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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린 Apr 11. 2020

아파트 입장거부 당한 날

코로나와 싸우고 있는 싱가포르

 아침에 학교 선배를 만나러 지하철 대여섯 정거장을 지나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다. 싱가포르의 아파트는 친구나 친지, 배달원 포함 웬만한 방문객은 방문지를 작성해서 들어가야 한다. 평소처럼 이름이랑 번호, 방문 목적을 적고 들어가려는데 경비원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게 아닌가. 당시 대화를 떠올리면 이렇다.


"방문객? 혹시 거주자 아니에요?"


"아니요, 저 지인 만나러 온 거예요."


"응? 거주자 아니고?"


"왜요? 저 방문객인데.."


"그럼 못 들어가요. 어제부터 싱가포르 정부가 그렇게 방침을 내렸거든."


 뭐라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니까 이젠 친구나 가족 소규모 모임도 안 된단다. 싱가포르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무려 한 달간 작은 모임조차도 모두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마트나 병원 같이 필수적인 공간만 오픈하고 나머지 쇼핑몰 운영이나 식당 좌석 이용, 소규모 모임 등은 모두 제한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선배에게 상황을 말하고 돌아섰다. 쪽문에도 보안 요원이 서있어서 꼼수로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았다. 경비원은 내게 "JUST STAY HOME"이라 말하며 내심 미안한 눈치를 보였다.

지하철도 앉을 수 있는 거리가 스티커로 정해져 있다

 싱가포르는 살기 편하고 안전한 대신 모든 규칙이 엄격하다. 행여나 모험한답시고 규칙을 어겼다간 곧바로 경찰이 올 수도 있다. 이곳 지하철엔 항시 수상한 사람의 짐을 검사하는 요원이 따로 배치돼 있고 사복경찰도 자주 다닌다. 한마디로 싱가포르는 '자, 너희가 진짜 살기 편하고 안전하게 우리가 지켜줄게. 대신에 무조건 공공 규칙은 잘 지키는 거야.' 같은 분위기가 퍼져 있다. 풍선껌을 못 씹는 대신 길거리가 깨끗하고 지하철에서 음료를 못 마시는 대신 커피에 화상을 대일 사태나 바닥이 더러워질 일은 살면서 없는 것이다.

 처음엔 너무 까다로운 것 아닌가 하는 불만도 가졌다가 뉴스와 기사를 몇 개 보고 나니 이해가 됐다. 나름 소강상태였던 싱가포르에 최근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어서다. 기자들은 '위기에 몰린 방역 모범국'이라며, 현재(11일) 싱가포르 확진자가 2천 명이 넘었다고 보도했다. 회사원들은 다수가 재택근무에 웬만한 강의는 다 온라인 수업으로 돌렸는데 한 달 집콕쯤이야. 코로나 때문에 사망자뿐만 아니라 실업자까지 늘어나는 상황에 이런 방침은 정부에겐 그리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른 데도 아니고 지인 보러 가는 아파트 입구에서 집에 돌아가려니 그날 아침은 왠지 서러웠다. 그래도 잠깐 불편하면 곧 일상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니 금세 억울한 마음을 내려놓게 됐다. 어쩌면 위기 상황에 이렇게 '빡센' 나라에 살아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관련 내용으로 TBS 전화인터뷰 연결을 했습니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98iNsU4p-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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