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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Apr 10. 2020

내게 '글태기'가 온 이유는

내가 지금 글을 못 쓰는 이유

글 쓰는 게 막혔다.


 예전엔 뭔가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라 짧은 글은 한 30분이면 쭉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렇지가 않다. 작가의 서랍엔 정말 서랍의 용도로 글을 보관, 보관 또 보관하며 계속 그렇게 거의 여덟 아홉 개의 습작들만 쌓아가고 있다. '이러라고 브런치가 작가의 서랍을 만든 건 아닐 텐데.. 저 글들도 언젠간 발행이 되려나?' 싶으면서도 다시 수정해서 이걸 발행하자니 이건 뭐 2%도 아니고 20%는 부족해 보인다.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봤다. 나름 매번 글을 쓸 땐 재밌고 발행을 언제 누르나 간질간질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첫 번째, 특별한 일이 없다. 글을 엮어낼 '소재'가 없는 것이다.

이 곳 싱가포르에 온 지 1년이 넘었다. 웬만한 식당도 거리도 엄청나게 새로운 느낌은 아니다. 물론 그만큼 이곳의 생활이 너무 편해졌지만 그만큼 글로 써낼 만큼의 이국적인 느낌이 아니어서 자꾸 발행을 포기하게 된다. 서랍에 들어간 '아라비카 %카페' 소개글도 그런 이유로 아직까지 잠들어 있다. 또 현재 대학원 준비로 어학원을 다니는 데, 그냥 영어시험 준비에만 집중하고 사람 교류를 별로 안 하고 있어서인지 특별한 에피소드도 잘 생기지 않는다. 아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정부가 웬만한 쇼핑몰은 물론이고 식당 자리도 못 앉게 막아놨다. 이런 상황에서 어딜 나가서 새로운 경험을 글로 풀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글을 쓰자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거리를 찾고 싶진 않다. 오히려 이 익숙해진 느낌을 토대로 더 정확하고 탄탄한 글을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서다. 내심 해외 생활에 적응한 것도 같아 마냥 아쉽지만은 않다.


 둘째, '지금' 글을 쓸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브런치 작가를 시작으로 책 출간을 하고 또 싱가포르의 정착기에 대해 많이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작년 말 이미 직장 동료들과 책 출간의 꿈을 이뤘다. 출간이라는 버킷리스트를 하나 이루고 나니 출간에 대한 엄청난 환상과 기대감이 와르르 무너졌다. 내 글을 누가 먼저 알아주지 않는 이상 직접 출판사를 찾아 컨택을 해야 하고 아무리 유명 서점이 추천 책으로 꼽아줘도 유명 인사가 추천사를 써줘도 그게 판매 부수에 영향이 크게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물론 이 이유 때문에 글을 쓰기 너무 지친다는 건 조금 핑계지만, 과연 '출간'을 목표로 내가 이 글들을 쓰고 있는 건지엔 스스로에게도 좀 의문이 든다. 출간이나 유명 작가 등 원대한 그림 보단 초기 목표였던 '싱가포르 알리기'에 집중해야 될 시기가 아닐까.


 마지막, 조회수가 독이 됐다. 독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

글을 한 네다섯 번 발행했을 때 조회수에 반응이 왔다. 가장 높은 건 9만 정도까지도 갔고 내 글의 수준에 비해선 브런치가 내 글을 메인에 올려주는 빈도도 꽤 높았다고 생각한다. 그때마다 신이 나 조회수를 캡처해서 인스타 스토리에 기록을 남기고 실시간으로 조회수가 얼마나 더 올랐나 확인하기 바빴다. 말 그대로 독자의, 브런치의 눈치를 본 것이다. 브런치를 시작하기 전에 가장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한 게 바로 '조회수'에 착각하지 말자 였는데 역시나 사람은 조금만 띄워주면 정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 같다. 기자일을 하면서 만들어낸 주특기 '제목 잘 뽑기'로 그냥 조회 '수'가 올라간 것뿐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아무튼 정말 독자의 입맛대로 소재를 고르다 보니 내 깊은 곳의 이야기나 추억들을 담아내기엔 조금은 얕은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그냥 내가 만든 놀이터에 누가 잠깐 놀러 온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글을 써야겠다.


더 많은 복합적인 이유들이 내 글태기를 만들어 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위의 세 가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고 난 글들이 더 단단해질 거란 믿음이 있다. 설레진 않지만 담담하니 유익해 결국엔 저장하고 싶어 지는 그런 글들을 많이 발행하고 싶다. 이젠 내 요행이었던 눈길 가는 제목 뽑기보단 좀 더 콘텐츠의 수준에 집중해야 될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간 또 그 어려운 출간에 다시 도전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참고로 사진은 남편이 찍어준 사진으로, 절대 이 글을 염두에 두고 의도한 사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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