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년 김학민을 만나다-
지난주 수요일 "서강잡스"라 불리는 김학민 씨를 인터뷰했습니다. 김 씨는 서강대생들을 비롯한 서울지역 대학생들에게 고장난 아이폰/아이패드를 신속하게 고쳐주는 테크니션으로 유명한 친구입니다. 그덕에 "서강잡스"란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김 씨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학생입니다.)
그의 사무실엔 부서진 아이폰/아이패드를 들고 그의 수리를 기다리는 고객들로 넘쳐납니다. 제가 인터뷰를 위해 그를 찾았던 수요일에도 그의 전화기는 쉴 새 없이 울려댔고 그의 방 또한 쉴 새 없이 분볐습니다.
그는 2011년 대한민국 땅을 처음 밟은 탈북자 청년입니다.
불과 6년 전, 그는 꽁꽁 언 두만강을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건넜습니다. 체포될 경우를 대비해 자살용 알약을 입에 물고 가겠다는 여자친구의 말에 그는, "우리가 죽지 않고 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다. 약 필요 없다"고 다그쳤습니다.
김학민 씨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2011년 1월 그 날, 눈으로 덮인 두만강을 건넌 후 그의 여자친구가 꽁꽁 언 그의 손을 자신의 배에 갖다데며 녹여주었던 때를 뽑았습니다.
김 씨는 87년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에서 태어났습니다. 7살 때부터 보이는 모든 전자제품을 분해하기 시작했고, 13 세살부터 이웃들의 티비 및 가전제품을 고쳐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덕에 자연스레 한국 드라마를 시청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한 드라마 시청은 그를 고문의 고통 속에 몰아넣기도 했습니다. 이웃 주민들의 탄원으로 간신히 수용소행을 면한 그는 2011년 1월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합니다.
기사는 토요일에 나왔지만 지면에는 담지 못한 주옥같은 말들이 인터뷰 녹취록 곳곳에 보였습니다. 혼자만 알기엔 아쉬운 구절들이 많아 부분 발췌하여 올립니다. 최대한 편집 없이 그가 말했던 원문대로 옮깁니다.
북한에서 어떻게 이웃들의 가전제품을 수리해주기 시작했나?
꼬마 수리공은 지역에 나밖에 없었다. 밥도 먹고 돈도 받고. 하면서. 그렇게. 끼니를 유지할 정도로만. 이미 SBS 기사에도 나왔지만, 수리를 해주고서도 돈을 못 받은 적이 너무 많았다.
막상 가보면 집이 너무 못 살고... 그런 거 보면.... 막상 애들이 셋이고. 가족들의 낙이 티브이밖에 없는 상황에선.... 그게 고장 나면 저 같은 사람 찾는 거다. 막상 가서 너무 어려운 환경이 눈 앞에 보이면 차마 돈 달라는 말이 안 나온다. 그곳은 지불 시스템이 확실히 있지 않다. 남한에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수리 대가로 밥 한 끼 얻어먹을 때도 있고 부품값만 받을 때도 있었다.
어떻게 탈북을 하게 됐나?
2011년 1월에 영하 20 도 추위에- 100미터 폭 두만강을 건넜다. 그때 마침 군인 임무 교대시간이란 걸 지인이 알려줬다. 그곳은 저녁 7시면 칠흑같이 깜깜하다. 강 건너기 전에 여자 친구가 계속 울더라. 중국에서 잡히면- 북송되면- "우리가 서로 갈라져서 감옥 갈 텐데 그럼 감옥에서 보고 싶어 사무치면 어떡하냐? 자긴 자살약 준비하겠다"라고 하더라- 전 준비하지 말라고 "우리가 죽지 않고 가는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약 필요 없다"라고 다그쳤다. 그리고 손잡고 두만강을 건넜다.
왜 스티브 잡스에게 빠졌나?
스티브 잡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좇듯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나는 전자제품과 친숙하면서 많은 시간 보내지 않았나?
여자친구에게 관심 많았지만- 전자제품 뜯는 것도 여친 만나는 것만큼 기쁘고 재밌었다. 욕심나는 제품 소유했을 때 그 행복도가 엄청나다. 잡스가 여러분도 사랑하는 사람 찾듯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감명 깊었다.
살면서 수많은 타인의 조언 구하면서, 남의 인생에 빠져서 헛된 시간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여러분 직관으로- 열정이 불러주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그 말이 나를 살렸다. 왜냐면... 어찌 보면 난 한국에서 정체성도 없었고, 한국사회에서 비주류로서 "타인에게 난 어떻게 비칠까? 나를 탈북자라는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걱정하면서 살았는데 잡스로 인해 자유로워진 것이다.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살면서 수많은 것들을 느꼈다. 돈도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나를 행복하 해주는 것들은 물질일 수도, 혹은 사람과의 관계일 때도 있다. 또 그것이 배움일 때도 있다.
내 삶의 과거를 보면, 난 항상 수많은 채움으로 살아가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걸 고르자면 남에게 도움을 주었을 때, 기쁨을 주었을 때 최고 희열을 느끼더라- 북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가전제품 수리를) 무료로 해주었을 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더라.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골라본, 돈도 아니고, 형태적인 것이 아니고, 명예였다. 사람들이 "김학민이가 어떤 일을 해주었다"라는 명예. 어찌 보면 그 명예 덕분에 구류소에서 석방됐다. 북에선 이런 말이 이다. "민심은 천심을 얻는다."
내 삶은 누군가 점들로 찍어놔서 살아온 삶인데- 그 점들이 이어져서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스티브 잡스 연설에서도 "커넥팅 더 닷"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 연설) 부분이 있다. 전 그런 생각 많이 해봤다. 사람들의 인연을 소중히 한다. 앞으로 인류에 도움이 될만한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명예로운 일을 하고 싶다."
사진: Korea JoongAng Da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