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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Apr 26. 2023

처참히 깨진 무릎

나는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쓰러졌다

무언가 짚을 곳도, 기댈 곳도 없는 채 그대로 쓰러졌다. 지면을 향해 자유로이 낙하한 내 두 무릎은 온전히 나의 체중을 감당해야 했다. 입은 벌어졌지만 극심한 고통에 처음엔 소리조차 못했다. 저 깊은 곳에서 서서히 밀려 나오는 낮은 신음소리와 함께 나는 지독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내 모든 체중을 다 실어서 넘어졌으니 무릎도 많이 아팠지만, 발목이 더 아팠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정체는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오른쪽 발에 통풍이 왔다. 통풍은 무슨 할아버지들이나 걸리는 줄 알았는데. 내가 비록 이제 아저씨 나이긴 해도, 아직 할아버지는 아직 아닌 줄 알았는데. 통풍은 나의 생각을 비웃듯 그렇게 갑자기 왔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발목이 심상치 않았다. 세상의 모든 바늘을 모두 모아서 동시에 찌르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었다. 여간해서는 병원을 잘 가지 않는 나조차도 이건 병원을 가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하게 하는 정도의 고통이었다.


양말을 신고 나가려 했지만 양말을 신는 것조차도 너무 아파서 양말을 신지 못했다. 그러니 통증이 있는 오른쪽 발을 딛으며 걸어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왼쪽 발은 멀쩡했기에 어찌어찌 어렵사리 병원에 도착했다. 어찌어찌 병원에 왔던 것처럼 그럭저럭 집에도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병원 문을 나서며 왼쪽 발을 이용해 깨금발(aka 깽깽이)뛰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니 곧 '바람만 불어도 아프다는' 통증의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됐다. 통증 때문에 몇 걸음 되지도 않는 거리인 병원 문에서 주차장에 있는 차까지 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중간까지는 손으로 벽이고 의자고 짚어가며 어찌어찌 도달했으나 문제는 어디 하나 의지 할 곳이 없는 중간지점이었다. 지금부턴 온전히 '깨금발의 시간'이었다.


쿵. 아...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쿵. 와...... 근데 진짜 아프다.


쿵. 악!............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왼발은 멀쩡했으니 왼발로 깨금발을 뛰는 것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문제는 오른쪽 발이었다. 왼발로 깨금발을 뛰고 땅에 착지할 때의 충격으로 살짝 흔들리는 그 정도 움직임만 있어도 오른발에서 강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세상에.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계단과 턱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아휴 빨리 집 가고 싶어. 어떻게든 집에 가겠다는 집념으로 다시 한번 깨금발을 뛰었다.


아아아아악!!!!!!!!!!!!!!!!!!!!!!!!! 쿵.


나는 비명을 지르며 땅으로 쓰러졌다. 무리해서 깨금발을 뛰는 순간에 통증이 너무 심해서 그대로 땅바닥에 넘어졌다. 무슨 프로레슬링 선수처럼 온 체중을 담아 무릎으로 지면을 찍었다. 물론 아스팔트가 내 무릎보다 단단할 테니 고통은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오랜만에 처참하게 무릎이 깨졌다

걸음마를 배운 지는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그러니 이렇게 걷다가 넘어져본 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오늘이 인생최초였다. 아기였을 때는 몸무게라도 덜 나갔을 텐데, 이제는 아저씨가 되어 몸무게가 늘었으니 무릎을 심하게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동안은 무릎이 어딘가 살짝 닿기만 해도 아팠다.


처참히 깨 먹은 내 무릎을 볼 때마다, 새로운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나름대로 이제 경영의 세계에서 걸음마를 배웠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걸음마가 익숙해져 내 식으로 뛰어보기도 하고, 이렇게 저렇게 텀블링도 넘는 등 나만의 재주도 부릴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나름대로의 걸음걸이를 가진 내가, 재주도 부리는 그런 내가 익숙했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려니 여기서 쿵, 저기서 쿵 말 그대로 좌충우돌이었다. 그럴 때마다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조금만 더 꼼꼼히 했으면 놓치지 않았을 실수 같아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무릎을 처참히 깨 먹고 나니 이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됐다. 땅에서 그렇게 편하게 걷는 사람도 물속에 들어가면 꼬르륵 거리며 헤엄치는 법을 새로 배워야 하듯이, 통풍이라는 놈을 처음 만나 깨금발로 뛰다 보면 걸음마를 넘어 달리기가  익숙한 사람 이렇게 처참하게 무릎을 박살 내 먹을 수도 있듯이 우리는 새로운 일을 할 때 또 새롭게 실수하게 된다.


매일같이 해왔던 일이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걸음마를 배우는 일이다. 그러니 무릎을 깨먹는 것이, 좌충우돌하는 것이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잘 기억조차 못하지만 아마도 어렸을 때 걸음마를 배우면서 당연히 무릎을 더 자주 깨 먹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하루하루가 아주 당연하고 익숙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가보자고'의 마음으로

그러니 이 아픔마저도 익숙해지기로 했다. 당연히 해보지 않은 일을 하다 보면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을 하며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지금 당장 실수하나 없는 천의무봉의 경지를 바라보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무릎을 깨 먹으면서도 결국에는 집에 돌아온 것처럼 어떻게든 내가 가야 할 길을 나아가는 것, 당연히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여기저기 깨지면서 아플 것도 알고 이를 각오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마음으로 어떻게든 한발 더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이 맞는지 의심하는 것만으로는, 이 길을 걷는 것을 겁을 내는 것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아프고 깨지더라도 일단 가봐야 답이 나오는 거니까. 깨금발도 뛰고 무릎도 깨져봐야 통풍 속에서 또 이런 교훈도 얻는 거니까.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 눈앞에 닥친 수많은 장애물들이 조금은 가볍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던 문구는 역시나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다. 이에 덧붙여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도 나왔다


그래, 까짓 거 가보자고!

길은 가면서 만들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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