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
어느 조용한 봄날
서울 한구석에 있는 작은 영화관을 찾는다
그곳에 있는지 구태여 알지 않고서는
눈에 띄지 않을, 내내 알 수 없을 그런 곳이다
작은 영화관에서 불이 꺼지고 문이 닫히고 막이 닫힌다
구태여 인연이 없고서야
눈에 띄지 않을, 어떤 삶을 사는지 알 수 없는 몇몇 인생들이 앉아있다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살았다던
아주 오래전 이 땅을 그리워했다던
어느 시인의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마다 그 인생에 제 인생을 덧입혀
감사하고 반성하고 눈물짓고 한숨 쉰다
영화가 끝나고 누군가의 박수소리
어느 조용한 봄날 혼자서 먼지 자욱한 자그마한 영화관을 찾은 젊은이는
백 년 전 젊은이의 꿈에 시에 사랑에 인생에 제 것을 감히 나란히 세워보려다
역시 안된다 하고는 어둠을 뒤로한 채 걸어 나온다
이 봄날에 하늘은 푸르고 푸르다
젊은이는 하염없이 하늘을 보고 섰다
여기 하나의 인생이 하늘을 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