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컨퍼런스와 영화제 섹션 소개
매해 2월의 베를린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추웠던 겨울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따뜻한 봄을 맞이할 기대감과 더불어 전 세계의 다양한 영화가 한자리에 모이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진행되기 때문이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Venice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칸 국제 영화제(Cannes International Film Festival)와 더불어 세계 3대 영화제로 손꼽히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올해로 68회를 째를 맞이했다. 1968년 기존의 사회 가치와 규범에 저항하여 프랑스, 미국, 독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68운동의 50주년과 우연히도 맞물린 제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올해도 여타 영화제보다 정치성이 짙고, 진보적인 흐름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에 자리한 영화제의 메인 극장 베를린날레 팔라스트(Berlinale Palast)를 중심으로 2월 15일부터 25일까지 10일 동안의 영화제 취재 현장을 전한다.
영화제의 공식 일정에 앞서 약 일주일 전인 2월 6일 전 세계의 기자를 대상으로 프레스 컨퍼런스가 열렸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디렉터인 디터 코슬릭(Dieter Kosslick)과 프로그래머 토마스 하일러(Thomas Hailer)가 단상에 올라 올해 영화제의 간략한 개요와 6명의 심사위원을 소개했다. 또한 이 자리에는 각 섹션별 심사위원이 프레스 컨퍼런스에 함께 참석하여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에 응했다. 본격적으로 질의응답을 갖기 이전에 하비 와인스틴의 성범죄 파문을 시작으로 영화계를 넘어서 전 사회적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MeToo 운동에 관해서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지지의 의사와 어떠한 형태의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고, 저항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이와 관련한 좌담회를 영화제 기간 동안 가질 계획이라고 언급했다.
이어서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올해도 여김없이 정치적인 성향을 띄거나 특정 주제가 있는지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매 번 정치적, 사회적 주제를 영화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내는 작품에게 황금곰상의 기쁨이 주로 돌아갔던 역사와 더불어 올 해가 68운동의 50주년이었기에 나왔던 질문이었다. 하지만 영화제 디렉터인 디터 코슬릭은 이와 같은 질문에 영화제는 정치적이지 않다고 밝혔지만, 이는 한 발짝 물러서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선별한 작업을 보고 판단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것과도 같았다. 10일 동안 펼쳐질 영화제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올 해는 총 24편의 작품이 경쟁 프로그램에 초대되었고, 그 중에서 19편의 영화가 경쟁 심사에 이름을 올렸다. 24편 중 무려 22편이 월드프리미어(Worldpremier; WP)로서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통해서 최초로 공개된 작업이었다. 가장 먼저 기대와 관심을 한 몸에 받은 작업은 미국의 영화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의 애니메이션 영화 <개들의 섬(Isle of Dogs)>이었다. 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파격적인 행보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더불어 작년 황금곰상을 수상했던 헝가리 영화 <온 바디 앤 소울(On Body and Soul)>의 흐름을 이어서 루마니아, 폴란드, 불가리아, 세르비아 등의 동구권 영화도 다수 이름을 올렸다.
또한, 파라과이, 브라질, 멕시코와 같은 남미권 영화도 눈에 많이 띄었다. 아시아권에서는 아쉽게도 라브 디아즈(Lav Diaz) 감독의 <Ang Panahon ng Halimaw)(Season of Devil)>만이 경쟁 심사에 이름을 올렸다. 19편의 경쟁작 모두 다양한 형식과 내용을 다루고 있는만큼, 프레스 현장의 호불호도 많이 갈리며 어느 작품이 황금곰상을 차지할지 예상하기 어려웠다. 매 번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수상 역사를 고려하자면, 이번에도 대중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경쟁부분과 더불어서 황금곰상, 은곰상이 주어지는 섹션은 베를린날레 단편(Berlinale Shorts)이다. 올 해 단편 부분의 심사위원은 포르투칼 출신의 디오고 코스타 아마란테(Diogo Costa Amarante), 남아프리카 출신의 요티 미스트리(Jyoti Mistry) 그리고 미국 출신의 마크 토스카노(Mark Toscano) 세 명이 맡았다. 18개국의 22편의 영화가 10일동안 경쟁하면서 황금곰과 은곰상의 주인을 가린다. 경쟁부분과 더불어 기존의 규범화된 사회를 벗어나 변혁과 혁신을 이끌어냈던 68운동(68er-Bewegung)의 5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프로그램 <1968-Rote Fahnen für Alle>도 주목할 점이다. 이는 확장하는 시네마, 실험 및 에세이 영화와 같은 서로 다른 미학적 지점을 결합하고, 오늘날의 영화에 관한 고민과 화두를 던진다.
한편, 단편 섹션에서 처음으로 르완다 영화를 소개하는 것도 눈여겨볼만하다. 르완다 출신의 젊은 감독 사무엘 이심베(Samuel Ishimwe)의 작품 <Imfura>이 단편 경쟁에 포함되어, 르완다의 지난 학살의 역사와 종교 의식, 법적 절차 등과 같이 다양한 위치에서 오늘날의 현실과 목소리를 담아냈다. 다양한 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독립적이고 진보적인 모습은 어쩌면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이고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를 비추는 단편 영화와 그 섹션이 지니는 힘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공식 프로그램 중 한 부분으로서 뛰어난 특징과 형식을 지닌 동시대 영화 감독들의 12편의 작품이 선보인다. 작품 선정은 영화제 디렉터인 디터 코슬릭(Dieter Kosslick)이 맡았다. 더불어 베를리날레 스페셜 내부의 프로그램인 베를린날레 시리즈(Berlinale Series)에서는 형식과 내용면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영화 총 7가지의 시리즈가 소개된다. 영화의 형태와 형식에 따라서 그 장소를 달리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동물원 궁전(Zoo Palast), 프리드리히 슈타트 궁전(Friedrichstadt-Palast)에서 소개하고, 때에 따라서는 콘서트 극장이나 극장을 영화 상영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베를린날레 스폐셜 섹션의 영화 상영 이후에 베를린 축제 공연의 집(Haus der Berliner Festspiele)에서 단순 GV(Guest Visit)가 아닌 긴 호흡의 대담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진행한다. 이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오늘의 다양한 이슈를 담기 위해서 그 형식과 형태에서부터 많은 고민을 한다는 걸 잘 보여준다.
2018년의 파노라마 프로그램 선정은 프로그래머 파즈 라자로(Paz Lázaro), 미하엘 슈튜츠(Michael Stütz) 그리고 아드레아스 스트럭(Anderas Struk)이 맡았다. 10일이라는 영화제 기간 동안 40개국 총 47편의 작품이 파노라마 섹션에서 개성을 뽐낸다. 파노라마 부분은 영화의 상업성과 예술성 두 가지의 균형을 잘 잡고 있는 작업을 주로 소개한다. 올해의 파노라마 섹션은 역사의 중심 속에서의 여성, 시네마틱 디스토피아, 전통적 가족 구조와 공동체의 해체, 동성애와 신체의 정치학, 민족중심주의와 급진주의의 세계적 추세, 영화의 반영 기법 등과 같은 시의성 있는 주제에 주목한다.
한편,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파노라마 섹션에 김기덕 감독의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 작품의 초대를 두고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나 올해 영화제는 성폭력 고발 운동을 넘어선 사회 운동으로 번지는 미투운동을 지지하는 입장에서 해당 사건에 관련된 배우, 감독을 초청에서 모두 제외했다. 하지만 김 감독의 여배우 성폭력 사건에도 불구하고 초청했다는 점에서 현지의 관객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비판의 의견이 끊이질 않았다.
48회를 맞이하는 포럼 섹션은 흔히 젊은 감독의 영화제 등용문으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1997년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The day a pig fell into the well)>이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포럼 부분에 초대된 바 있다. 이후 21년만에 그의 신작 <풀잎들(Grass)>이 다시금 포럼 섹션에 초청되며 현지에서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더욱이 작년 경쟁작 부분의 초청 이후에 이어서 베를린에 초청받았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에 관한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신동석 감독의 <살아남은 아이(Last Child)>와 박기용 감독의 <재회(Old Love)>가 포럼 섹션에 초대되었다.
또한, 과거의 작업을 재상영하기도하는데, 미국의 실험영화 거장인 제임스 베닝(James Benning)의 1976년 작업 <11X14>를 스폐셜 스크리닝으로 선보인다. 이처럼 독립영화와 실험영화를 주로 소개하는 자리인만큼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성격과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섹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포럼 익스펜디드는 그 어원의 의미와도 같이 포럼 부분에서 확장된 섹션이다. 실험영화의 영상과 더불어 현대 미술의 영상 설치 작업을 함께 보여주는 자리이다. 시네마와 현대미술의 경계를 과감하게 넘나드는 해당 섹션에서는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Akademie der Künste), 사비 컨템포러리(SAVVY Contemporary) 그리고 캐나다 대사관(Botschaft von Kanada) 세 곳의 상이한 장소성을 바탕으로 각기 다른 주제의 전시를 살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메인으로 여겨지는 아카데미 데어 쿤스트(Akademie der Künste)의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2017>에 선정된 송상희 작가의 작업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Come Back Alive Baby)>이 초청되어 큰 관심을 받았다. 동시대 미술의 가장 뜨거운 현장인 베를린에서 시네마와 현대미술이 혼재된 새로운 흐름을 경험할 수 있다.
올 해로 41회 째를 맞이하는 제러내이션 섹션은 아동과 청소년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를 다룬다. 경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있다. 전 연령 대상의 제너레이션 케이플러스(Generation Kplus)와 14세 이상 관람의 제러네이션 14플러스(Generation 14plus) 부부에서 올해는 39 개국의 65개의 단편과 장편 영화가 수정곰상(Gläsernen Bären)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작년에 케이플러스(Generation Kplus) 부분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문창용 감독의 <앙뚜(Becoming who I was)>와 재작년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The world of us)>이 초대된 바 있는 해당 섹션 또한 포럼과 마찬가지로 저예산 영화의 소개와 신인 감독의 등용문으로 알려져있다.
퍼스펙티브 도이체스 키노는 차세대 독일 영화 감독의 주제 특정적이고 예술적 경향의 작업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서 독일 영화의 미래의 전망과 발전상을 논하는 자리이다. 올해는 30대 중반 독일 영화 감독들의 작품 14편을 초청했다. 초청작은 상금 5000유로가 주어지는 Kompass-Perspektive-Preis를 두고 경쟁한다. 심사는 영화 감독 율레스 헤어만(Jules Herrmann), 조성형(Sung-Hyung Cho) 그리고 솔 본디(Sol Bondy)가 맡았다.
2010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베를린날레 고즈 키노는 프로그램 설립 이후에 지속해서 베를린 도시 내부와 주변 지역의 독립 영화관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소개하고, 반대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독립 극장에서 소개하는 등의 상호교환적 관계와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특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독립 영화관을 운영하며 영화 문화를 지켜온 운영자와 소유주에게 감사를 표하며, 그들의 폭넓은 영화 프로그램 방식을 기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올해는 총 7개의 지역 영화관 Toni&Tonino, Neue Kammerspiele, Tilsiter Lichtspiele, ACUDkino, filmkunst 66, Neues Off, Kino Casablanca에서 경쟁작, 제너레이션, 파노라마, 포럼, 퍼스펙티브 도이체스 키노, 베를린날레 스페셜, 리트로스펙티브 등의 베를린 국제 영화제 공식 섹션 선정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관객들에게 베를리날레 고즈 키노는 한 모퉁이를 돌면 마주할 수 있는 지역의 독립 극장에서 전 세계의 영화가 모이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기회를 제공한다.
제 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회고전(Retrospektive)는 바이마르 시대(Weimar era)의 다양한 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부수립 이후 펼쳐진 독일 영화 제작사의 가장 생산적이고 영향력있던 시대를 다시금 돌이켜본다. <바이마르 영화 – 새롭게 바라보기(Weimar Kino – neu gesehen)>라는 제목 아래 이국적(exotic), 일상적(quotidian), 그리고 역사적(history)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강조하며, 1918년에서 1933년 사이의 기간에 제작된 내러티브, 다큐멘터리 그리고 단편 영화 총 28 개를 선보인다.
2013년부터 회고전에서 확장된 형태로서 구성된 베를린날레 클래식(Berlinale Classics)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뛰어남으로 재발견된 영화뿐만이 아닌 디지털 처리 기술을 이용하여 새롭게 복원한 고전 영화를 오늘날의 스크린으로 가져와서 관객에게 선보인다.
올해의 베를린날레 클래식 작업 중에서는 70년대 신독일영화의 주축이자 독일 전후 세대와 영화사를 대표하는 감독인 빔 벤더스(Wim Wenders)의 1987년 작업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über Berlin)>와 전형적인 일본 미학을 구축했다는 평가와 함께 서구에서 주로 소개되던 오즈 야스지로의 1957년 작업 <동경의 황혼(Tokyo Twilight)>이 눈에 띈다. 영화의 역사적, 지리적 범주를 뛰어넘는 대담함과 동시에 고전 영화의 가치와 현대 영화와의 관계를 끊임없이 맺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한편 회고전과 베를린날레 클래식은 1977년부터 베를린 국제 영화제와 독일 시네마테크(Deutsches Kinemathek -Museum für Film und Fernsehen)의 협력으로 오늘날까지 진행 중이다.
1982년부터 뛰어난 재량을 보여준 전 세계의 감독, 배우를 대상으로 오마쥬 섹션을 통해서 명예황금공상을 수여해오고있다. 더불어 수상자의 주요 작업과 업적을 영화제 기간 동안 선보인다. 이번 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오마쥬에서는 미국의 저명한 영화배우인 윌렘 대포(Willem Dafoe)에게 명예황금곰상이 돌아갔다.
할리우드 영화와 예술 영화의 문턱을 자유롭게 오가며 약 100여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윌렘 대포는 최근 <플로리다 프로젝트(Florida Project)>를 통해서 전미비평가협회(NSCF)의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더욱이 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남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 된 상황에서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명예황금공상에 이어서 그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올 해로 12회를 맞이하고 있는 요리 시네마(Kulinarisches Kino)는 2월 18일부터 23일까지 <Life Is Delicate>라는 제목으로 5일간 진행된다.
음식, 문화, 정치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9편의 다큐멘터리와 1편의 픽션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 상영 이후에는 최고의 셰프인 Thomas Bühner, Sonja Frühsammer, Michael Kempf, Flynn McGarry 그리고 The Duc Ngo가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선보이고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이어지는 영화제 취재기 2편에서는 간단한 오프닝 소개와 현장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감독의 인터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신 1) 위 글은 <인디 포스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텍스트 복사 및 수정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추신 2) 편집이 적용된 기고 글은 해당 링크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