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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부규 Mar 19. 2024

52세 조기퇴직, 파란만장 도전 끝에 정착한 직업

[퇴직 후 제2 인생 개척 인터뷰 41화] 시내버스 배차주임 천불산 씨

천불산(가명, 64세)


- 2011년 2월  직장 조기 퇴직(52세)

- 2012년 1월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취득

- 2003년 4월  1종 대형 운전면허 취득(중국 유학 중)

- 2015~2020년  제주도 관광버스 가이드 및 기사

- 2020년 7월  ○○여객 자동차 시내버스 배차 주임 취업



시내버스 운전기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시내버스마다 운전기사모집 안내문이 붙어있다. 코로나 사태로 버스 기사들이 대거 배달업계로 이동함에 따라 인력 감소가 더욱 심화하였다고 한다. 1종 대형 운전면허를 가지고 있으면 60세 이상 초보자도 취업이 가능한 상황이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구인난이 오히려 은퇴 구직자에게는 기회가 되었다.

2011년 직장 조기 퇴직 후 파란만장한 삶을 거쳐 시내버스 기사 모집 면접에서 배차 주임이라는 의외의 발탁으로 4년 동안 성실히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천불산 씨를 지난 2월 말에 만났다.  



▲  신호봉 들고 배차 안내 중인 천불산 씨


- 정년퇴직을 8년이나 앞두고 조기 퇴직한 이유는?


2011년 2월 13일 당시 52세의 나이로 조기 퇴직했어요. 중국 산동대학 석사학위까지 있었던 저는 중국 하얼빈 2년 유학 생활 중 알게 된 대규모 농업경영인 진 사장님(한국인)과 인연이 되어 그의 충실한 비서(통역 포함)이자 본사 감사관 정도의 직함으로 일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새로운 직장에 안착하기도 전에 사장님이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저는 사장님의 발탁 인사였기에 설 자리가 없었어요. 결국 귀국길에 올랐죠. 퇴직 후 제2 인생 첫 시도는 실패로 끝났어요.


- 귀국 후에는 또 다른 일을 하셨나요?


"맨 먼저, 뭔가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지인의 권유로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국가전문자격시험을 45일간 준비하여 무난히 통과했어요(2012년 1월). 자격증이 있다고 바로 취업할 수는 없어요. 취업을 위해 집 근처 도서관에서 하루에 14시간 정도 강의자료를 정리하여 2013년 5월 ○○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인연이 되어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해 가을 20명 수강생 중 6명이 관광통역안내사 시험에 합격했어요(이후 3년간 담임 역임).


3년이 끝나가는 2016년 초에 제주도에 중국 관광객이 쇄도하여 유자격 가이드가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무연고인 제주도로 갔어요. 만 5년간 제주에 머물며 중국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무기로 삼아 여행업 대표이사까지 경험했지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중국 여유법(旅游法, 자국 관광객의 권익 보호와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마련한 관광진흥법) 때문에 제주도 여행종사자들은 치명타를 입었어요.

그 후 1년간 호텔 야간 프런트,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필기시험 강사, 태권도장 셔틀버스 운행, 호텔 어린이 침구 세팅 등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삶을 통해 '아, 나는 58년 동안 돈을 쉽게 벌었구나'라는 값진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지요.


얼마 후 알고 지내던 관광버스 기사분 추천으로 관광버스(중형 카운티) 기사로 변신할 수 있었어요. 중국 관광객을 주로 다루며 기사와 가이드 1인 2역이 가능하여 남들보다 특별 대우를 받았지요. 그럭저럭 2년이 지날 때쯤 코로나 사태가 터져 약 1년간을 버티다가 제주 생활을 접고 본가로 복귀하여 5년 만에 아내와 만났어요.

본가 복귀 후 무슨 일이든 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호락호락한 곳이 없었어요. 최종적으로 시내버스 기사 모집에 풍부한 경험치를 자랑하는 이력서를 제출했는데 운 좋게도 배차 주임으로 발탁되었어요. 벌써 4년 차예요."


- 배차 주임 역할을 간단히 소개해 주신다면?


"회사마다 약간씩 달라요. 저의 경우를 말씀드리면 먼저, 승무원(버스 기사 존칭)의 행정지원자로서 운행이 원만하도록 도와주는 역할, 노선과 운행 대수에 맞춰 승무원에게 순번을 정해 일하도록 주문하고, 운행 중에 발생하는 사건∙사고에 대해 슬기롭게 현장 대처하도록 원격 지시하고, 앞차와 뒤차 간의 운행 간격이 적절히 유지되도록 통제하고, 수입금 회수 및 종료 차량 정리정돈, 마지막으로 영업소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사고에 대해 적절한 대처를 하고, 본사에 보고하는 일이에요. 제가 속한 영업소는 매우 작은 규모로 물량이 적어서 비교적 일이 수월해요."


- 4년 근무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힘든 부분은 승무원 부족입니다. 기사 모집을 꾸준히 하지만, 늘 부족해요. 남아있는 승무원의 이틀 연속 승무가 불가피한데 기본적으로 모두 힘들어해요. 둘째는 갑작스러운 결근입니다. 예비인력이 없기에 전날 근무자를 불러내거나 감차 조치를 해야 하는데 이는 민원 발생의 원인이 되죠. 셋째는 겨울 '눈'입니다. 교통체증 유발로 배차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요." 


 

▲  사무실에서 차고지를 내다보는 천불산 씨


- 인생 후배들에게 배차 주임(버스 기사 포함) 직을 권한다면?


"이 세상에 좋은 직업이란 게 존재할까요?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에요. 이 직종도 마찬가지로 장단점이 있어요. 먼저 장점을 말씀드리면 첫째, 조직 생활처럼 상하관계의 스트레스가 없고 주어진 나의 직무만 성실히 수행하면 돼요. 모든 조직에 행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듯이 운수업에도 행정인력이 필요해요. 약간의 행정능력과 컴퓨터활용능력이 겸비되었다면 60대 후반에 운전직에서 살짝 궤도 수정하여 배차 주임직에 도전할 기회가 생길 수도 있어요. 버스회사 운전교육지도자 직종도 늘 틈새가 있어요.


둘째, 급여 수준에 있어서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한 가지는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의 범주 내 급여입니다. 이 경우 비교적 연봉이 높으며 모두가 선호하지만, 모두가 이 범주에 속하는 것은 아니며 점차 확대되어 가는 추세지요. (연봉 4~6천만 원) 다른 한 가지는 대부분의 버스회사가 줄곧 해 왔던 '갑'과 '을'의 근로계약 방식으로 준공영제로 채택되기 전까지는 이 방식으로 계약되나, 머지않아 이는 소멸할 것이고 모두 준공영제 또는 공영제로 정착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연봉 3~4천만 원)


셋째, 배차 주임은 자리가 많지 않지만, 버스회사마다 운전기사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으므로 본인이 원한다면 버스 기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인력난으로 인해 거의 70세까지는 무난히 일할 수 있어요. 


시내버스, 마을버스 유리창에 붙여놓은 운전기사 모집 안내문들


이와 반대로 어려운 점도 있어요. 배차 주임은 크게 힘든 일이 없지만, 운전기사 직을 수행하려면 '적정 체력'은 필수예요. 격일제 근무의 경우 장시간 운전해야 하므로 굉장히 힘들어요. 다만, 체력이 약한 분은 전일근무(16시간, 월 약 12일) 말고 '반일근무'(8시간, 월 약 24일)를 선택하면 돼요."


- 버스 기사(배차 주임 포함) 직을 원한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나요?


"버스 기사는 불특정 다수인을 승객으로 모신다는 점에서 특히, 생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그 책임이 막중합니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운전하면 돼요. 첫째, 대형면허가 필요해요. 1종보통 면허를 취득 후 대형면허를 취득하세요. 둘째, 출퇴근이 용이한 버스회사를 선택하세요. 기본적인 면접을 통과하면 '버스운전자양성사업 교육생 입과' 추천서를 써 줍니다. 이를 한국교통안전센터 화성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경기도 기준)에 제출하여 약 4주간의 무료교육을 이수하고 추천서를 써 준 버스회사에서 최종적으로 실력을 확인 후 인정해 주면 정식 승무원이 되는 겁니다. 배차 주임직은 자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버스를 운전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  버스기사 채용 과정


- 수입과 부부 월평균 생활비는?


"수입은 월 300만 원 정도이고, 생활비는 둘이 월 200~300만 원 정도 지출하고 있어요."


- 전망은?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도 운전기사 구인난이 가중되고 있어서 전망은 나쁘지 않아요. 그리고 70세까지 근무할 수 있는 여건도 갖춰져 있어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요즘 100세 인생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나이 60은 '원로 청년'이라는 신조어를 쓰고 싶네요. 나머지 40년 절대 짧지 않아요. 무언가에 도전해 보세요."


- 앞으로 언제까지 근무하실 계획인가요?


"배차 주임이라는 행운이 따라주어 예상치 못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제 적성에 딱 맞는 것 같아요. 최근에 70대 선배분이 배차 주임에서 정년퇴직했어요. 저도 한 5년 정도는 더 근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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