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중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ywam 간사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결정이었다.
작년 4월 ywam퍼스에 미션빌더를 하러 왔을 무렵, 멀찍이 그들의 삶을 바라보며 으레 했던 생각이 "와, 저렇게는 못살겠다"였으니, 그 삶을 살기로 결정한다는 건, 좀 비약하자면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보면,
자비량 선교- ywam 간사는 하나님께 헌신해 full time으로 섬기지만 어떤 급여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식대, 거주비를 비롯해 베이스에 ministry contribution fee까지 내면서 일을 하는 자비량 선교다. 고로 대부분의 ywamer들은 후원을 받아서 생활한다. 하지만 내게 후원을 받아야 한다는 건, 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두 번이야 괜찮지만 그런 삶을 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삼고 싶진 않았다.
나이- ywam은 youth with a mission이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청년들이 전 세계로 나가 복음을 전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고로 어린 친구들이 많다. 많은 수의 인원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이다. 그에 비해 나는 30대를 지나고 있다. 젊어서 패기야 뭐 그렇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잡고 있고, 어쩌면 커리어에 있어 중요한 시기인데 2년이란 시간을 헌신해야 한다는 건 부담스러웠다.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더 말할 것도 없다. 20대 초반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결...혼.. 가능한가요?? 그리고 모든 NGO와 크리스천 기관들이 그렇듯 여초.^^
내가 선교사?? 신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그런다고 어릴 때부터 선교에 꿈을 꿨던 것도 아니고. 어쩌면 내게 선교는 머나먼 이야기와 같았다. 보내는 선교사가 더 가깝게 느껴졌달까. 그런데 내가 풀타임 선교사가 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듯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도 걱정됐다.
뭐 이런저런 자잘한 걱정들까지 해서 내게 ywam은 배우기 좋은 곳이었지, 장기간 함께하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그래서 DTS를 하는 중에도 주변 사람들이 "너 간사 아니었어?"라든지 "간사할 생각 없어?" 등등의 질문을 해올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하나님 들을까 겁납니다)"였다. 물론 강의기간 중에 ywam에 더 남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긴 했지만, 절대 간사로는 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온갖 걱정과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간사로 섬기는 걸 결정했다. 룰루랄라 내린 결정은 물론 아니었고, "아니요! 아닐 겁니다! 무슨 말씀이세요!!!"라며 혼자 난리 치다가 하나님께 항복해 내린 결정이었다.
때는 바야흐로 네팔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기 2주 전.
현지 교회에서 제자훈련 미니 세미나를 진행하는데, 갑자기 마음속에 내일 Quiet Time 중 뭔가 하나님께서 다음 걸음에 대해 말씀해주실 것 같다는 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기억도 나지 않는 꿈을 꿨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는 문장이 내 머릿속에 각인됐다. 이상했다. 나는 하나님 믿는데 우상? 뭔 소리지.. 하며 찝찝한 마음을 뒤로했다. 그 날 아침, QT를 하며 하나님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지내던 곳이 산 중턱이라 밖에 앉아 산을 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잔잔한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왔다. “다슬아, 내가 만든 저 산 참 아름답지 않니?”라고. “네 아름답죠”라고 대답하자, “저 하늘은?”이라고 다시 물으셨다. “네 아름답죠~”다시 대답하자, 이번엔 “내가 만든 이 사람들은?”이라고 물으시길래, “네 너무 아름다워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다슬아, 내가 만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 일해보지 않을래?”라는 질문이 들려왔다.
그 즉시 나는 YWAM 간사인가요?!라는 불안감에, 승낙의 조건들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제가 돈을 후원받지 않고 스스로 벌 수 있도록 방법을 주신다면, 남편도 주신다면, 부모님도 기쁘게 허락하신다면, 그 모든 것들을 먼저 해결해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제가 진짜 하길 원하신다고 알고 하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잘 모르겠네요..라고.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내 안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내 말이 너에게 충분하지 않니?라고 물으셨다.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 보지 않을래?라는 격려와 함께.
사실, 나는 늘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었다. 그분이 나의 궁극적인 가치임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돌이켜보면 지난 10년은 나를 위해 산 세월이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말로, 하나님을 이용했던 삶. 그게 나였다. 급작스런 현실자각에 속상함이 물밀듯 밀려왔지만, 그럼에도 간사로 헌신하겠다고 속 시원하게 대답해드리진 못했다. 나는 그 삶이 여전히 두려웠다.
그렇게 뜨뜻 미지근하게 하나님과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우리 팀은 사역을 위해 다른 마을로 약 3시간을 하이킹을 해 이동했다. 다음날 교회 모임 시간에 말씀을 전하기로 예정돼 있어서 가는 길에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나 고민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문득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하나님을 힘써 알자”라는 말씀이 떠올랐다. 뭔가 이 말씀을 전해야 할 것 같아, 어떤 책의 말씀인지 찾아보니 호세아서였다.
처음 이 말씀이 생각났을 때는 뭔가 믿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말씀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호세아를 계속 읽고 공부하며 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며 하나님을 저버리자, 하나님께서 예언자 호세아에게 창녀와 결혼해서 지금 이스라엘이 하는 우상숭배가 창녀 짓임을 알게 하고, 그럼에도 끝없는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분의 마음을 전하게 하신 예언서였다. 여기서 호세아는 우상 숭배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환난을 경고하는데, 이에 대한 그들의 반응이 "여호와께 돌아가자, 그분을 힘써 알자"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말에 너희 사랑이 아침이슬과 같다며 외려 슬퍼하시고 분노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죄에서 돌이키는 진정한 회개 없이, 여전히 우상숭배라는 죄 가운데 살면서 말로만 하나님께 돌아가겠다는 이중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씀을 준비하며, 이건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은혜도 경험했지만, 여전히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그 분만을 의지하기보다 내 마음에 안정감을 줄 다른 무언가-우상을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돈이 있어야 제가 좀 마음이 든든하겠어요, 남편도 좀 있어야겠지요? 명예도 주세요! 그럴듯한 일도 했으면 좋겠네요라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는. 그러면서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스럽게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만 나의 도움되십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이중적인 삶을 하나님께서 지적하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문에 말씀을 전하며 우리 삶에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우상을 제거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전날 아침 꿈에서 깨며 내 안에 새겨진 “모든 우상을 제거하라”는 말이 다시 다가왔다. 그 모든 것들이 묘하게 연결되면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불신과 우상을 제거하라고, 그리고 하나님만을 온전히 신뢰하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회개가 절로 나왔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 나였군요...라고.
말씀을 전한 이후 하나님과의 시간을 가졌는데, 시편 121편 말씀이 기억났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오나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산에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저렇게 큰 산도, 하늘도, 바다도 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그런 분이 나를 도우시는데 왜 나는 그런 분을 못 믿는가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의 믿음 없음도 다시금 보게 됐고. 그리고 이틀 후 결국 항복했다. 30년을 내 마음대로 살았으니, 그 십 분의 일인 3년은 하나님께 드려보겠다고. 아니, 내 인생 자체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신뢰한다고...
그렇다. 이게 내가 ywam간사가 되기까지의 스토리다. 물론 이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도 내게 몇 가지 일들로 그 결정이 맞다는 확인을 해주셨지만, 그것까지 나누기엔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차치하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는 여전히 물음표다. 얼마나 ywam에 있게 될지, 그 이후엔 또 뭐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하지만 이젠 두렵지 않다. 내 삶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기에, 나아가 하나님의 손에 달린 삶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다는 게 믿어지기 시작했으니까. 이젠 내 뜻을 고집하기보다, 그분의 뜻에 내 삶을 맡겨보고 싶어 졌으니까.
나는 스스로를 선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모두가 각자 처한 곳에서 선교사의 역할을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선교사 명칭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여전히 선교에 큰 뜻을 품고 있거나, 어떤 큰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나를 부르신 하나님께서, 나를 성장시키시고 그분의 뜻으로 이끌어가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그분이 어디로 부르시든 나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내 대답은 YES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