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미국/중국/일본 화장품 유형별 시장 규모 인포그래픽
선-무당: 서투르고 미숙하여 굿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당.
랩소디(rhapsody): 관능적이면서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
선무당 랩소디는 '정확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분들에겐 몹시 위험합니다.
사람 잡을지도 모를 '의식의 흐름'의 향연이니 적당히 거르고 읽어주세요.
백수가 된 지 이주 차, 문득 내가 너무 먼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걸 '우주먼지' 시즌이라고 부른다. 보통은 이대로 누워서 며칠 뻗대면 지나가는데, 이 날은 온 우주가 검색창에 '화장품 시장 동향'을 검색해 보라고 외쳤다. 온 우주가 간절히 원하니 들어줬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간절히 바랄 때,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겠지.
검색 결과를 죽죽 내리다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나온 <2015년 화장품산업 분석 보고서> PDF를 받게 되었고, 멍하니 마우스 휠을 굴리던 도중 프랑스/미국/일본/중국의 유형별 화장품 시장 규모에 대한 페이지를 목격했다. 진짜 사람이 너무 심심하니까 별게 다 재밌네, 싶었다. 표에는 숫자밖에 없는데, 그 숫자들이 그 나라들을 너무 절묘하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그래서 느닷없이 낄낄대면서 인포그래픽을 만들기 시작했다. 언제 한 번 만들어보고 싶긴 했는데, 온 우주가 시켜서 하게 될 줄이야.
그런데 막상 이마와 무릎을 번갈아 쳐가며, '내 그럴 줄 알았지!'하며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나는 너무 당연한 것을 잊고 있었다. 자료를 기반으로 한 모든 작업에 있어서 선 자료조사, 후 작업 착수가 아주 중요하다는 사실을.
'외국 통계가 있는데, 한국 통계가 없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에, 일단 있는 자료부터 작업했는데, 세상에. 내 나라 자료가 가장 구하기 힘들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네 개 국가를 완성한 뒤 '한국은 역시 앉은뱅이 화장대지!' 하며 경대까지 그려놓은 뒤에야 자료조사에 착수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렇게 세밀하게 제품 유형별로 시장규모나 소비액 규모를 정리해둔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 화장대는 조용히 폐기. 선무당이 괜히 선무당인가.
우선 '프랑스'스러운 공주님 화장대를 보자. 프랑스 화장품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네 개 국가 중 가장 '후각'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성 향수, 남성 향수, 데오드란트가 각각 2,3,4위를 차지했다. '향수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만큼 예상한 바였으나, 약국 화장품으로 유명한 스킨케어군 바로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향수 시장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여성들이 향수 콜렉팅, 그러니까 여러 향을 사재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자신의 향'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서, 자신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리는 향수를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한 두 가지를 꾸준히 사용한다고. 심지어 실내 곳곳에서 '방향' 용도로 사용할 정도라니, 그들의 '향부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된다.
더불어, 나는 여기에서 프랑스 여성들이 '얼마나 타인과 명확히 차별화되고 싶어 하는가'를 느꼈다. 왜냐하면 오감 중 가장 예민한 감각이 후각이니까. 메이크업은 대단한 손기술이 있지 않은 한, 타인과 차별화된 메이크업을 하기 힘들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가. "진정한 코덕은 '핑크빛 도는 코랄'과 '코랄빛 도는 핑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뭐, 그런 사람이 있을 수는 있지. 하지만 일반인의 경우 코랄과 살구, 오렌지를 완벽하게 구별해내기 힘들다. 피부에 얹으면 피부색과 어우러져 더 희미해지는 그 미묘한 채도와 명도의 차이를 어떻게 구별하겠나. 하지만 후각은 그에 비해 훨씬 예민하고, 날카롭고, 또렷하다. 그 때문에 정말 남들과 '차별화'된 아이덴티티를 원하는 여성의 경우,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컬러'보다는 '향'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향수 시장 비중이 중국과 일본의 향수 시장 비중보다 높다는 건 꽤 의미 있는 데이터다. 나중에 더 깊이 생각해 봐야지.
미국은 '할리우드' 스타일의 화장대를 그려보고 싶었는데, 할리우드 화장대를 봤어야 알지. 그냥 모던한 조명 거울 화장대로 낙점. 미국은 네 개 국 중 가장 화장품 유형별 시장 규모 격차가 심하지 않은 국가다. 1위인 기초 케어 비중이 14%밖에 되지 않을 정도. 비록 향수의 본고장은 아니지만, 미국도 여자 향수와 데오드란트가 꽤 상위권으로, 앞서 말한 '향을 통한 아이덴티티 구축'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미국의 경우, 다채로운 메이크업 제품이 많아서(파란색 섀도우부터 검은색 립스틱까지) 색조 메이크업 시장 규모가 꽤 클 줄 알았는데. 5위 안에 색조 메이크업 제품이 하나도 없어서 좀 놀랐다. 색조 대신 당당히 5위를 차지한, 비누. 조금 의외긴 하지만 그럴법하다.
내가 자주 애용하는 해외 직구 사이트에서, 뷰티에 관심이 좀 있다는 한국 쇼핑객들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품목 중 하나가 비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생각도 못했던 성분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고체 비누들이 존재한다. 비타민C가 함유된 비누도 있고, 모공 속 모낭충을 죽여주는 비누도 있으며, 세수와 샤워는 물론, 머리 감는 것부터 손빨래에까지 사용 가능한 물비누도 있다. 국내에서는 '피부는 클렌저로'라는 인식이 강해서 간혹 천연비누 열풍이 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누는 피부관리용이 아니고 손발을 씻거나 빨래를 하는 용도라는 인식이 강하다. 비누로 세수하면 바싹 마른 빨래마냥 건조해질 것 같고 그런 느낌. 아마 클렌저 시장이 사람들의 인식을 그렇게 바꾸며 성장했기 때문이겠지.
세상에 어떻게 일본스러울 수가! 화장대 말고, 그 위에 놓인 화장품들이. 기초화장품도, 페이스 메이크업 제품도, 바디용품도, 염색약도, 목욕용품도, 어쩌면 이렇게 일본스러울 수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대학 시절 해외 화장품으로 갈아타기 시작한 발단이 일본 화장품들이었는데, 저 제품군들 모두 한 번 씩 다 구매해 봤다. 물 건너오면서 비싸지는 게 조금 단점이긴 했지만 당시에는 그만한 제품을 찾기 힘들었으므로.
일본산 기초화장품과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은 특히 국내에서 각광받고 있는데, 본국 시장에서도 꽤 많이 소비되는 모양이다. 사실 한국이나 중국 여행객들이 일본 여행 가서 사재기하는 소비량도 적잖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정식 수입 시 가격이 몇 배로 뛰기 때문에, 여전히 직구 대행 카페 같은 곳에선 일본 거주자나 여행자가 드럭스토어에서 구매해, 택배비와 다소의 수고비를 얹어 받고 보내주는 경우가 많다.
물론 나도 그런 시스템을 몇 차례 이용해 봤는데, 대학교 때 가장 많이 밀직구? 했던 건 단연 염색약이다. 일본은 미용실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셀프 헤어 제품이 아주 성능 짱짱하고 저렴하게 판매되고 있다. 그리고 그중 버블 염색제가 내가 가장 많이 구매했던 제품이다. 샴푸 하듯이 거품 내서 헤어캡 쓰고 잠시만 방치하면 색깔이 쭉 빠져 있어서, 몇 달에 한 번 씩 구매해서 색을 바꿨던 것 같다. 무엇보다 진한 갈색, 밝은 갈색, 붉은 기 도는 갈색, 붉은색 정도만 판매되는 국내 셀프 염색제와는 달리, 일본 셀프 염색제는 탈색제를 비롯, 분홍색에, 보라색에, 초록색까지 판매되고 있다. 한중일 삼 개국 중 그나마 가장 서구화된 만큼, 개성을 살리는 도구로 다양한 헤어 컬러를 사용하는 듯하다. 프랑스나 미국이 '향'이라면 일본은 '색'이랄까.
얼마 전까지 나름대로 중국 진출을 희망하는? 뷰티회사에 다니면서, 중국시장에 대한 조사를 정말 많이 했다. 사람이 많은 만큼 기하급수적으로 크고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다음으로 많이 들었던 얘기가 "화장을 안 한다.", "못 한다.", "화장에 관심이 없다."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여자'로써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저 비약이 심하구나, 하고 말았을 뿐.
그런데 정말이었나 보다! 기초화장품 시장 규모 보고 육성으로 빵 터졌다.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다. 거의 화장품 시장의 반을 기초화장이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을 줄이야. 그리고 그다음으로 큰 시장이 샴푸이길래 잠시 갸웃했는데, 그다음으로 비누와 목욕용품까지 잇달아 나오니까 번쩍 드는 생각은 '이건 화장품이 화장품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라는 느낌. 치장하기 위해서, 꾸미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기본적인 수준의 청결을 지키기 위한 위생용품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적 느낌.
얼핏 건너 들은 이야기인데, 한국으로 여행 오는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은 피부가 너무 좋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중국 사람 중 대다수가 엄청난 건성이기 때문이라고. 그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서 이 데이터를 겹쳐보니 저 기초화장 시장도 미심쩍어지는 거다. 기초화장도, 얼굴이 당기니까, 트니까, 붉어지니까, 아픈 곳에 연고 바르 듯이 그렇게 소비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그래도 와중에 몇몇은 선크림을 챙겨 바른다! 아마 이들이 그나마 미용을 위해 화장품을 구매하는 수치에 근접하지 않을까.
여하튼 이 데이터를 보니 '중국시장은 정말 가능성이 엄청난 곳이구나!' 하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 뷰티에 관심이 이다지도 없는데 세계적 규모의 소비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 뷰티 쪽 관심도가 높아지는 마당에, 얼마나 더 커질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확실히 통계를 보면서 이것저것 상상하고, 주절대는 건 재미있지만 역시 난, 지구력이 모자란다. 사실 인포그래픽 제작할 땐 더 재밌었는데. 뒤늦게 한국 자료 찾다가 못 찾아서 두부 멘탈이 비지 멘탈 되는 바람에 다음 신이 언제 또 내릴지는 모르겠다. 휴, 사람 잡으려다 본인 잡고 시무룩해져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