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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딩 Jul 21. 2023

늦둥이 딸 입장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늦둥이라고 말할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늦둥이세요? 의외네요. 외동이나 장녀인 줄 알았어요."

"부모님에게 사랑 많이 받으셨겠어요."

두번째 반응에 나는 "글쎄요, 생각하시는 것보다 보통이에요. 남들만큼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뭐 자세한 가정사를 이야기하기에는 피곤하기도하고 꺼림칙하지만 일부만.

살아온 날들을 잠시 되돌아보니, 보호자들과 함께 보낸 시간이 다른 가족들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가족여행은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니다, 초등학생 때 가정 내 체험학습을 하는 숙제로 서해 해수욕장에 잠시 다녀온 적이 있는데, 햇빛에 화상을 입을 정도로 모두 생고생을 하거나, 내가 물이 들어오는 시간대에 바다에 빠져죽을 뻔 한 기억만 남아있다. 그 이후로 여태까지 가족여행을 간 적이 한번도 없다. 

그렇지만 초등학생 때 엄마아빠와 같이 고생한 그 기억은 아직도 좋아한다. 여행하는 내내 성질, 화내던 아빠가 싫었지만 그래도.


정년퇴직 할 때까지 아침일찍 출근,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에 퇴근하는 엄마의 일과가 너무나 익숙했고, 엄마의 고통, 푸념을 어릴 때부터 들어와서(요즘 말로는 감정 쓰레기통) 나는 내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듣는 입장에서 살아왔다. 이것 때문인지 어쩐지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하며 쉽게 스스로의 고민을 물어보고는 하는데, 어쩐지 가끔가다 이것조차 지칠 때도 있다. 

'뭐야? 내가 니 감정 쓰레기통이야? 일기에 쓰거나 상담이나 받아봐 내가 왜 그걸 들어줘야 하는데?' 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야기가 막 중구난방인데 어쩐지 브런치에 글을 쓸 때는 대개 술김에 쓰는거라 읽는 분이 계신다면 양해를 구합니다. 글쓰기는 어렵지만 재미있어요. 읽어주시는 분들 항상 감사합니다.



최근에 오랜만에 본가에 가보니 내가 쓰던 방은 엄마의 공부방이 되어있었다.

엄마는 올해 초부터 동네 문화센터에서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항상 일상생활에서 영어가 너무 많아서 읽을 수가 없어서 까막눈이라고 속상해하셨는데 요즘에는 영어가 술술 읽혀서 즐거워하셔서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 아무튼 엄마의 공부방에 있는 책상 위에 책이 한 권 놓여져 있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엄마가 딸에게~~' 이런 제목이었다. 못본 척 했지만 엄마는, 그니까 당신은 나한테 '한 평생 돈만 벌러 다니느라 다른 엄마들에 비해 신경을 하나도 못써줘서, 애정을 주지 못해서 방치해서 미안하다'고 항상 나를 볼 때마다 말하는데 사실 학생 때는 내심 많이 서럽긴했다. 외롭기도 엄청 외로웠고 사실 내가 느끼기에도 나는 애정결핍이 좀 심한데 숨기고 있다. 누군가가 내게 주는 다정함에 매우 취약하다. 다정함에 숨막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처음에 성인이 되고 사회에서 내 자리를 잡고나서 저 말을 들었을 때 진작 잘해줬어야지, 이제와서 잘해주려고 하면 어쩔건데? 이런..반감섞인 투정을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지만 괜찮아 엄마가 하고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있다.


이 나이 되어서도 엄마에게 원망을 하거나 미워할 때가 많다. 그렇지만 엄마나, 아빠나 내 또래의 부모님에 비해 나이가 최소 10살 이상 많고 시대의 피해자들이니까. 부모님도 남들에 비해 학력이나 직업이 그저 그렇거나 미달되어도(아 이 말은 쓰기싫었는데... 낮은 학력이 어때서 씨발.) 생존과 가정에 집중하며 살아온 사람들인데 원망할 필요가 있나싶어. 풍파가 심한 나라에서 울타리를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겨야한다.


다른 이야기인데 예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어떤 직원이 내게 묻던 말.

"아버지가 공대 나오셨나봐요!"

아뇨, 초졸입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회사 분위기도 그렇고 굳이 밝힐 필요가 있나싶어서 

"네~ 맞아요~"라고 맞받아쳤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불쾌했다. 

당연하다는듯이 다른 부모님이 대졸인 걸로 상정하고 있는게 굉장히 불쾌했고 무례함을 느꼈고, 

잘난 집안이라고 해도 자식들 학벌이 아무리 좋아도 멍청한 사람은 여전히 많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던 기억. 


엄마와 딸의 관계 하면 다들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것들을 쓸 것 같아서 그냥 쓰지말까 했는데 기록을 남길 겸 글을 가볍게라도 휘갈겨본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엄마, 아빠에게 애정을 못받았나?

그렇긴하지만, 여러가지 힘든 사정으로 두분도 마찬가지이니, 옛날에는(특히 사춘기 때) 원망과 저주를 했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를 어느정도 돌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으니 괜찮아. 나이대에 적당히 충족해야하는 애정의 용량이 있다고 생각하고 또래들에 비해 표준값도 채우지 못한 편이지만 성인이 되고나서 내 힘으로 돌볼 수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두 분은 흔히들 욕하는 꼰대 마인드도 가지고 있지만 누구나 꼰대가 되지 않나? 

나도 지금 서서히 꼰대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걸. 


조용히 미쳐버린 늦둥이 딸은 오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으니 엄마나 아빠나 나를 조금은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워낙 표현을 안 하는 분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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