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신동석 그리고 배우 성유빈
Q. 처음으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발걸음 하셨습니다. 우선 그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한데요.
신동석 감독(이하 신): 첫 장편 영화인데다가 해외 영화제는 처음 초대돼서 오게 된 거라 사실 긴장도 많이 하고, 와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막상 와서 보니까 관객분들의 반응도 좋고, 작업을 좋아해 주셔서 벅찬 기분을 많이 느낄 수 있었어요. 앞으로 영화하는데 이런 경험이 힘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성유빈 배우(이하 성): 저는 아직도 실감이 잘 안 나요. 제가 있어도 괜찮은 자리인지 잘 모르겠네요.
Q. 이번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작업을 선보인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성: 주변에서 많이 좋아해 주셨어요. 아무래도 가족들이 가장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신: 축하를 많이 받았죠. 너무 축하를 많이 해주시니까, 제가 했던 것에 비해 너무 과분한 거 아닌가 했는데, 이게 어쨌든 간에 배우, 프로듀서, 스태프들 전부 고생한 걸 제가 대표해서 축하를 받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포럼 섹션이 예술 영화와 독립 영화에 많이 서포트를 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의미가 조금 남다른 것 같아요.
Q. 베를린에 계시면서 다른 작품들도 좀 보셨나요?
신: 다른 감독들의 작업도 궁금한데, 일정이 맞지 않아서 못 봤어요 그래도기회가 돼서 포럼 익스펜디드(Forum Expanded) 전시를 봤는데 좋더라고요. (웃음)
Q. 베를린에서 선보이신 <살아남은 아이(Last Child)>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신: 20대 초반에 지인들이 연달아서 곁을 떠나는 경험을 겪었고, 그때 심하게 애도의 과정을 겪었어요. 감정 기복도 심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러다보니까 제가 또 남들에게 상처 준 건 없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해야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었던 과정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여러 차례 가족 중에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구상했었어요. 그러다가 이 이야기를 만들게 됐죠.
Q.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기현 역에 성유빈 배우를 캐스팅하셨는데,그 과정이 궁금합니다. 특별히 기대하신 부분이 있는지도.
신: 제가 성유빈 배우를 처음 본 건 <대호>(감독 박훈정)라는 영화에서 최민식 배우의 아들 역을 맡은 모습이었는데, 그때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시나리오 초고를 끝내고서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있다가 별로 고민 없이 선택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현이라는 배역을 극 중 인물의 나이와 실제로 맞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 영화에서는 그래야 된다는 생각이 더 강했는데, 20대 초, 중반의 배우가 고등학생 역할을 하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어떻게든 이 나이에 맞는 배우를 찾고 싶었는데, 실제로 성유빈 배우의 나이가 극 중 기현의 나이와 같아서 감독으로서는 만족스럽습니다.
Q. 기현 역에 캐스팅이 확정되고 나서 어떤 기분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성: 음.... 왜 나일까..?? (웃음) 사실 제가 연기한 걸 볼 때마다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앞서 너무 좋게 말씀해주셔서... 시나리오를 받아보고서 작품 참여에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도전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은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걱정이 많았죠.
Q. 앞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실제 나이와 극 중 인물의 나이가 일치했는데, 인물에 집중하거나 연기하기에 훨씬 수월했나요?
성: 아무래도 훨씬 편했죠. 제 나이와 같다 보니 의식적으로 혹은 억지로 연기하지 않고도 인물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장에서 감독님을 비롯한 다른 배우분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는데,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Q. 극 중 인물들의 감정들이 끊임없이 부딪히면서 극이 진행되는데, 다른 배우(최무성, 김여진)들과 연기 호흡을 맞추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성: 저보다 훨씬 일찍부터 연기를 해오신 선배 연기자분들이라 호흡을 맞출 때마다 항상 배울 수 있어서 좋았어요. 특히나 이 작품은 무게감 있는 감정을 다루다 보니 연기를 함께 하면서도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긴장할까 봐 농담도 곧잘 건네주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Q. 영화의 주제를 학교폭력이나 세월호에 관한 맥락으로 읽는 해석도 있더라고요.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신: 특별히 의도했다고 할 수 없는 게 한국에 워낙 대형 참사와 사건이 많았었잖아요. 피해자가 생길 때, 사회적 책임과 국가적 책임을 안 지려고 하는 문제도 많았었고. 그래서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지만, 현실에 바탕이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연상해서 해석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무책임한 태도들로 애도의 과정을 겪어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그러지고, 망가지는 모습이 이미 현실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이런 장면들이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배경으로 녹아들어서 반영된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폭력 문제는 제가 특정 소재를 건드리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어떤 일에구체적이고, 캐릭터도 독특하면 관객이 매력을 느낄 수 있겠지만, 금방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영화 속 캐릭터들만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멀어질 수 있어서 보편적인 것들과 캐릭터의 특수성의 거리감을 잘 조율하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학교폭력도 소재로는 쓰지만,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했죠. 영화에서 세 사람의 감정 라인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장치가 방해가 안 되게 조율했던 거죠.
Q. <살아남은 아이>라는 제목과 영제인 <Last Child>은 조금 의미가 다른 것 같기도 합니다. 영제 설정은 어떤 기준으로 하셨나요?
신: 사건을 겪을 때 주인공들의 중요한 선택이 조금 드러나는 그런 제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살아남은 아이>의 경우, 영화의 소재적인 면에서 기현(성유빈 배우)은 은찬이 구해낸 아이다라고 생각했었고, 마지막에는 다른 의미에서 살아남은 아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게끔 지었어요. 그런데 영제를 지을 때 그냥 살아남은 아이를 직역하면 생존경쟁의 의미가 너무 강해져서, 두 가지 의미의 측면을 포함하는 걸 찾다가 <Last Child>라는 말이 기현의 선택을 해석하기에도 잘 맞는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Q. 극 중 핵심 인물인 성철(최무성 배우)과 미숙(김여진 배우) 부부는 기현이라는 인물에 관해서 약간 다르게 인식하는 장면도 보이던데, 이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신: 초반에는 위로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보여줘야 했어요. 그래서 같은 일을 겪은 부부라도, 각자의 애도 방식이 다르고 필요로 하는 게 다르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중간에서 기현이라는 인물이 접점이 되는 거죠.
Q. 기현이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군요. 기현의 고백을 기점으로 영화의 내용과 흐름이 많이 바뀌는데, 중요한 장면인 만큼 연기에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감정적이기보다 담담해 보이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성: 뭔가 하나하나 다 힘들고, 단어를 뱉는 거 자체가 힘들고 불편하고 답답한 걸 넘어서서 죄는 마음을 가지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모든 걸 내려놓은 채로 덤덤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감정적으로 격해지고, 다시금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모습이 반복되는 거죠.
신: 저도 그 장면의 연기를 좋게 봤어요.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에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무덤덤하게 읊조리다가, 또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모습이 기현의 입장에 가장 적절하고 저렇게 할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Q. 마지막 사건 이후의 이들은 어떻게 됐을지를 생각해 보셨는지?
신: 저희 스텝들도 궁금해하더라고요 (웃음) 결말 이후에 관해서 저도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기현, 성철, 미숙 세 사람은 계속 살아가기는 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살았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Q. 두 분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새로운 작업과 다른 작품에서 또 다른 모습을 준비 중이신지?
성: 다양한 감정의 캐릭터를 맡아보고 싶어요. 이 작품에서는 슬픔이 위주였다면 다른 곳에서는 밝은 캐릭터도 해보고 싶고, 저는 사람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어요. (웃음) 새로운 것, 남들이 해보지 않은 걸 제일 해보고 싶죠.
신: 앞으로 저는 계속 시나리오를 써야죠. 영화도 찍고. 그런데 구상한 작품은 있는데, 글을 아직 쓸 시간이 없어서 영화제 끝나고 돌아가면 글 쓰는 시간을 가질 계획입니다. 속도감과 긴장감 있는 장르의 작업보다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동시에 감정의 세부적인 걸 묘사할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