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새해의 목표는 그저 두루뭉술하게 적고 맙니다. 한없이 들뜨게 맞이하던 새해도, 해가 거듭될수록 고요 속에서 맞이합니다. 이제 해가 바뀐다고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뀌는 것은 없다는 걸 아는,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새해가 되었고, 올해는 이 전 세계적 우울에서 조금은 벗어나야겠기에 오늘 저는 꿈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서 꿈은 이렇게 정의가 되더군요.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
두 번째와 세 번째 뜻은 얼핏 정 반대이면서, 또 공존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삶에서 꿈이란 많은 경우 실현하고 싶지만, 실현되지 못하거나, 실현되더라도 나의 이상과는 다른 경우가 많으니까요. 저에게도 꿈은 그런 것 같습니다.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어린 시절, 저는 드라마에 나오는 정의로운 법조인이 되길 꿈꿨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세상은 도덕 교과서처럼 명확하고 분명했습니다. 법은 선하고 약한 자의 편일 것이라고, 세상 모든 문제의 답이 옳고 그름과 정의와 불의, 선과 악으로 나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안에 아직 세상의 모순이 자리잡기 전의 일이지요. 그때 제게 꿈은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아동 대상 범죄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감히 그 아이와 가족들이 겪을 고통을 상상할 수도 없어 슬픔과 분노, 무기력에 빠진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때 저는, 지금도 풀지 못한, 앞으로도 풀지 못할 의문을 가졌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제 오랜 꿈도 그때 사라져 버렸습니다. 법이 인간을 보호하는가. 법은 때로 너무 늦지 않는가.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에 대해 불신하며 저는 꿈을 잃은 채 몇 년을 살았습니다. 그때 제게 꿈은 '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헛된 기대나 생각'이라, 나를 힘들게만 하는 것이었지요.
물론 그 후로 저는 다시 몇 개의 꿈을 가졌고,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어떤 곳도 제가 꿈꿀 때 가졌던 환상을 충족하는 낙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꿈은 꾸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닐 때마다, 저는 한때 낙원이었고, 이제 지옥인 곳들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나의 꿈이 나의 바깥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겠구나 하고요.
그리고 또 하나 제 꿈의 가장 큰 문제점. 당신은 혹시 눈치채셨나요. 제가 가졌던 꿈이 늘 직업으로 귀결되었다는 것을요. 저는 무언가를 하기보다, 무언가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어릴 때는 장래희망이라는 이름에, 커서는 진로라는 이름에 제 꿈을 등치 시켰습니다. 생각건대 어쩌면 그것들은 사실 수단이었지, 제 꿈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생각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소망하는 내 꿈은 그저 내 안에서 가능한 일들이라고.
내가 사회에서 이루고 싶은 것들, 되고 싶은 것들은 목표나 수단이 되기에는 충분할지 몰라도 꿈이 되기에는 모자랍니다. 왜냐하면 진짜 꿈은, 우리가 밤에 꾸는 꿈처럼 끝이 없이 매일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이제 저는 이런 꿈을 꿉니다. 당신에게 내가 조금 덜 유해한 사람이길. 무해할 수는 없어도, 득이 될 수는 없어도, 조금씩은 매일 덜 유해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길 꿈꿉니다. 이 꿈에는 완성은 없고, 내 일상을 잘 살아가야만 마지막 순간에 조금 이뤄졌다, 말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일의 특성상 종종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의 내가 그랬듯 그들이 지금 꾸는 꿈이 이루어지면, 삶이 완전히 달라지리라 기대합니다. 아마 그들도 내가 그랬듯, 그 꿈이 이루어지더라도 기대하던 낙원은 없으며, 만약 자기 밖에서 꿈을 찾는다면 영원히 목마른 상태로 헤매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갈 세상은 또 내가 살아온 세상과 다를 것이기에, 섣불리 미래에 대해 말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는 그들에게 말하곤 합니다. 일상을 채우라고, 하루의 고단함을 풀 수 있는, 지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자신만의 무기를 찾으라고 말입니다. 그 무기야말로 일상을 유지하게 해 주고, 불안과 좌절을 견디게 해 줄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야말로 가장 달콤한 꿈이 아닐까요.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오늘 이런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떤 종류의, 어떤 크기의 꿈을 가지라고 말하든, 그저 당신 안에서의 꿈만으로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도달하면 사라져 버릴 꿈 따위는 없어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대신 만약 꼭 꿈이 있어야 한다면, 다음 날 우리가 다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는 달콤한 꿈같은 순간이 있길 기원한다고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눈치채셨겠지만 이건 올해도 무엇도 되지 못하더라도, 제 안의 꿈들을 그저 해나가고 싶은 저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만의 꿈속에서, 해피 뉴 이어.