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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seul Kim Jun 05. 2016

쌈닭이라 불러주오

에티오피아, 치열했던 싸움의 기록

에티오피아에서의 2년은 싸움의 기록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싸움으로 시작해 싸움으로 끝난 시간이었다. 싸우려고 에티오피아까지 간 건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론 그랬다. 현지 직원, 한인 간사를 비롯해 거래처, 택시기사 심지어 수혜자들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만큼 수많은 사람들과 미간에 주름 펴질 날 없이 싸웠다.(별명이 쌈닭이었던 적도 있다..)


아니 NGO로 좋은 일하러 가서 무슨 그렇게 싸울 일이 있겠느냐 싶겠지만, 삶은 늘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 좋은 일 하러 왔어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고, 괜한 시비에 걸리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예민해져 날을 세우기도 한다. 특히 일적으로 부딪힐 땐 더더욱.


오늘은 그 싸움의 기록 중 팔 할을 차지하는 레알름(Lealem)이라는 친구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레알름은 1년 반 동안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다. 나보다 1년 먼저 일을 시작했고, 나이로는 한 살이 많다. 그 친구가 Junior Coordinator를 담당하던 2013년의 3월, 25살의 철 모르던 나는 한인이라는 이유로 부서의 PM이자 레알름의 상사 역할을 하게 됐다.


처음 두 달은 모든 게 좋았다. 레알름은 상냥했고, 든든했으며 심지어 평판까지 좋았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고, 나의 딸리는 영어도 잘 알아듣고 반응해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레알름을 비롯해 social worker 2명과 좋은 팀워크를 이뤄 사업을 아름답게 이뤄가고자 하는 희망에 부풀어있었다. 레알름을 내게 붙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렇게 사이 좋았던 때가 있었다
함께 일했던 직원들


하지만 그 날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2013년 5월의 어느 날, 행정부서에 레터가 하나 전달됐다. 현지 직원 대다수의 서명이 포함돼있던 레터에는 임금 인상 및 한인 간사의 정확한 역할/직무 공유를 비롯해 각종 요구사항이 적혀있었다. 에티오피아 사람이 게으르고 일을 못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충고와 함께.


그랬다. 그 당시 우리 지부에는 한인과 현지 직원 간의 분열과 갈등이 날로 심화되고 있었다. 서신뢰하고 합력하는 관계라기보다, 의심하고 감시하는 관계였다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한 번은 행정부서에 한인이 전부 외근이라, 내가 굳이 올라가 현지인을 감시했던 적도 있으니까(정말이지 왜 그래야 하나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 갈등은 '현지 직원 레터 사건'으로 폭발하고 말았다.


한인의 입장에서 현지 직원은 못 미덥고 책임감이 없으며, 일을 못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개인 일정으로 출근하지 못한다며 당일에 문자 한 통 보내 놓기도 하고, 승인 없이 마음대로 조퇴를 하기도 하고, 사무실을 같이 청소하자고 했더니 '그건 내 의무가 아니야'라고 성질을 내기도 하고, 업무를 제시간에 끝내지 않고 나몰라라 퇴근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으니.. 이건 우리 부서의 작은 사례일 뿐, 타 부서에는 그보다 심하고 어이없는 일들이 수시로 벌어지곤 했다. 어처구니없는 일들에 빡친 한인이 현지 직원을 욕하는 동안, 아마 현지 직원도 한인들을 욕했을 것이다. 원래 관계란 건 쌍방 아닌가.

감시하기 용이한 자리배치. 내자리는 좌측 맨 뒷자리였다.


어쨌든 그 갈등의 폭발은 나와 레알름의 관계에도 여파를 미쳤다. 우리는 늘 잠재적인 갈등 아래 놓여있었다. 레알름은 사업에 대한 나의 제안 혹은 의견에 더 이상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으며 매번 태클을 걸었다.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임에도 "네가 현지 사정을 잘 몰라서 그렇지, 그건 불가능해"라고 대답해댔다. 그는 더 이상 업무에 의욕을 내지 않았고 현지 직원들이 회사에 맞서도록 선동했으며(심지어 신입 직원에게도!), 내가 그의 업무 결과를 지적할 때면 "It's so silly thing(그건 중요하지 않은 일이야)"라며 내 의견을 무시해댔다.


특히 점심식사 문제는 갈등의 도화선이 되곤 했다. 당시 현지 직원들은 매월 일정 금액을 모아, 클리너에게 요리를 시켜 점심식사를 해결했었다. 그 때문에 현지 직원들은 외부에서 식사를 하는 문제에 예민했다(우리 부서가 특히...). 추가 비용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외근을 해야 할 경우 점심식사를 위해 중간에 지부로 돌아오는 건 업무에 상당한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했다. 특히나 멀리 나갔을 땐 더더욱. 그렇다고 매번 내가 밥을 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그로 인해 나는 수차례 레알름과 논쟁을 하고 언성을 높여야 했다. 나는 두 달에 딱 5일 정도를 밖에서 못 사 먹냐고 따졌고, 레알름은 한 두 번 그러다 보면 그게 의무가 될 거라며 결사반대했다.


물론 이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나는 정말이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와 갈등을 겪어야 했다. 감정을 풀어보려고 수차례 일대일 미팅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을 이해해달라며 떼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론 없는 얘기만 빙빙 돌뿐 답답함은 여전했다. 가끔씩 휴전 상태에 돌입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오래가진 않았다. 한 때 같이 여행까지 갈 정도로 친했던 레알름은 그렇게 나의 원수가 되어갔다.

한인 2명+레알름과 여행 갔을 당시


그래서였을까, 부정적인데다 현지 직원들을 선동하는 그의 행태에 지부장님마저 '내가 쟤는 자른다'고 선포했던 그 날, 나는 슬며시 웃어버렸다. 하지만 레알름 잘리지 않았고(노동법이 강력한 에티오피아에서 직원 자르는 건 정말 어렵고 비싸다), 1년 반 만에 대학원을 간다며 직접 사표를 썼다. 그가 사임 의사를 밝혔던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이 지옥 같은 갈등을 드디어 쫑내게 됐으니 말이다. 그의 마지막 날, 우리는 서로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레알름은 내게 실패한 관계로 남겨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야 내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실패한 관계가 후회로 다가왔다. 나는 그를 품지 못했고, 이해하지 못했으며, 먼저 손 내밀지도 못했다. 그랬기에 그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아 버렸다. 레알름을 대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왜 나를 존중해주지 않을까? 왜 늘 부정적으로 생각할까? 왜 매번 일을 제시간에 안 끝내는 걸까? 때로는 회사를 위해 좀 희생할 수는 없는 걸까?'


하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하던 그 순간 레알름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왜 나를 인정하지 않을까?(나는 칭찬과 인정에 인색했다), 왜 현실성 없는 걸 자꾸 시키는 걸까?(그러니 안된다는 말을 그렇게 많이 한건 지도), 퇴근시간인데 왜 더 있으라고 하는 걸까?(한국처럼 자연스럽게 야근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왜 내게 희생을 강요할까?(레알름은 봉사자가 아닌데, 나는 많은 걸 기대했다) 그렇게 레알름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에게 있어 나의 모습이 어땠을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게다가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은, 게다가 현지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한인이라는 이유로 상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게 얼마나 부당하게 느껴졌을까...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내가 외근할 땐 밖에서 식사를 하자고 설득하던 그때, 레알름은 약간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었다. "물론 내가 월급이 많다면 그렇게 하고 싶지만, 나는 그렇게 여유가 있지 않아" 그때는 그가 엄살을 피운다고 치부했다. 그리고 그로써는 그게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말이었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 생활을 통해 직원들의 월급이 어느 정도인지 체감하고 나서야, 그가 느꼈을 부담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그의 입장이 되지 않았기에, 내 중심으로 생각했기에 오해하고 마음 상하며 갈등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그의 행동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물론 그 방식이 옳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게다가 나는 그의 입장을 헤아릴 만큼 마음이 넓지 않았고. 만약 내가 조금만 더 레알름의 입장에 생각했다면, 그를 매번 코너로 몰기보다 그를 이해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했다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에티오피아에서의 싸움의 기록은 쪽팔리고 실패적인 과거사이자, 분명한 흑역사다. 내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알 수 있었던 계기이자, 내 밑바닥을 끊임없이 마주하기도 했던 시간이다. 특히나 에티오피아에서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던, 갈등을 겪으리라고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였기에 그 아픔은 더욱 컸다.


하지만 숱한 갈등을 통해 모난 내 모습을 알게 됐고, 모난 부분이 조금 깎이기도 했으며(그랬길 희망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참 많은 비용을 치른 배움이랄까...


하지만 만약 과거로 돌아가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다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 물어본다면 '모르겠다'고 답할 것 같다. 그렇게 깨달음을 얻었는데 왜 모르겠냐고 묻는다면 대답하고 싶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나는 다혈질이라고.......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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