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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eul Kim Aug 14. 2016

This is Africa

허락되지 않은 땅, 아르바민치

에티오피아에 오고서 처음 맞는 부활절!! 무려 4박 5일간의 '대연휴'가 주어졌다!


가고 싶은 곳을 여기저기 생각해놓았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이 깊어질 즈음, 2년 차 지웅 간사님의 아르바민치 여행 소식을 알게 됐다. 그것도 현지 직원과 함께하는 자동차 여행!!! 나와 동기 간사는 두 말없이 그 여행에 동참했다. 현지인과의 자동차 여행은 관광을 넘어서 아프리카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디스아바바 남쪽으로 500여 km 떨어져 있는 아르바민치는 40개의 물줄기라는 그 의미만큼이나 큰 호수와 밀림지역으로 유명하다. 육로 이동시 9시간 정도가 걸리는데 해가 저물면 운전이 위험해 중간지인 아와사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아르바민치는 그다음 날 이동해 투어를 한 후 셋째 날 돌아오는 것으로 여행 계획을 세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의 계획은 무의미했다. 그저 TIA(This is Africa!!)를 절실히 느꼈다고 말할 수밖에. 뭐 진짜 아프리카를 느끼고자 했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지만.     


경유지인 아와사에서의 하루는 정말이지 최고였다. 휴양지로 유명한 곳만큼이나 도시 자체도 깨끗했고 숙소도 가격 대비 훌륭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호수 위를 달리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5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야생하마와 조우하기도 했다. 호수를 바라보며 먹었던 생선구이의 맛도 일품이었다. 딱히 생선을 좋아하지 않는데 앉은자리에서 3마리나 먹었다. 그것도 평소엔 손도 안 댔던 대가리까지...

     


숙소에서는 동행한 레알름에게 고스톱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고스톱 치는 아프리칸을 상상할 수 있는가? 레알름은 심지어 재미를 느꼈고 1시간이 넘는 고스톱에 이어 맞고판까지 벌였으니.. 상황만으로 즐거움은 충분했다.



다음 날 새벽 5시, 챙겨간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서둘러 아르바민치로 향했다. 밤새 내린 비로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점점 맑아지는 날씨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에티오피아의 남부지역은 그야말로 대자연과 풍요로움의 땅이었다. 상공에서 본 에티오피아의 첫인상은 황무지였지만 남부는 달랐다. 열매가 자라지 않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모든 것들이 풍성했다. 풍성한 물, 풍성한 나무, 풍성한 과실까지! 다양함으로 채색된 에티오피아의 매력을 담뿍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방은 역시 지방인 걸까. 아디스아바바에도 일하는 아이들과 구걸하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지방은 더 심했다. 차창 밖의 아이들은 우리에게 “안드 버르(1버르)”를 외치며 돈을 요구했고, 닭이나 과일을 파는 아이들도 도로가에 넘쳐났다. 돈을 달라는 의미로 요상스러운 개다리 춤을 추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르바민치에 가까워질수록 자연의 아름다움은 빛을 발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멋진 풍경이 펼쳐졌고 너머로 보이는 호수 또한 명관이었다. 그마만큼 아르바민치에 대한 기대감도 커져갔다.


하지만 우리에게 아르바민치는 허락되지 않았던 걸까? 도착까지 1시간 정도 남았을 무렵 줄줄이 늘어선 차량행진을 볼 수 있었다.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한다. 밤새 내린 비로 길이 막혀 밤이나 돼야 지나갈 수 있단다. 자연의 힘 앞에 우리는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들어갈 수 없었던 모세 마냥 아르바민치를 눈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다.



만약 한국에서 길이 막혔다면 다른 길을 찾아서라도 갔을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다른 길은 없었다. 남부로 통하는 길은 ‘one way’라나. 길이 하나라는 건 황당한 일이었지만 그래서 돌아갈 곳이 아와사 밖에 없다는 건 절망이었다. 4시간 걸려 온 길을 다시 돌아갈 생각만으로도 엉덩이가 뻐근해졌다.


[돌아오는 길에 풍경 사진. 포즈잡은 아이들과 함께]


아쉬운 마음을 위로하려 소도에 들려 제일 좋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치 이틀은 묵은 듯 한 인제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모로 슬펐지만 레스토랑 내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서 멜레세 전 총리 티셔츠를 사며 마음을 달랬다. 파리가 득실대는 간이 카페에서 후식으로 2버르(한화 약 120원)짜리 전통 커피도 마셨다.



썩 좋지 않은 기분으로 아와사에 도착하자 시간은 5시를 향했다. 남은 시간이라도 즐기려 자전거를 타고 싶었지만 대여점을 찾지 못해 20분 정도 걷는데 만족해야 했다. 저녁식사 후 후식을 먹으러 아와사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호텔로 향했다. 음료를 비롯해 케이크를 4개 정도 시켰는데 점원이 5분마다 오더니 주문한 메뉴가 안 된다며 우리를 낙담시켰다. 되는 게 뭐냐고 묻자 과일 샐러드만 된단다. 기가 찼지만 어쩌겠는가. 그거라도 먹는 수밖에.


[다시 돌아온 아와사..]


그렇게 우리의 짧고 아쉬웠던 여행은 끝나버렸다. 차에서만 24시간 이상 보낸 채 말이다. 아르바민치는 커녕 아와사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이도 저도 아닌 여행으로.


집에 도착한 후 간사들끼리 모여 각자의 여행 썰을 풀어놓았다. 에티오피아 최대 기독교 성지인 랄리밸라에 다녀온 언니들은 제대로 힐링했다면서 온갖 자랑을 늘어놨다. 우리의 여행 이야기에 동정과 안타까움을 표하며.. 


그렇다. 어쩌면 이 여행은 고생만 하고 아무것도 누리지 못한 안타까운 여행 축에 낄 수도 있다. 실제로도 그렇기도 하고... 하지만 적어도 리얼 아프리카는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후회는 없다.


내게 있어 리얼 아프리카는 ‘계획을 포기하다’이다. 여느 여행이든 계획이 쓸모없어지는 순간이 있지만, 계획을 변경하는 정도지 포기는 아닐 것이다. 아르바민치로 가는 길에 물이 찰 줄 누가 알았던가. 뭘 해야 할지 몰라 서로 뭐하고 싶냐고 물어볼 줄 누가 알았겠느냔 말이다. 내 앞을 지나쳐간 수많은 어이없는 상황들과 예상을 뛰어넘는 당혹스러운 순간들 앞에서 우리의 계획은 정말 무의미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어디서도 경험하기 힘든 체험을 할 수 있었고 두고두고 회자할 추억거리를 남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여행은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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