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kg 찐 1인의 변
에티오피아에서 2년간 지내며 찐 살만 6kg.
살쪄서 돌아온 내 모습에 놀란 지인들 왈,
"아니 아프리카에 있었다면서 살이 쪄???"
그랬다. 내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심지어 나뿐만 아니라 같이 파견 온 사람들이 다 해냈다. 놀라운가?
가난과 기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를 상상한다면 살찌고 돌아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살았던 내게 그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당연하다면 모를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아프리카에서 살찔 수밖에 없던 변을 한 번 시원하게 내질러볼까 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잘 몰랐다. 에티오피아의 주식은 그 이름도 생소한 '인제라(Injera)'다. 한국으로 치면 '밥'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못난 생김새 덕에 걸레빵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계에서 건강식으로 뜨고 있는 떼프(Teff)라는 곡물이 그 재료이며, 떼프가루를 반죽하고 발효시켜 구워내면 인제라가 짠하고 만들어진다. 떼프 종류에 따라 인제라 색의 진함 정도가 달라지며, 동그란 모양으로 주로 은쟁반에 올려낸다. 시큼한 맛 때문에 호불호가 나뉘는데, 나는 주 3~4회는 챙겨 먹는 '극호' 부류였다.
인제라와 함께 먹는 반찬을 와트(Wot)라고 하며, 인제라로 와트를 싸 먹는다고 보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슈로와트(Shiro wot)인데, 가장 기본적인 와트로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많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좋아하는 와트로는 닭고기로 만들어낸 도로 와트(doro wot)가 있는데 그 맛이 닭찜과 비슷하다. 이 외에도 렌틸콩으로 만든 미스르 와트(Mesir wot), 감자와 양배추 등을 함께 볶아낸 Atakilt wot 등이 있다.
<좌: 슈로와트 / 우: 도로와트(출처:https://ethiopianfood.wordpress.com/2013/12/01/exploring-doro-wot)>
또한 염소/양/소고기 등을 볶아낸 뜹스(Tibs)와 그 고기를 전통 화로인 샤클라에 구워낸 샤클라 뜹스(Shekla Tibs), 육회처럼 생고기를 조각내거나 잘게 다져 먹는 끗포(Kitfo), 콜라드그린이라는 채소와 고기를 볶아낸 고멘스가(Gomen Sega) 등 다양한 음식을 곁들일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베야이네투(bayeynetu)인데, 다양한 채식 메뉴로 구성된 게 특징이다.
<좌: 베야이네투 / 우: 샤클라뜹스 (출처:http://www.kobelindustrysc.com/?page_id=2505)>
인제라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한 때 에티오피아 음식 만드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인제라는 배우기 어려워서 패스). 내가 배웠던 건 슈로와 뜹스, 그리고 한국의 볶음밥 마냥 인제라를 양념에 볶아낸 프르프르(Firfir)였다. 음식을 만들며 가장 놀랐던 점은 이 모든 메뉴에 기름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는 거다. 정말이지 기름을 들이붓는다. 허풍 살짝 보태서 에티오피아 음식 대부분이 기름 덩어리다. 가정 방문을 갈 적에 현지 직원이 선물로 기름을 추천하곤 했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이러니 살이 안 찔 수 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한국 음식다운 한국 음식을 먹기란 쉽지 않다. 그 이유로는 '재료'와 '음식 실력'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재료의 경우 한국과 음식 문화가 달라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제한적이다. 가령 돼지고기만 하더라도 에티에선 문화적인 이유로 먹지 않기 때문에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있을 적엔 밤비스라는 외국인 마켓에서 구입하곤 했는데, 그것도 정식으로 파는 게 아니라 고기 냉동창고 아저씨들에게 돈을 딱 찔러줘야 살 수 있는 정도였다. 게다가 된장이며 고추장, 고춧가루, 멸치, 미역, 다시마 등등 한식에 필수적인 재료도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야 했다.
음식 실력이야 뭐 너무 뻔하지 않은가. 뭐 요리사가 매번 번드르르한 한식을 해줄 리가 없으니.. 집에서 밥 한번 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이 돌아가며 밥을 하니, 게다가 재료까지 빈곤하니.. 할 수 있는 음식이야 뻔했다. 계란 프라이, 감잣국, 호박전, 감자볶음, 참치 볶음, 콘치즈 등등. 아무리 음식을 잘하는 사람이 있어도 재료가 제한적이니 실력 발휘를 마음껏 할 수도 없다.
그러니... 마음에는 늘 한국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쌓인다. 그리움이 쌓여 한 번은 시를 쓰기도 했다.
에티음식 맛있다기로소니 한국음식 비할소냐
그리운 마음 더해지니 애간장마저 녹아드네
순댓국 한 숟가락이면 모든 피로 날아갈 듯도 한데
주는 이 없으니 처량함만 깊어지네
- 순댓국을 그리는 시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수도 있다. 거기도 한국식당이 있지 않느냐고. 물론 에티오피아에도 한국식당이 있다. 하지만 종류가 제한적인데다 가격도 비싸다. 만족스럽게 먹으려면 1인당 만 오천 원~2만 원 정도가 든다. 한국이라도 비싼데, 에티오피아 물가에 비하면 그 체감 가격이 더욱 비싸다. 그 돈이면 현지 음식을 5~8번은 족히 먹을 수 있으니..
때문에 한국식당은 자주 가지도 않을뿐더러, 간다면 아주 작정을 하고 간다. 오늘은 내가 한국음식을 풍족히 아주아주 즐겁게 먹으리라. 고로 가면 배 터지게 먹는다. 3명이 가도 4~5인분은 시켜서 먹고, 회식이라도 있는 날엔 정말 목구멍까지 차도록 먹는다. 한 번은 공짜로 삼겹살을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토하도록 많이 먹어, 밤에 토를 한 적도 있다.(그 뒤로 삼겹살만 보면 속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에티오피아에선 늘 한식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고. 그래서 볼 때마다 어마어마하게 먹어댔다고. 그래서 살이 쪘다고..
지금까지 현지 음식과 한국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그 외에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논해보겠다. 한국에선 외식을 나가면 먹을 수 있는 종류가 참 많다. 한식만 해도 그 종류가 어마어마하고, 중식, 일식, 베트남식, 양식, 지중해식, 패스트푸드, 채식, 간식 등등등. 아마 수천 가지는 될 거다. 기분에 따라 입맛에 따라 초이스가 다양하다.
에티오피아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정말 제한적이다. 정말.. 외식할 맛이 안 난다. 특히 뭔가 색다른 먹고 싶을 땐 더더욱. 여튼 에티에서 먹을 수 있는 건 위에서 언급했던 현지식, 그리고 가장 자주 먹을 수 있는 피자와 햄버거(그 맛도 형태도 가게마다 거의 비슷하다), 좀 돈 있을 땐 스테이크나 한식, 중국집 정도다. 일식집도 있긴 하지만 에티오피아가 내륙국가인 탓에 생선류가 비싸고 맛도 별로 없다. 게다가 아디스아바바에 있던 유일한 일식집은 전문적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외식을 할 때 우리의 메뉴는 늘 비슷했다. 햄버거나 피자, 스테이크 등. 듣기만해도 기름지지 않은가. 게다가 이 모든 음식을 먹을 때면 항시 탄산음료를 곁들이곤 한다.
고로 우리의 식단은 늘 고칼로리였다.
어떤가. 지금까지 줄줄줄 적은 내 글이 좀 설득력이 있는가? 이젠 살찌는 이유가 좀 이해가 가는가?
뭐 아니더라도 어떤가. 이미 살찐 몸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