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년 전 1년 넘게 중앙일보에 연재된 JP증언록을 영문 번역했다. 휴가기간을 빼고는 모든 회고를 읽고 또 읽으며 번역했다. 충남 공주 기숙사 학교를 다녔던 일제시대 사춘기 시절부터 2004년 정계은퇴까지, 그의 인생을 현미경아래서 바라보듯 봤던 시간이었다.
2. JP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국 조지아 주 군사학교로 연수를 갔다. 배를 태고 태평양을 건너 미 서부대륙에 도착한 그 전쟁이 한창이던 한국과는 정반대의 모습인 미국의 평화로움과 부유함에 충격을 받았다. 25살 청년이 받은 충격과 놀라움이란.
“수만 리 이국 땅에서 매일 격렬한 전투를 펼치고 있으면서도 미국은 어디까지나 대륙적이고 여유 있는 평화경(平和境)이었다. 미국이 이래서 강한 나라로구나. 그 힘을 실감했다.
나흘간 열차 여행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첫날 저녁 중대본부 표판 위에 태극기와 함께 내걸린 문구를 보고 우리는 잠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이 문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장 우수한 장교들이 출입한다”고 영어로 써 있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수한 장교가 돼 아무런 가책을 받지 않고 이 문을 출입하겠노라 다짐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17572824)
3. 1950년대 중반, 최빈국에서 온 20대 중반 청년이 세계 최강대국에서 느꼈을 부러움, 경외, 그리고 부끄러움은 어쩌면 당연했다. 당시 그 감정들을 기반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5.16 쿠데타를 기획했을 것이다. 미국과 같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국가지도자가 무엇을 해야 할 지 머릿속에 계획을 가지고서.
4. JP는 충실한 엘리트주의자였다. 민중보다 깨어있는 지도자가 민중을 이끌어 한다는 사상을 어린시절 체화, 그것을 정치인생의 토대로 삼았다. 세계 최빈국 이었던 당시 대한민국의 상항이 그런 생각을 더 공고하게 했을 것이다.
5. JP 영문회고록을 작업하며 “각 시대에는 각 시대가 필요한 사람을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자주 들었다.
92년 인생 동안 그는 한국사에 많은 발자취를 남겼다. 그 발자취 속에서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은 덜어내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거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