나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취향이 라는 게 생겨나고 나의 취향을 공유할 때마다 우울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뭐.. 우울하다는 게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에겐 따스함이다. 그리고 포근함이다. 미지근함 정도랄까?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밝고 행복을 강조하고 그냥 모든 게 너무 과하다. 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하는데 우리 엄마는 핸드폰으로 물건을 사실 줄 모르고 나의 사촌 누나는 인스타그램을 어렵다며 안 한다. 기술의 발전을 느끼고 살지 못하는 데 자꾸 인터넷에서는 신기술이 나왔다느니 새로운 스마트한 물건들이 쏟아진다. 사람들이 가진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 이런 불친절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선택한 취향은 ' 우울함 '이다. 한 가지 변론을 하자면, 주변 사람들까지 우울하게 만드는 그런 우울이 아닌 나 혼자만의 우울을 말한다.


나에게 우울은 조금 느리고, 그리 밝지도 또 그렇게 어둡지도 않은 정도,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정도의 미지근함, 어려운 클래식과 신나는 팝 그 사이의 북유럽 클래식 같은 것이랄까?


소주와 맥주보단 와인에 가깝다. 새로 사귄 잘 나가는 베스트 셀러를 쓴 작가보단 공무원 시험에 3년을 떨어진 10년 지기 친구와 가깝다. 유통기한이 3일이 지난 우유와 5년 전에 샀지만 아직 펼쳐보지 못한 이름 모를 작가의 책과 비슷하다고 설명하면 조금은 내가 우울한 사람의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



우울한 취향을 하나 공유하자면, 나는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을 특히 좋아한다. 이 음악은 내 기준에서 참 우울하다. 그래서 과하지 않다. 빠르지 않고 적당하다. 속삭이지만 또렷하다. 따뜻하지만 뜨겁지 않고 차갑지만 외투를 걸칠 정도는 아니다. 글을 쓸 때면 언제나 이 앨범을 듣는다. 


나는 자신만의 우울을 가진 사람들이 좋다. 언제나 밝기만한 사람보다 때로는 오늘은 우울해서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돌려보거나, 음악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은 어떤 우울을 가졌는 지 궁금하다.


ps. 한 겨울날 우연히 지나가다 구석진 곳에 있던 사진 편집샵에 들어갔을 때 흘러나오던 음악, 공간을 바꿔버리는 듯한 무겁지만 따스한 선율에 나는 매료되어 이 앨범의 이름을 물어봤었다. 평생 함께갈 친구를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꼭 들어보시길.

작가의 이전글 누군가를 이해하게되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