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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eul Kim Jun 26. 2016

600개의 가방과 6000권의 책

아프리카에서 발품과 노가다란

한국에서 대량 구매 루트는?

인터넷으로 원하는 품목을 검색한다→장바구니에 담는다→결제한다→배송을 받는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서는?

그야말로 발품과 노가다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뭐 하나 사는 게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 발전하지 않은 인터넷 환경

- 배달 서비스의 부재

- 수입 의존적인 산업구조로 인한 수량 부족

- 제한적인 영수증 발행 업체 등등등


딱딱한 말로 설명하려니 딱히 와 닿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고로 지금부터는 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와 닿을 수 있도록 친절하게 경험담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9월. 두 달 후 진행될 장학사업을 계획하며 책과 가방을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장학사업 수혜자는 약 600명. 학년은 1~8학년까지 다양했다.


이를 위해 내가 해야 할 과업은 다음과 같았다.

1. 수혜자 학년 파악

2. 학년 별 지급 서적 결정 * 구입

3. 가방 제작 * 구입

4. 포장


8월에 진행했던 장학사업 때 성적표를 미리 걷었지만, 성적표로 아이들의 학년을 확신할 순 없다.(심지어 성적표를 다 걷지도 못했다..) 한국이야 뭐 연마다 자동으로 학년이 오르지만, 에티오피아는 학년 말마다 성적에 따라 진급/유급이 결정된다. 게다가 다른 학교로 전학이라도 가면 학년이 바뀌기도 한다. 고로 성적표는 거들뿐, 실제로는 일일이 확인해 보는 게 가장 안전하다.


에티오피아의 성적표

한국이라면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이메일이나 문자로 설문 url을 뿌려서 쉽게 조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어린 친구들에게 이메일은 머나먼 존재인데다, 핸드폰을 가진 친구도 거의 없다. 결국 우리의 결론은 600명의 친구들에게 집으로 일일이 전화하는 것. 하지만 이 중에는 도로 공사로 전화가 터지지 않는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 전화가 없는 친구들도 있다!(이 경우 이웃집에 연락해야 한다..) 덕분에 학년 조사만으로도 일주일은 잡아먹었다..


여하튼 수혜자 학년 파악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고. 그럼 이제 해야 할 일은?

책과 가방을 사는 아주 심플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이게 그렇게나 고된 작업이 될 줄은....


먼저 책 구매는 대형서점을 찾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는 대형서점이 몇 군데 있다. 국영기업인 Mega와 주로 외국 서적을 판매하는 shama, 무슬림이 운영하는 Littmann과 Universal book store정도다. 때문에 우리 팀은 일단 서점 투어부터 시작했다. 학년별로 지급할 수 있는 책 후보를 추렸는데, 참고서와 이야기책 정도로 나누어 구입을 계획했다. 학년별로 1인당 약 500 Birr(한화 약 3만 원)을 계획했기 때문에 6~10권 정도를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함정은 바로 '수량'. 필요한 수량을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특히나 수입책일 경우엔 배송에 한두 달이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없는 책은 다른 책으로 대체해가며 수량을 맞춰야 했는데, 중간엔 살만한 책이 없어 난감하기도 했었다. 어쨌든 이것도 다행히 패스.


책의 경우 주문 후 3~5일 내에 출고 준비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다시 고비가 등장한다. 한국이라면 책을 배달로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에선? 직접 수령하러 가야 한다. 게다가 100% 신뢰할 수 없으므로.. 책 수량을 직접 재확인해야 한다. 수량 확인이 쉽도록 10권씩 묶어뒀다면 편했으련만, 그냥 제멋대로 쌓아놓는다. 때문에 책 한번 가지러 가면 1~2시간은 책 수량 확인하느라 시간을 보내야한다.

         

그런데 계산은 더 화가 난ㄷ..... 바코드 기계가 없는 서점이라도 되면, 일일이 책의 번호를 기입해서 수량과 가격을 넣고 하며 영수증을 만들어야 하는데 종류가 수십가지이다 보니 기입하는데만도 시간이 꽤걸린다. 옆에서 내가 계속 도움을 줬는데도 계산에 한 시간을 쏟아부은 적도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책 옮기기.... 섭외해간 트럭이나 미니버스에 책을 넣는데... 책방이 2층에라도 있는 경우엔 죽을 맛이다 정말. 여러 명이 같이 해도 책이 원체 무겁기 때문에 아.. 상상만 해도 싫다.


<미니버스가 차고 넘치도록 책 담는 중. 이 짓을 몇 번이나 되풀이한다..>


그럼 이번엔 가방으로 넘어가겠다. 기성 가방을 구입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미쳤었지... 제작을 결정했다. 어린이 결연팀에서도 가방 제작을 한다기에 얹혀서 하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덕에 왔다 갔다 길에 버린 교통비만 해도 어마어마했다.(물론 기성가방을 구입하는 것도 엄청난 발품을 필요로 한다. 정식으로 영수증 주는 업체가 극히 드문데다 수량을 확보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일단 가방 공장을 섭외하는 것은 다른 팀에서 해줘서 수월했다. 하지만 문제는 가방이 제작이라는 것. 그냥 공장의 기존 디자인 가방에 기관 로고만 우측 하단에 박아주면 되는 건데.. 그 로고가 지 멋대로 여기저기 붙어있고, 자크를 거꾸로 달아놓기도 하고, 가방 끈에 쿠션이 안 들어있기도 하고, 포인트 컬러가 다르기도 하고... 지 맘대로 만들어 놨더라. 이 때문에 가방을 가지러 공장에 갈 때마다 윽박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300개 준비해놨다고 해서 가보면 150개는 잘 못 만들어진 가방. 이건 못 가져간다 하며 다시 만들라고 옥신각신도 수차례. 정전이라도 되는 날엔 공장에서 미싱기를 돌리지 못해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가방 확인 중. 디자인 심히 심플하지 않은가!>


결국 공장은 계약된 기간 내에 납품을 완료하지 못했고, 여러모로 빡친 나는 페널티로 일부 금액을 주지 않았다. 그러자 공장에서 우릴 고소할 거라는 둥 신문에 기사를 낼 거라는 둥 협박하기도 했으니. 거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가방 싣고 오는 길. 미니버스 가득>


여하튼 약 두 달간의 고군분투 덕에 600개의 가방과 6000권의 책이 내 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고통이 시작됐다. 다른 팀원들에게는 따로 시킬 일이 있어서 포장 작업을 내가 도맡아서 했는데, 와 이게 정말 사람 잡는 일이었다. 책들을 나래비 세워서 가방 안에 딱딱 담고 리본을 묶어 학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일 뿐이었는데도 포장에만 한 3~4일은 걸렸다. 그나마 우리 집 클리너였던 짜이와 한인 간사들이 도와줬기에 망정이지 까딱했으면 앓아누울 뻔 봤다.



그렇다.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일한다는 것은 막노동과 발품을 필요로 한다. 한국에선 몇 시간이면 할 일도 이곳에선 며칠 혹은 몇 주, 몇 달까지 걸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작은 일이라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은 더더욱 크다.


이 일을 완수했을 때의 내 기쁨도 그만큼 컸다. 무엇보다 책과 가방을 보고 행복해하는 수혜자들을 볼 때의 내 마음이란, 그 수개월의 힘듦이 다 보상받는 듯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 다시 이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 가득 다짐했건만-

결국 난 이 짓을 한 번 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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