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주린 Mar 03. 2020

노인을 위한 나라, 여기

전 늙어도 일하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만든 불고기 점심을 먹고 할머니가 만든 사과요구르트 주스로 입가심을 했다. 이곳 싱가포르는 다른 나라에 비해 일하는 노인들이 눈에 띄게 많다. 백화점 푸드코트를 예로 들면, 그릇을 치우고 주스를 만들고 심지어 불 앞에서 요리하는 노인들이 한 시간에 최소 5명은 보인다. 특정 쇼핑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웬만한 식당이나 마트 등 모든 곳엔 어르신 근무자들이 많다. 심지어 어떤 할머니는 느릿느릿 걷고 내 주문을 잘 못 듣기도 하시지만 그래도 그들이 만든 주스는 맛만 좋다.


 이런 사회분위기가 노인에게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모르는 현지인들도 물론 있었다. 하루는 택시기사가 우리 부부에게 ‘당신들은 싱가포르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며, 노인들이 일하고 있는 게 말이 되냐고 혼자 열을 냈다. 나이가 들 수록 일을 안 할 수 있게 국가나 정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주장 같았다. 난 속으로 저건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했고 남편은 ‘한국에선 이곳처럼 노인이 일하고 싶어 해도 아무도 안 받아준다.’ 라며 되받아쳤다. 자기가 오래 산 곳일수록 더 깐깐한 마음이 생기는 걸까.


 OECD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노인 취업률 2위가 한국(45%)이라는데, 그만큼 빈곤율도 높은 편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일자리가 폐지 줍기 같은 양질의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수입에 큰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딱히 큰 이유가 없다면 박스를 찾아 리어카를 끄는 그들도 당연히 식당에서 그릇을 치우거나 음료를 만드는 걸 더 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나는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고 싶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현재는 대학원 준비나 일을 당장 찾기 어려운 조건 때문에 휴식기를 갖고 있지만 그래도 내가 쓸모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데엔 노동만 한 게 없어 보인다. 노인들이 힘들게 일하는 것보다, 양질의 일을 애초부터 할 수 없는 상황을 갖고 있다는 게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싱가포르 상황을 전해드립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