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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eul Kim Feb 19. 2019

겸손.겸손.겸손.

겸손하기 싫어질 때를 대비해 '내가' 읽으려고 쓴 글

DTS(제자훈련학교) 7주 차에 마지막 글을 쓰고는 계속 쓰자 쓰자 하다 못썼는데... 결국 지난 12월 말에 DTS가 끝났다. 이젠 일종의 회고록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억하기 위해, 나누기 위해 적는다.



누군가 내게 DTS에서 뭘 배웠는지 읊어보라고 한다면, 

물론 수없이 많은 걸 배웠지만서도-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이 무엇인지

#겸.손.

#하나님 뜻에 순종해야 할 이유

#예수님 그분의 가치, 그분의 사랑


오늘은 이 중 내가 배우고 깨달은 이 '겸손'이란 놈에 대해 좀 얘기해보려고 한다. 놈이라고 쓰면서도 살짝 손 떨리긴 하지만... 내게는 애증의 겸손이었으므로. 


시간을 거슬러, 하나님께서 내게 겸손을 가르치기 시작하신 시점을 돌이켜보면- DTS 5주 차부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과제 중 하나인 독후감을 작성하기 위해 'Humility(겸손)'이라는 책을 읽어야 했다. 수많은 책 가운데 가장 얇다는 이유로 고른 책이었는데.. 그 겸손이 DTS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내 뼈를 쳐댈 줄은 생각도 못했다.

3주간의 캠핑 기간 중 읽었던 책 'HUMILITY'

사실 한국에선 겸손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무조건 남보다 잘하고 나를 증명할 생각만 했지, 겸손에 대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겸손이 좋다는 건 지식적으로 알겠으나, 겸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그럴듯한 조금은 잘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겸손을 완전 잘못 알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겸손을 자신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말한다. 겸손은 잘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거라고. 잘난 사람이 자신을 낮추는 게 겸손이지, 못난 사람이 자신을 낮추는 건 당연한 거라며-. 

마치 이런 짤처럼...?




하지만 DTS 기간 동안 겸손에 대한 새로운, 성격적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알게 된 겸손은 단순히 낮추는 차원이 아니었다. 겸손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서 비롯된 태도였다. 내 안에는 자랑할 것이 선한 것이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과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완전하다는 것에 대한 인정. 내 안에 자랑할 것이 없기에 더 이상 스스로 잘났다 뽐낼 수도, 남이 부족하다 손가락질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 그 자각이 있을 때, 시편 8편의 고백은 내 것이 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이렇게까지 돌보아 주십니까?"(시 8:4)


겸손에 대해 다양한 정의가 가능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의는 이거다. "Humility is being willing to be known for who you are. Pride is trying to be known for something that you are not"(겸손은 자신의 모습 그대로 기꺼이 알려질 의지가 있는 것, 교만은 자신이 아닌 것으로 알려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나 자신을 그대로 알리고 싶지 않던 사람이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일을 하며, 사회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어떻게 나를 매력 있게 포장할지를 늘 고민했었다. 그래서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뭘 잘하는지를 늘 고민하며, 뭘 좀 잘해볼까 하고 이것저것 기웃댔던 것 같다. 더불어, 나는 내가 잘 못하는 걸 인정하며 잘하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게 어려웠고, 그래서 힘들더라도 늘 스스로 하려고 애써왔다.


그랬던 내가 호주에 오니 사실 부탁할 게 천지였다. 먼저는 언어적인 한계가 분명했으니-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때면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는데.... 그런데 이 부분부터 내겐 너무도 큰 고비였다. 잘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 말이 너무 하기 싫어서 못 알아 들어도 대충 넘기고 아는 척하거나, 혹은 이도 저도 싫어 대화에서 아예 입을 닫는 경우도 허다했다.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누군가 농담을 해서 모두 웃는데 나만 못 알아들어서 그냥 웃긴 척할까 고민했던 순간들. 내게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게 나의 부족함을 보이는 것만 같았다.


거기다 뭘 잘한다고 말하고 싶어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 너무 많았던지라 아는 척조차 할 수 없었다. 가령 캠핑을 가서 텐트를 설치한다던지, 사륜차를 운전한다던지, 처음 보는 음식을 조리해야 한다든지, 아이들을 위한 성경학교를 계획한다든지, 자동차를 고친다든지, 영어로 간증이나 설교를 한다든지, 마이닝 산업 물건이 가득한 창고를 정리한다든지... (저런 걸 왜 하나 싶은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속했던 4WD DTS에서 전부 진행됐던 일이다.) 그래서 정말이지 아는 척은 개뿔- 물어보기 바빴고, 따라가기 바빴고 그럼에도 계속 실수투성이었다.



그러다 보니 마음이 참 너덜너덜해졌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에서 시작된 생각은 '나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라는 자괴감을 넘어, '물어보기도, 도움받기 싫어'라는 어두움의 골짜기로 나를 이끌었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말 그대로 Pity party였다. 


그때 하나님께선 내게 끊임없이 말씀하셨다.

"다슬아, 넌 지금 완벽해서 이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배우고 훈련받기 위해 이 곳에 있는 거야."

"사람들에게 도움받는 법을 배워. 그리고 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법을 배워."

"네 손에 뭐가 있는지에 주목하지 마. 네 삶이 전능한 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네가 약할 때, 내가 너의 강함이 될 거야"


내가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리고 빈 두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분의 가장 좋은 것들로 나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랫동안 눈물과 고민과 한숨의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나의 부족을 인정하는 순간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었다. 하지만 막상 그걸 인정하고 나니, 그곳에는 평안이 있었다. 애쓰는 것을 멈출 수 있었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의 단 맛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실 겸손함을 계속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틈만 나면 "나도 괜찮은 인간이라고!!" 말하고 싶은 인간의 본성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나의 약함을 인정하는 건 늘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는 건, 겸손은 겸손에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 'humility' 독후감




호주 킴벌리 아웃리치 기간 중 DTS 리더 케이티가 나를 위해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 'Take every opportunity(모든 기회를 취하라)'라는 말을 받았다고 얘기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무슨 일이든 기회가 오면 받아들이고 열심히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한 달 후, 네팔로 아웃리치 지역을 이동했다. 네팔은 2년간 지냈던 에티오피아와 닮은 부분이 참 많았는데, 그게 내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에티에서 누렸던 자유에 대한 갈증을 일으켰다. 일종의 반항심이었다. 듣기 싫고 어린애 취급받기 싫고, 누군가 나를 안 건드렸으면 좋겠고, 나도 다 알아 좀 내버려둬!!!라고 얘기하고 싶어 지는 그런 답 없는 상태.


그 와중에 하나님과 quiet time을 보내며, 하나님께서 humility를 통해 또다시 내 뼈를 때려 주셨다. 잊고 있던 Humility 독후감을 별생각 없이 읽게 됐는데, 독후감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Take every opportunity to humble yourself before God, He will exalt you in due time"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모든 기회를 취하라.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너를 높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케이티를 통해 말씀하셨던 take every opportunity는 단순히 모든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할 모든 기회를 의미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됐다. 감사했던 부분은 이 전에는 하나님께서 내게 '겸손'에 대한 부분만 말씀하셨는데, 이날을 계기로 하나님께서는 겸손이 끝이 아님을,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그분의 때에 나를 높이신다는 사실을 새롭게 조명해주셨다. 물론 내 안의 반항도 잠잠해졌고.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립보서‬ ‭2:3-11)


그렇다. 겸손은 겸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그분의 때에 높이신다. 예수님께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리고 나는 계속 배워가고 있다. 겸손의 가치를-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는 것을, 나 스스로 높아지려 애쓰지 않는 것을, 내 힘을 빼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법을 말이다. 


사실 겸손에 대해 할 말이 끝도 없지만, 그냥 이 걸로 정리하고 싶다.

I lean not on my own understanding(저는 제 자신의 이해력에 의지하지 않겠어요)
My life is in the hands of the Maker of heaven(제 삶은 천국을 만드신 분의 손안에 있어요)
I give it all to You God(제 삶 전부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trusting that you'll make something beautiful out of me(제게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실 하나님을 신뢰해요)
There's nothing I hold on to(제가 쥐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I will climb this mountain with my hands wide open(저는 두 손을 활짝 벌리고 이 산을 오를 거예요)
- 'Nothing I Hold On To' 찬양 가사


이런 찬양을 하고 있는 나는, 그리고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여전히 겸손하지 않다. 나의 작음과 그분의 크심에 주목하기보다,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큰 나약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배우고 선택하고 싶다. 그분의 겸손을 조금이라도 닮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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